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세월호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 벌써 한 달 가까이 온 국민이 비통과 분노에 몸서리 치고 있다.

세계 10위권 경제대국 대한민국의 현주소가 요것 밖에 안 된다는 자괴심은 뒷전이다. 속수무책으로 어린 새싹을 수중고혼으로 만든 무능한 정부를 비판하는 핏발 선 눈길은 불신의 풍랑으로 이어졌다. 수백명 인명을 수장시키고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대책 없이 우왕좌왕하는 정부 모습에 국민들이 부아가 치밀었다. 무한책임을 강조한 진정성 있는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도 먹혀들지 않고 있다. 어른도 믿지 않고 정부도 믿지 않는 불신의 골이 너무 깊다.

4ㆍ16 세월호 참사가 끝이라면 체념할 수 있지만 도처에 지뢰밭이 깔려 있어 좌불안석이다. 항공, 선박, 지하철, 가스, 교실, 놀이기구 등 곳곳에 대형사고 초침소리가 째깍째깍 들리는 것 같아 모골이 송연해 진다.  

섬유ㆍ패션 내수 수출 수렁에 빠졌다.

사고 공화국에서 안전 공화국으로 탈바꿈하는 국가 개조가 발등의 불이다. 그 바탕에서 세월호 사태를 빨리 수습하고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식당도 가게도 장사가 안 된다고 아우성이다. 우리 경제가 더 이상 쪼그라들어서는 안 된다.

바닥을 헤매는 내수 경기는 지하실로 내려앉고 있다. 소비 증가율이 3분1토막으로 침체되고 경제성장도 더욱 초라해질 전망이다.

세월호 희생자에 전 국민적 애도를 표하면서 정부부터 유족들을 위로하고 파격적으로 보상해야 한다. 그 바탕위에서 안전사회로 가는 거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초상집 분위기가 장기화되면 게도 구덕도 다 놓친다. 거함 대한민국호를 침몰 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핑계 없는 죽음이 어디 있겠는가마는 세월호 사건을 전후해 섬유ㆍ패션업계가 더욱 팍팍하고 고달파지고 있다. 백화점이건 가두매장이건 고객 발길이 뚝 끊어졌다.

주말이면 몰려드는 인파로 장사진을 치던 파주 아울렛 매장까지 최근 들어 극히 한산해졌다. 옷 장사만 안 되는 것이 아니라 크고 작은 식당마저 사람이 줄어 서민 생활이 더욱 고달파지고 있다.

살얼음판을 걷는 것은 내수패션업계뿐 아니라 절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섬유수출에도 빨간 비상등이 켜졌다. 단순 논리로는 지표상 수출실적은 조금 늘어나고 있지만 내부를 내시경으로 들여다보면 빈사상태에 빠져 있다.

가장 활발하게 외형성장을 유지하고 있는 의류수출 벤더들도 채산에 비상이 걸렸다. 미국 바이어들은 매년 가격을 후려친다. 올해 수출 단가가 10년 전 가격보다 싸다면 짐작이 갈만하다. 그러다보니 더 싼 원자재를 찾다 세계를 뒤지고 있고 그만큼 가격경쟁력이 낮은 국산 소재 비중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의류수출 벤더들과 거래량이 많은 경기북부 니트업계에 오더가 급감하고 있고 반월, 시화 염색공단의 가동률이 40% 남짓인 곳이 허다할 정도다. 어느 한 스트림에 음지가 있으면 다른 한 쪽은 양지가 될 법한데도 하나 같이 엄동설한에 떨고 있다.

화섬업계는 외국산 화섬사에 대한 반덤핑 관세로 울타리를 막고 있지만 별 무효과다. 전 세계 수요량보다 공급능력이 많은 중국이 자국 경기침체로 인해 한국에 대한 무차별 저가 투매를 강화하고 있다. 기본관세와 덤핑관세를 물고도 한국산보다 10~20%까지 싸게 공급하다 보니 국내 화섬업계가 맥을 못 추고 있다.

옛날에는 다운스트림 업계에 애국심을 호소하기도 했고, 국내 산업이 죽고 나면 원사값 바가지가 불을 보듯 뻔하다고 해도 들은 척도 안한다. 외할머니 떡도 싸고 맛있어야 사 먹듯 다운스트림 업계가 채산이 안 맞는데 의리 지킬 수 있느냐는 현실론에 부딪히고 있다.

업스트림의 간판인 면방업계도 죽을 쓰기는 마찬가지다. 평소 연초가 지나면 2월부터 성수기가 도래해 불티나게 나가던 것이 올해는 성수기 없이 비수기에 접어들었다.

국제 원면값은 강세인데 면사값은 거꾸로 추락하고 있다. 급한 김에 품질이 조악한 인도산보다 오히려 값이 싼 국산 화이트사의 막장투매가 기승을 부린다. 직수출 시장인 중국 경기가 침체되면서 대량 물량을 쳐낼 곳이 없다. 상당수 면방업체에 재고가 쌓여 원가 이하로 팔다보니 심할 경우 고리당 50달러씩 밑지고 있다는 것이다.

섬유수출 중 가장 비중이 큰 직물수출도 어렵기는 매한가지다. 지난 20여년간 한국의 독자 상품으로 세계 시장을 석권하던 ITY니트직물이 거의 죽다시피 주저앉고 말았다. 유일하게 중국이 따라오지 못해 한국의 독점물인데도 들쥐떼 근성으로 소나기 진출해 공급과잉이 화근이었다. 대량 수요처인 터키에서부터 한국산 ITY싱글스판은 철저히 외면당해 가격이 말이 아닐 정도다.

우븐직물 중 대표적인 주종 품목인 폴리에스테르 치폰직물은 천정 높은 줄 모르고 가파르게 뛴 연사료 폭등으로 중국이 손을 댔다. 중국산 치폰직물이 가격경쟁력을 앞세워 세계 시장을 휘젓고부터 대구 산지에 비명이 울려 퍼졌다.

단순한 해외 시장에서의 경쟁력 악화뿐 아니다. 얌체 트레이딩들이 중국산 치폰생지를 컨테이너 베이스로 들여와 대구 염색공단에서 가공 수출하고 있다.

그것도 버젓이 ‘메이드 인 코리아’ 상표로 선적하고 있다. 이같은 행위는 중동이나 아프리카 지역은 문제가 없지만 FTA를 체결한 미국이나 EU에 수출하는 것은 화약을 지고 불로 뛰어드는 격이다.

미국은 FTA협정상 철저한 ‘얀포워드’규정을 적용하고 있어 원사부터 국산을 써야하고 EU역시 2단계 이상 공정을 한국 내에서 거쳐야 한다. 이것을 지키지 않고 외국산 원사나 생지를 들여와 제직 염색하거나 생지를 들여와 염색 가공해 미국과 EU에 수출하면 원산지 규정 위반에 걸린다.

이 와중에 환율까지… 도처에 지뢰밭

아직 미국 세관과 우리 세관이 단속을 하지 않아서 대충 넘어가고 있지만 필연적으로 확인절차가 임박하고 있어 시한폭탄일 가능성이 크다.

세계 시장경기가 아직도 냉골인 상태에서 설상가상 섬유 수출업계의 숨통을 조이는 것은 급격한 환율 폭락이다. 최근 들어 원달러 환율이 1020원 대로 하락하면서 섬유 수출업계가 비명을 지르고 있다.

경기침체로 피스 또는 야드당 몇 전을 다투며 겨우 원가 수준에 오더를 받은 섬유 의류업계 입장에서 이같은 원화가치 상승은 수출에 목을 조르는 격이다. 작년 말 기준 벌써 환율이 100원 가까이 떨어져 100만달러 수출에 1억 원이 증발한 꼴이다.

이같이 섬유 수출업계가 비명을 지르는 것과는 달리 섬유 의류수입은 호재를 만나 정비례 현상을 맞고 있다. 외국산 화섬사나 면사 수입은 더욱 유리해졌고 의류 수입업계도 표정관리하고 있다.
세월호 사건으로 비분강개하고 있는 상황에서 수출업계가 환율까지 악재를 만나 분기충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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