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장이 무너진다. 분노와 한숨, 눈물과 절규로 온 나라가 초상집이다. 국내 최대의 크루즈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하기까지 2시간 이상을 온 국민과 세계가 구경하면서 300명 가까운 인명을 수장시켰다.
저만 살겠다고 먼저 빠져나온 오사(誤死)할 선장의 중형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선장은 자리를 뜨고 1년짜리 초보 항해사가 배를 몰아도 단속하지 않은 정부당국은 입이 백개라도 할 말이 없다.

그동안 수많은 대형 해양 참사를 겪고도 비상대응에 대한 매뉴얼 하나 없이 허둥대는 이 나라가 세계 일류국가인가. IT, 조선건조 기술 1등 국가란 삐까번쩍한 자랑 뒤에 감춰진 후진국성 맨살이 여과 없이 드러났다.

롯데홈쇼핑의 추악한 뒷돈 챙기기

전쟁과 테러만 무서운 게 아니다. 천재(天災)나 인재(人災) 또한 엄청난 참사를 불러온다. 정부나 정치권은 국민에게 표만 요구하지 말고 국민을 살리고 지키는 일에 전력투구해야 한다. 꽃다운 나이에 피어 보지도 못하고 수중고혼이 된 희생자들의 영령 앞에 이 나라 어른들은 모두가 죄인임을 알아야 한다.

화재를 바꿔 최근 롯데 홈쇼핑 대표와 직원이 납품업체로부터 뒷돈을 받은 추악한 사실이 드러나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줬다. 그것도 우리나라 유통재벌 1위인 롯데홈쇼핑에서 일어난 사건이라 관련 업계는 물론 일반 시민들도 화들짝 놀랐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곯은 것이 터졌을 뿐 어제 오늘의 관행이 아니다. 홈쇼핑의 갑질 앞에 납품업체는 밥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돈 것도 오래된 소문이다.

황금시간을 잡기 위한 경쟁이 심한 점을 이용해 ‘甲’의 횡포와 독선은 무소불위인 것으로 알려져 왔다. 문턱이 하도 높아 납품업체는 홈쇼핑 관계자와 접근 자체가 어려워 담당 MD를 만나기 위해 로비전담 벤더사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중개비조로 매출의 6%를 로비 전담 벤더사에 줘야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패션제품의 경우 판매 수수료를 최고 37%까지 별도로 공식 지불하는 것은 당연한 조건이다.
반품 부담은 전액 납품업체 몫이다. 반품율이 높은 홈쇼핑 장사로 재미 보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같이 추잡하고 불공정한 홈쇼핑 판매에도 뒷돈을 주고서도 참여하려는 이유는 일단 돈이 남건, 안 남건 매출이 일어나고 여기에 홍보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바로 공급과 수요 원칙이 적용되고 있다. 홈쇼핑에 참여하려는 납품업체가 줄을 서 있기에 홈쇼핑 측의 콧대가 높아지고 횡포와 독선이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지난 95년에 탄생한 홈쇼핑 TV는 매년 두 자릿수 초고속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지난해 홈쇼핑 TV 매출은 14조원으로 20년 새 2000배나 급성장한 것이다.

따지고 보면 홈쇼핑 TV의 횡포와 독선은 우리나라 유통업계가 안고 있는 원천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유통을 쥐락펴락하는 슈퍼 ‘갑’ 공룡백화점의 독선과 횡포에서 전이 된 것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중언부언하지만 유통의 꽃이라는 공룡백화점의 무소불위의 독선을 홈쇼핑 TV가 그대로 답습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백화점 관계자들이 뒷돈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는 밝혀지지 않아 단언할 수 없지만 그 개연성은 얼마든지 유추 해석할 수 있다는 여론이다.

알려진 대로 백화점은 건물만 덩그러니 지어놓고 거액을 챙기는 악덕 부동산 업자와 다를 바 없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우리나라 백화점은 외국 백화점의 완사입 제도와 달리 거의 100% 수수료 매장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판매수수료를 37%까지 챙기고 광고선전비는 입점업체에 전가시키고 각종 행사비도 입점업체 몫이다. 정해진 매출목표를 채우지 못하면 퇴점 압력이 무서워 자기 카드로 가짜 매출을 올려야 하고 이 경우도 수수료는 여지없이 백화점 수입이다.

백화점 리뉴얼에 따른 인테리어 비용 역시 입점업체에 부담시키고 판매사원 월급과 심지어 건강진단비, 야유회비까지 입점 업체에 부담시키는 수전노 같은 행태를 자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백화점 바이어는 입점 업체의 ‘갑’중의 ‘갑’이란 점에서 잘 보이기 위해 충성경쟁을 벌여야 한다. 자칫 매출이 떨어지거나 바른 말을 해 삐딱하게 보였다하면 득달같이 퇴점압력이 들어온다.

국내 브랜드와 해외 수입브랜드와의 차별대우 또한 극심하다. 이른바 해외 명품 브랜드에게는 수수료 10%미만이고 자리도 가장 좋은 1층에 인테리어 비용을 백화점이 부담한다. 반면 국내 브랜드는 해외 브랜드보다 매장 위치도 불리한 것은 물론 인테리어 비용도 입점 업체 몫이고 수수료를 37%까지 내야 한다.

백화점 입점 업체들로서는 공룡백화점이 대한민국 최고 권부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들여다  보고 있지만 구조적인 슈퍼 ‘갑’의 횡포를 바로 잡기에는 역부족이다.
물론 백화점 횡포와 독선의 배경에는 입점업체들의 책임도 크다. 불공정 행위에 대해 정정당당하게 대응해야 하지만 퇴점 압력을 각오하지 않으면 이같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자살 행위기 때문이다.

또 조그만 중소기업 직원들도 노조를 만들어 권익을 보호하는데 기라성 같은 회사들이 함께하고 있는 수천개 백화점 입점 업체들은 권익을 위한 친목모임하나 없다. 공룡백화점이 눈을 치켜뜨고 지켜보고 있어 엄두를 못 낸다.

비겁한 행동인지 알지만 회사의 사활이 걸려있다 보니 알아서 갈 수밖에 없다. 누구도 자기 업을 포기하거나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총대를 멜 생각을 않고 있는 것이다.
바로 공룡백화점의 무소불위 횡포와 독선이 홈쇼핑 TV에 그대로 전이됐다고 볼 수 있다. 슈퍼 ‘갑’의 독선과 횡포는 결국 거액의 뒷돈을 챙기는 홈쇼핑 TV의 부정과 비리로 발전한 것이다.

이번 국내 간판급 유통재벌인 롯데홈쇼핑의 납품업체로부터 뒷돈 챙기는 추악한 행태는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한다. 기둥을 치면 대들보가 울리듯 롯데홈쇼핑 TV의 검찰수사를 계기로 홈쇼핑 TV는 물론 공룡백화점의 갑질도 척결돼야할 때가 왔다.

5대 백화점 패션업계 첫 상생회의

다만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콧대 높던 공룡백화점이 시대의 변화를 타고 형식적이나마 입점 협력업체와 동반성장에 호응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연말 한국패션협회와 백화점협회 간에 체결한 상생협력을 위한 MOU체결이 시발점이 돼 슈퍼 갑의 변화된 모습이 감지되고 있는 것이다.

그 첫 결실로 오는 25일 오전 르네상스호텔에서 5대백화점 전무급과 패션협회 및 업계 대표 10여명이 함께한 첫 상생회의가 열린다. 백화점의 일반통행식이 아닌 납품업체인 입점업체 간에 상호협력을 통한 동반성장책을 협의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이 회의를 통해 슈퍼갑인 백화점 업계가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만남 자체가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무리한 수수료 인상에서부터 인테리어 비용, 광고비 전가 등의 모순을 시정하고 해외 브랜드와 국산 브랜드의 차별대우 등을 시정하기 위한 상생의 시금석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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