정치인이나 장관들이 흔히 두고 쓰는 문자로 실업률 해소를 위해 서비스산업 육성을 주창한다. 이번 당 대표 경선에서 압승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역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취임 일성이 서비스업 육성이었다. 닫혀버린 경제 성장판을 복원하기 위해 서비스업으로 돌파해야한다는 논리다. “성장률이 낮더라도 일자리를 늘리는 게 가장 중요하고 이를 위해 일자리 창출은 서비스업에 달렸다”고 강조했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우선 발등의 불인 100만 청년 실업자 해소를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할 처지다.

그러나 우리 경제 발전의 근간은 제조업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정치하는 사람이나 정책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알아야 한다.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을 딛고 경제의 재도약을 만끽한 것도 탄탄한 제조업에서 고용을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조업 죽으면 게도 구덕도 다 놓친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2기 국정지표에서 실업률 해소를 위해 제조업에 역점을 두고 무려4500억 달러를 투입하여 일자리 100만개를 창출하겠다고 공약한 것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제조업에서 100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되면 서비스업에서 200만개 이상의 일자리 창출을 수반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본 것이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중국, 인도, 브라질 등 BRICs의 공기업이 전 세계 10대 기업의 상위권을 석권하면서 이중 미국 기업은 3개에 불과했다. 그러나 2013년 전 세계 10대 기업 가운데 애플과 엑슨, 모빌 등 9개 기업이 미국 기업이란 사실은 오바마의 제조업 육성정책이 빛을 발한 증거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섬유 제조업에서도 아직 28만 명 이상의 고용을 유지하고 있다. 제조업이 잘돼야 양질의 안정적인 일자리가 창출된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보다 과감하고 적극적인 육성책이 시급하다.

그러나 지금 전체 제조업에서 고용규모가 가장 큰 섬유산업이 허망하게 무너질 위기다. 구조적인 내수 및 수출경기 침체로 인한 수요 감소뿐 아니라 근본적인 경쟁력이 급속히 약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언부언하지만 화섬, 면방, 니트, 우븐 가릴 것 없이 전 스트림이 시난고난 않고 있다.
엄살이 아니라 기업인들 만나보면 열이면 열 모두 창업 이후 가장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막말로 “떡쌀 담그는 것이 나은지, 더 버티면 좋은 날이 있을지 도대체 앞이 안 보인다”는 얘기다.

과거에는 이 시장이 안 되면 저 시장이 커버해주고 저쪽 시장이 안 되면 이쪽 시장이 받쳐줬지만, 지금은 전 시장이 죽은 듯 조용하다. 화섬이 어려우면 상대적으로 면방이 좋았고 환편직물이 안 되면 경편이 메꾸어 줬다. 화섬, 교직물도 후직이 안 되면 박지가 됐고 터키가 안 좋으면 두바이 시장이 이란용으로 활기를 띠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느 스트림, 어느 지역 가릴 것 없이 바닥 밑 땅굴 속으로 숨었다. 내수패션은 이미 거덜 날 정도로 폭삭 주저앉았다. 백화점이 사상 최대 경품행사를 해도 손님이 안 온다. 백화점이 안 되면 대형마트가 북적거렸지만 요즘은 모두가 바닥상태다.

설상가상으로 깊은 터널에 갇힌 경기 불황 속에 섬유업계 내부의 갈등 국면까지 겹쳐 혼란스럽다. 최근 불거지고 있는 삼성물산의 중국산 DTY사 수입 유통을 둘러싼 성토가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사실 냉정히 따지면 사업은 이윤 추구가 목적이다. 고로 대기업이 고무신 장사를 하건 팬티 장사를 하건 나무랄 수 없다.

그럼에도 중소 가연업체와 일부 화섬 대기업이 삼성물산의 중국 DTY사 대량 수입 유통에 태클을 거는 것은 국내 산업 환경이 날로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도저히 가격경쟁은 물론 품질 경쟁에서까지 일부 믿지는 취약점 때문이다.


알려진 대로 삼성물산이 DTY사를 수입하는 중국 행리社는 세계에서 가장 큰 화섬 공장이다. 이 회사 생산량은 한국 전체 화섬 생산능력보다 많다.

대량 생산에 따른 규모경쟁 앞에 생산성과 가격경쟁력에서 국산 화섬사는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기본관세와 덤핑관세를 다 물고도 국산 원사보다 10~20%가 싸다.

단순 가격경쟁에서도 국산 화섬사 대부분이 속수무책으로 경쟁력이 없다. 여기에 도입 설치된 지 5~10년에 불과한 중국의 화섬설비는 30~40년 된 한국 설비와 비교할 때 생산성뿐 아니라 품질에서도 오히려 앞선 부문이 있다.

이같은 경쟁력 우위를 확보하고 있는 중국산 DTY사를 삼성물산이란 대기업이 월 1000톤 이상 들여와 국내 시장에 풀어버리고 있다. 가격이 싼데다 자금력을 내세워 60일 이상 유전스 조건으로 거래 조건을 제공하다 보니 실수요자들이 “웬 떡이냐”며 무더기 이동하고 있다. 중국산 화섬 가공사의 품질, 가격경쟁력에 이어 삼성이란 자금력을 바탕으로 유전스 거래를 하니 국내 메이커들이 견뎌낼 재간이 없다. 그래서 “삼성이란 대기업이 화섬사 수입까지 해서 국내 산업의 목졸림을 조장할 수 있느냐”는 반발에 부딪히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는 중소 가연업계가 최근 동반성장 위에 중소기업 적합업종 연장합의서를 제출하는 과정에서 최근에 정식으로 문서화해 제기했다. 동반성장위원회 간부들도 “일리가 있다”는 판단아래 본격 조사를 다짐하고 있다. 중소 가연업계뿐 아니라 국내 최대 화섬업체 某 회장이 지난주 윤상직 산업부 장관을 직접 만나 삼성물산의 중국산 화섬사 수입 공급을 맹렬히 비난한 것으로 알려졌다. 득달같이 무역위원회 등지에서 진상 조사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한 가지 딜레마에 빠진 것은 실수요자들의 반응이다. 주로 경기북부에 산재한 니트직물 업체들은 값싸고 품질 좋은 중국산 원사를 그것도 외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혜택을 “왜 막느냐”는 반론이다.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이 원사를 60일 이상 외상 조건으로 싸게 구매하는 것은 그만큼 경쟁력에서 유리하다는 논리다. 오히려 대구를 중심으로 한 가연업계의 삼성물산 성토가 못마땅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중시할 것은 나무만 보고 숲을 못 보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지금은 중국산 화섬사가 삼성물산이나 다른 회사를 통해 한국에 싼 값으로 공급하지만 어느 순간 상황이 바뀌면 180도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법적으로 하자 없지만 대승적 결단을

이미 염료를 희토류처럼 독과점 횡포를 부려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어오른 현상을 우리는 눈 뜨고 당하고 있다. 화섬사를 비롯한 국내 산업이 어느 날 만세 부르면 한국의 화섬 시장은 중국산이 마음대로 휘젓는 개구리 운동장처럼 광범위하게 펼쳐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명제는 분명히 설정돼 있다. 삼성물산이 자유경쟁체제에서 법적으로 하자는 없지만 말썽 많은 화섬사 수입 유통에서 과감히 손을 떼야 한다. 적어도 국내 최대 재벌그룹사란 위치를 고려해 원성이 많은 이 원사수입 유통에서 손을 뗄 것을 권유한다.

물론 삼성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고 화도 날 수 있다. 그러나 대형 마트가 재래시장 보호를 위해 월 2회 휴무하는 것처럼 시장 논리와는 맞지 않더라도 국내 산업 붕괴 방지를 위해 대승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국내 섬유제조업을 살려야 한다는 책임을 공유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런 한편 국내 화섬메이커나 가연업계 스스로 자생력을 길러야 한다. 글로벌 시대에 울타리를 막고 정부의 보호막에 의존하던 시대는 지났다. 중국산보다 싸고 질 좋은 화섬사를 사즉생(死卽生) 각오로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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