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m in Classic’ , ‘온고이지신’ 신장경표 모드

한국무용 발레리노서 독학으로 톱디자이너 성장 이채
국내보다 중국서 더 유명 스스로 알아보고 손 내밀어
‘디자이너연합회’ 산파역…SFW 단독주관 당위성 강조

- 청년시절 한국무용 발레리노

신장경 대표는 인터뷰 내내 한곳에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얘기를 풀어놓았지만, 자신이 현재 부회장을 맡고 있는 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에 대해선 강한 소명의식을 느끼고 있는 듯 했다.

지난주 신장경 트랜스모드 대표(디자이너. 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 부회장)를 찾았을 때 그는 서울 청담동 자신의 숍 뒷편에 있는 북카페에서 신입 디자이너 면접을 보고 있었다.

두툼한 검은 안경테에 스트라이프 셔츠차림으로 기자를 반갑게 맞더니 아이스커피를 내왔다. 이곳 커피는 모두 공정무역으로 도입된 원두를 사용하고 있다고 자랑한다.

호리호리한 체격과 경쾌한 걸음이 예사롭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패션디자이너에 입문하기 전 발레리노였다.

“한국무용을 했습니다. 중학교때부터 군입대까지 춤을 배웠지요. 당시만 해도 코리아하우스 내 외국인관광객들 앞에서 공연을 하는 등 공연이 제한적인데다 미래가 보이지 않았어요. 그런데 한국무용이 현대 발레와 섞이면서 정체성도 모호해진데다가 배고픈 생활에 갈등을 많이 했습니다.”

- “옷장사 해봐라” 등 떠밀려
신 대표는 결국 군 제대와 함께 발레에서 ‘생각지도 않은’ 패션의 길을 걷게 됐다고 술회했다.

발레는 훗날 그가 국내 대표적 패션 디자이너로서 성장하는데 영감을 주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오늘날 패션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 순전히 등 떠밀렸던 때문이라는 대목에선 의아스러웠다.
“동평화시장 보세시장을 드나들며 옷을 구매하다가 내가 직접 맞춰 입었는데 주변에서 저 보고 옷장사를 해보래요. 그러던 중 한 봉제업체 사장에게 직접 그림(디자인)을 그려 만들어 줄 것을 요구했죠. 그 옷을 입고 다니는데 보는 이들마다 차라리 옷을 직접 만들어 팔아보라고 하는 겁니다”

그는 얼마 후 옷가게를 물색하기 위해 홍대 앞으로 향했다. 아는 하청업체를 통해 옷을 만들어 가게에서 팔 속셈이었다.

옷이 맘에 들지 않으면 자신이 직접 만들거나 봉제업체 사장에게 세밀한 부분까지 설명하면서 자신이 구상했던 스타일을 요구했다.

“업체 사장님들은 제가 요구하는 대로는 옷이 안된다는 거예요. 되는데도 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직접 만들어보였죠. 디자이너로 본격 데뷔한 셈입니다.”

그는 가게 이름을 당시 한창 인기를 누리고 있던 스웨덴 혼성 4인조 팝그룹 이름을 따 'ABBA'로 지었다. 하지만 아바의 팬클럽으로부터 상표도용 문제로 항의해오자 ‘길다’ ‘으뜸’ 뜻의 ‘장(長)’으로 바꿨다고 한다.

그의 숍 ‘장’은 곧바로 유명세를 타더니 백화점 입점으로 이어졌다. 얼마 뒤 외형이 커지면서 주식회사로 전환하게 된다.

이번에는 브랜드 이름을 일본서 유행하던 아트비디오 제목을 따 ‘트랜스블루’로 지었다. 그러다가 얼마 안가 현재의 ‘트랜스모드’로 안착했다.

트랜스모드는 Across(교차)ㆍThrough(관통)ㆍChange(변화)ㆍOver(그 이상) 등의 뜻이 담겨있다고 설명했다.

- 독학으로 자신의 영역 개척
그가 브랜드 이름을 자주 바꿔가며 이처럼 꼼꼼한 모습을 보니 배경이 궁금했다.

신 대표는 국내 정상급 패션디자이너임에도 불구하고 패션기관 등에서 정규 수업 과정을 전혀 거치지 않았다. 오로지 독학으로 전문성과 자신의 영역을 구축해 온 것이다.

이는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도 드문 케이스다. 유럽의 크리스챤 디올 등 유명 디자이너들의 경우 정규 코스를 걷지 않았다 해도 가업 승계 형식으로 대물림을 하면서 자연스레 디자이너스펙을 쌓은 것이다.

신 대표는 이들을 패턴사라고 불렀다.
“순전히 감각과 열정으로 시작했죠. 그래서 다른 사람보다 꼼꼼히 따지는 편인가 봐요. 어깨 너머로 배우다보니 초창기엔 패션용어 등을 몰라 쩔쩔맸습니다. 국내외 패션관련 서적을 모아서 독학했죠. 주변에서 이런 저를 보고 ‘찢어진 백과사전’이라고 하더군요(웃음). 브랜드 이름도 숙고 끝에 완성합니다.”

- 디자이너연합회 출범 산파역
그는 시종 웃음 띤 얼굴로 차분하게 얘기를 풀어놓다가 자신이 부회장을 맡고 있는 (사)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에 관련한 질문이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속내를 쏟아놓았다.

신 대표는 2011년 디자이너연합회를 출범하는데 산파역을 담당했다.

“서울패션아티스트협의회(S.F.A.A)의 11대 회장을 역임 당시 4개월 동안 자비를 들여 패션 원로 디자이너들을 만나 디자이너연합회 발족의 당위성을 알렸죠. 디자이너들을 규합하고 진태옥, 한혜자 등 명망있는 이들을 앞세워 2012년 연합회를 발족시킨 것입니다”

신 대표는 연합회 초대회장에 이상봉 디자이너를 ‘옹립’한 것도 자신의 고집이었다고 한다. 대외적으로 널리 알려진 대중적인 인물이 맡아야 된다고 생각했다는 것.

연합회는 초창기 100여명에서 현재는 280여명으로 늘었고, 대구, 부산지부로 확장하고 있다.

연합회 출범의 당위성이 무엇이었냐고 묻자 우리나라 패션산업의 발전을 위해서 강력한 구심체가 요구된 거라고 힘주어 말한다.

“현재 서울시에서 서울패션위크(SFW)를 관장하고 있는데 관에서 정책을 입안하고 예산을 집행하다보니 패션 디자이너 업계의 현실과 괴리가 많습니다. 이의 개선을 요구할 목소리를 낼 단체가 없다시피해요. 명실공히 전문 패션디자이너 단체가 필요했고, 활발한 활동이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구상대로 연합회가 적극 건의한 끝에 서울시 단독으로 해오던 SFW는 지난해부터 시와 디자이너연합회 등이 공동 주관하고 있다.

주요 현안 한 가지가 1단계로 풀린 셈이다.

- “SFW, 연합회 주관이 효율성”
SFW를 연합회 단독으로 운영하겠다는 것이 회원들의 주장인데, 관(서울시)이 아닌 민간(연합회)에서 주관할 경우 어떤 효율성이 있는지 물었다.

“우선 브랜드 참여도가 높아집니다. 또한 민간 기업들을 후원사로 끌어들여 서울시 예산없이 알차게 진행시킬 수 있죠. 외국에서도 왜 SFW를 관에서 하느냐는 시선이에요.”

그는 SFW 예산을 기획사들과 바이어초청 하청업체들이 소진하다보니 정작 마지막 단계인 연합회에는 전혀 배정이 안되고 있는 점도 불만으로 내세웠다. 이밖에 행사 진행을 계속 홍보대행사들에게 맡기면서 매너리즘에 빠져 있다는 것.

그는 서울시가 법과 예산에만 맞추다보니 몸 사리기 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서울시 주무 직원으로 대리급을 내세운 것도 패션디자이너들을 홀대하고 있는 거라고 서운해 했다.

연합회에 이같은 요구에 서울시는 법 테두리 밖이라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는 것.

그는 연합회 소속 주요 디자이너들과 함께 시청을 방문 박원순 시장에게 이같은 의견을 전달했지만 진전이 없는 상태라고 토로했다.

- 한국 디자이너 위상 높아져
신 대표는 디자이너와 패션행정가뿐 아니라 현재 이화여대 패션디자인학과에서 강의를 하는 등 교수로서도 왕성한 모습이다. 하지만 그는 대학에서 후학 양성이 신바람과는 거리가 있다며 씁쓸해 했다.

“커리큘럼이 인문학 쪽에 치중해 있는 것은 생각해봐야 해요. 학교가 학원보다 못하는 꼴이 된 거죠.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고 들어온 학생들이 졸업 후 다시 학원이나 유학을 가는 실정입니다. 실용학문의 강화가 절실합니다.”

한국의 패션 디자이너의 국제 위상과 경쟁력은 어느 수준인지 궁금했다.

“과거에 비해 매우 높아졌습니다. 디자이너 대부분이 해외 유학파들입니다. 언어가 된다는 것은 글로벌 패션전문가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고 이는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어릴 때 음악과 미술학원 등을 거친 터라 기본기들이 탄탄합니다. 심지어 유럽 매장에선 ‘NO KOREAN’ 문구를 볼 수 있는데, 이는 한국 디자이너들의 스킬이 뛰어나 카피 방지를 위한 수단으로 붙여놓은 것입니다. 중국인들처럼 단순히 짝퉁을 생산한다는 의미가 아니죠. 우리 디자이너들의 제품 해석 및 응용력이 뛰어나다는 뜻입니다”

- 중국서 먼저 알아본 신장경
신 대표는 한국 패션디자이너로는 최초로 중국에 단독매장을 오픈했고, 한-중 공동패션쇼를 주최하는 등 중국 쪽 활동이 활발하다.

“이 또한 우연한 기회에 찾아 왔어요. 몇해전 강남의 한 백화점에서 ‘왕로지(중국에서 콜라대신 마시는 인기음료)’업체의 사장 부인이 제게 제안해 광저우에 유이 백화점에서 브랜드를 오픈하게 한 겁니다. 현재 그쪽에 컨설팅과 디자인을 제공하면서 마케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광저우 백화점 오픈은 결국 선수가 선수를 알아본 셈이다.

신 대표가 빨강색을 많이 쓰다 보니 중국인 기호에 맞아 떨어진다고 판단했고, 이후 중국인들에게 신장경 브랜드는 빠르게 알려졌다.

실제로 최근 국내 한 매체가 발표한 중국인 대상 한국 브랜드 인지도 설문조사에서 ‘신장경’이 4위를 차지한 것도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신 대표는 의류를 직접 수출하는 것보다 디자인을 수출하는 편이 훨씬 낫다는 판단에  디자인 및 컨설팅에 비중을 두면서 광저우 베이징 등을 왕래하고 있다.

그는 전시회 전단계인 참관, 시장조사 등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유럽보다 중국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은 홍보 및 과시 측면이 많아 중국보다 실속이 적다는 것.

- 클래식-모던 재해석 ‘온고지신’
그가 운영하고 있는 트랜스모드는 지난해 연매출 70억 원을 기록했다.

현재 중국 광저우와 국내에 12개 매장을 두고 있는데 주로 백화점 위주로 전개되고 있어 앞으로는 로드숍으로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신 대표는 50~60년대 클래식과 현재의 럭셔리한 라이프스타일을 동시에 추구하면서 폭넓은 선호층을 확보하고 있다.

자신의 패션장르와 색깔에 대해 한마디로 요약해달라고 하자 ‘Boom in Classic’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으로 정리했다. 고전과 현대를 재해석한 것이다.

그는 제품에 성징(性徵)이 나타나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흑백을 활용한 심플하면서도 컬러플한 모습이 어필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소비자들이 자신의 트랜드를 만들어주고 있다는 점도 덧붙였다.

신 대표는 올해 4월 ‘크리에이티브’ 공로로 중국시시패션위크 초청 ‘Golden Lion Awards’을 수상했다.
조직위에서 매스컴 등을 통해 알아보고 자신을 초청을 한 것인데 일본, 홍콩의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단독 수상해 자신도 깜짝 놀랐다며 웃었다.

끝으로 우리나라 패션시장의 전망과 나아가야할 방향을 묻자. 신 대표는 ‘전문성’을 강조했다.

“패션업계도 3D로 들어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종사자들이 줄고, 아웃도어ㆍSPA 등으로만 편향된 모습을 보이고 있어요. 부티크(전문화)가 강화돼야 하는데 대기업화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패션디자이너는 오케스트라 지휘자입니다. 연주하는 사람들(봉제업)이 많아야 훌륭한 하모니가 나오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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