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남북통일은 대박’ 화두가 독일에서도 꽂혔다.

 동독 출신 메리켈 독일 총리도 “동서독 통일은 대박”(Gl?cksfall, 횡재)이라고 화답했다. 박 대통령과 메리켈 총리가 급기야 한반도 통일에 협력하기로 뜻을 모았다. 평화통일을 달성한 독일의 경험을 한반도에 전수하겠다니 그보다 반가운 일이 없다.
 

그러나 세계 2위 경제대국 자유진영의 서독과 피폐한 경제에 공산정권인 동독의 통합에는 한반도와 본질이 달랐다. 동서독 간에는 그래도 왕래가 가능했고 1800만 동독 국민들은 서독의 TV를 마음껏 시청할 수 있는 자유를 누렸다.
 

그러나 지구촌의 변방 북한은 남북 간 왕래가 막혀있고 TV시청도 불가능한 죽의 장막 동토다. 이번에도 한ㆍ미ㆍ일 3국 정상이 악수하는 그 순간 노동 미사일을 쏘아 어깃장을 놓을 정도로 호전적이다.

비온 뒤 땅 굳어 입주기업 표정관리

“북한 핵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은 북한 우방 중국도 공감하고 있는데도 이를 강조한 박 대통령을 향해 “동네 아낙네의 횡설수설”로 비하하는 막말을 퍼부었다. 독일을 보면서 통일은 대박이지만 한반도에서 통일대박은 요원함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아무리 고약하고 악랄한 집단이지만 포기할 수도, 포기해서도 안 되는 것은 남북 평화통일이다. 독일도 서독이 흡수통일이 아닌 경제력을 앞세운 평화통일이었다. 그러기 위해 우리 경제력을 더 키워야 한다. 국민소득이 1인당 5만불 대에 육박하면 부황 든 인민들의 죽기살기식 저항으로 북한 정권인들 버틸 재간이 없다. 총칼보다 더 무서운 것은 먹고 사는 문제다. 이 설움 저 설움 다해도 배고픈 설움보다 큰 것은 없다.
대통령이나 군대가 할 수 없는 인민의 의식 변화는 경제력뿐이다. 바로 개성공단 같은 자연스러운 경제협력 방안이다. 개성공단이 가동된 지 벌써 9년 째 접어들었다. 그동안 남북 간에 숱한 우여곡절이 있었고 지난해는 5개월 반이란 긴 시간 가동이 전면 중단되는 고통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는 남북 모두 개성공단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평소에 개성공단 폐쇄위협을 밥 먹듯 했지만 북측도 작년의 사태를 겪으면서 화들짝 놀랐다. 5만4000명 북측 근로자와 30만 개성시민의 호구지책 문제가 발등의 불이 돼 버렸다. 연간 9000만 달러에 달한 임금 수입을 벌충할 대안이 없었던 것이다. 아무리 감시감독이 심한 살벌한 집단이지만 춥고 배고픈 인민들의 이판사판 집단행동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개성공단이 잘못되면 세계 어느 기업도 북한에 투자할 수 없다는 엄격한 자계훈을 남겼다.
물론 개성공단 폐쇄나 가동중단이 북한만 죽게 만든 것은 아니다. 북한 경제가 다 죽을 지경이면 우리 남측 경제도 상당한 데미지를 입는 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다행이 5개월 반 만에 정상화 됐기 망정이지 1년 가량 끌었으면 해당 진출업체들의 줄초상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123개 입주기업과 거래하는 원부자재 및 식자재 업체가 4000개를 넘은 상황에서 남한기업도 강도는 달라도 많이 아팠다.
더욱 아쉽고 안타까운 것은 비록 체제는 달라도 사람 사는 곳은 보고 듣고 느끼는 감정까지 막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토록 3인조, 5인조 감시조가 서슬 퍼렇게 지켜봐도 북측 근로자들의 보고 듣고 느끼는 인간의 본성까지 폐쇄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상상할 수 없는 좋은 작업환경 속에서 임금 전부는 아니지만 돈 벌고 잘 먹고 즐겁게 일한다는 사실에 북측 근로자의 생각이 바뀌었다. 개성공단이 아니면 구경할 수 없던 하루 6개에 달한 초코파이에 라면을 먹고 심지어 커피까지 마시는 별천지에 의식이 변한 것이다. 정확히 저울대로 달아 볼 수는 없지만 북측 근로자 대다수가 60~70%는 남측의 자본주의를 동경하고 변화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무리 감시감독을 해도 보고 듣고 느끼는 황색바람을 막을 수는 없는 것이다. 북한에서는 개성공단 근로자가 선망의 대상임은 널리 퍼져있다. 임금의 상당부문이 공제되긴 해도 처녀가 3년만 근무하면 부모한테 신세 안지고 혼수감을 마련할 수 있는 구세주인 것이다.
비온 뒤에 땅이 굳듯 지난해 5개월 반 동안 가동이 중단된 이후 지금의 분위기는 한층 고조되었다는 전언이다. 작년 4월 불의의 사태로 가동이 중단돼 북측 근로자들은 언제 재개되느냐고 안달을 했다는 것이다. 그 바탕에서 지금은 더 열심히 일한다고 입주기업 관계자들은 설명한다. 인력도 작년 4월 이전 수준인 5만4000명 전원이 복귀한데 이어 최근 300명이 더 공급됐다고 한다.
개성공단이 정상 재개되면서 북측만 즐거운 것이 아니다. 남측 입주기업들도 표정관리 할 정도로 재미를 만끽하고 있다. 가동중단 사태 때 이탈했던 거래선들은 거의 복원됐고, 신규 거래를 희망하는 기업이 줄을 서고 있다. 국내외 이 나라 저 나라 다 가보아도 개성공단 만큼 좋은 소싱처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수출용은 아직 제재를 받지만 내수용은 ‘메이드 인 코리아’로 인정받으면서 품질과 딜리버리, 물류비 모든 면에서 최고의 장점을 과시하고 있다.
한마디로 지난 9년 가까운 기간에 축적된 노하우는 품질에서 명품을 자부하고 있다. 처음부터 전직이 금지된 인력 구조로 봐 이제는 같은 공정에서 ‘한석봉 어머니 눈 감고 떡 자르는 식’의 숙련도를 익혔다.

개성 섬유전용 공단 준비 서둘러야

내국인 거래라서 중국이나 베트남 등지에서 들여온 것처럼 관세가 없다. 물류비도 서울-부산보다 서울-개성이 훨씬 싸다. 입주기업들은 작년 가동 중단 때 쌓아 놓은 완제품은 반출하지 못한 뼈아픈 경험을 살려 지금은 전일 생산 제품을 득달같이 당일에 반출하는 기민성까지 보이고 있다. 반응생산 기준에 따라 리오더 처리에 개성공단 만큼 좋은 곳이 없다는 것이다. 개성공단은 남북 경협의 성공사례이면서 정치 군사적으로도 유일한 대화 창구다. 지난해 남북 모두 뜨거운 맛을 본 개성공단은 다시는 가동중단 사태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같은 대전제에서 섬유패션업계는 현재의 100만평 시범단지와는 별도로 섬유전용 단지 조성이 시급한 과제다. 지구촌 어디를 가도 개성공단 만큼 임금과 생산성, 품질을 보장받는 나라가 드물기 때문이다. 아직은 5.24조치마저 해제되지 않고 있지만 미래를 대비해 준비를 서두를 때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가 서울대 강태진 교수팀에 의뢰해 타당성 용역조사를 실시한다고 하니 기대를 갖고 지켜보겠다.
개성공단에 섬유ㆍ패션 전용 단지가 조성되면 현재의 개성공단 시범단지보다 훨씬 큰 규모가 될 수 있다. 북한 인력도 합숙소 건립을 통해 더 많은 인력을 고용할 수 있다. 그들의 자본주의 의식 변화가 더욱 탄력을 받을 수 있고 이것이 작지만 통일을 향한 시금석이 될 수 있다. 북한을 도우면서 우리 섬유ㆍ패션산업, 나아가 우리 경제가 더욱 탄탄대로를 달릴 수 있는 처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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