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수(流水)같은 세월’은 옛날 옛적 고전이다. 분초를 다투는 변화의 속도만큼 요즘 세월은 총알처럼 빠르다.

새해가 엊그제인데 벌써 3월이다. 대동강 물도 녹는다는 우수ㆍ경칩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벌써 남녘에는 개나리, 진달래 꽃망울을 재촉한다. ‘꽃 피고 새 우는 봄’, 어감은 참 따듯하다.
그러나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섬유 수출 경기가 수출, 내수 싸잡아 여전히 엄동설한이다.
섬유ㆍ패션뿐 아니다. 돌아가는 통박이 얼마나 심각하면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는 삼성그룹이 긴축경영에 들어갔겠는가.

공기업을 포함한 정부부재 1000조원에 개인부채 1000조원의 부채공화국 국민들은 상황의 심각성을 모른다. 정부가 발등의 불인 공기업 부채를 줄이기 위해 칼을 뽑아도 민주노총은 파업투쟁으로 어깃장을 놓고 있다.

자기 밥그릇에 콩 작은 것만 탓하는 님비현상. 이것이 바로 잡히지 않으면 우리 공동체는 게도 구덕도 다 놓칠 수밖에 없다.

노 회장에 돌 던진 사람들 반성해야

화제를 바꿔 지난 2개월 남짓 섬유ㆍ패션업계를 뒤흔든 한 바탕 소동이 지나갔다. 섬유ㆍ패션업계의 새로운 수장(首長)을 뽑는 과정에서 평화롭던 섬유ㆍ패션업계에 일대 폭풍이 할퀴고 간 것이다.

흔히 정치권은 물론이고 이익단체의 선거판은 과열 혼탁이 다반사이지만 섬유산업연합회 회장 선출 과정에서 이 같은 상태가 벌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항상 회장이 제안하거나 발의하면 ‘옳소’로 응답한 지난날의 관행이 보편화됐기 때문이다.

지난 2개월 남짓 벌어졌던 반목과 갈등의 행태를 미주알고주알 복기(復碁)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히 짚고 넘어갈 것은 지도자를 존경하고 후배가 선배를 깍듯이 예우하는 오랜 전통을 짓밟아서는 안 되겠다는 점이다. 때로는 경쟁자를 이기기 위해 다소 과장된 비판이나 자가발전은 있을 수 있지만 훌륭한 지도자로서 숭상 받는 덕목까지 ‘제 논에 물대기’식으로 폄훼하는 행동은 삼가야 한다.

이번 차기 섬산련 회장 선출을 둘러싸고 가장 아쉽고 안타까운 것은 지난 6년간 몸과 시간, 돈을 희생하며 헌신적으로 봉사해온 노희찬 회장에게까지 무차별 인신공격을 한 점이다.
노 회장이 마치 3연임 욕심이 있어서 꼼수를 부린 양으로 인신공격을 한 것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너무 부박하고 몰염치한 처사였다.

절대다수가 인정했다시피 노 회장은 처음부터 3연임 욕심은 커녕 그럴 의도조차 없었다. 그래서 자칭해서 5인 추천위원에 들어갔고, 현직 회장으로 연부역강한 후임 회장을 선출해줘야 할 책무가 있었던 것이다.

다만 실수가 있었다면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5인 추천위원회가 만장일치로 의견을 모을 것으로 낙관한 것이 잘못이었다. 자신이 3연임을 하지 않는 한 자기 뜻에 따라 줄 것으로 과신한 것이다.

그러나 실수한 것과 나쁜 것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섬유ㆍ패션업계가 사분오열되는 파국을 막기 위해 떠밀려 잠정 3연임을 고려한 것인데 이것이 의도된 꼼수로 오도돼 무차별 인신공격을 받았다. 물은 비등점(沸騰點)에 도달하면 끓어 넘치고, 댐이 한계수위를 지나면 무너지는 물리적 이치는 사회적 현상과 상통한다. 그래서 3차 추천위원회가 끝내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하고 3연임의 오해를 견디지 못해 2월 19일 긴급 임시이사회를 소집했다. 이 자리에서 비분강개의 격정을 억누르며 그동안의 과정과 마음고생의 일단을 토로하면서 ‘3연임 안 한다’고 재천명했던 것이다.

노 회장의 불가피했던 3연임 고려가 앞뒤 다 잘린 채 ‘3연임 욕심’으로 왜곡되면서 총회 석상에서의 집단행동과 직무정치 가처분 신청 준비 등 온갖 설이 난무하기도 했다. 다행히 ‘3연임 고사’의 진정성이 확인되면서 총회가 조용히 끝났고, 미진한 정관규정을 보완하는 등 재발방지 장치가 새로 마련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3연임을 안한 것은 본인을 위해서도 섬유ㆍ패션업계를 위해서도 아주 잘한 결단이다.

여기서 한 가지 무심 이상의 관심을 끈 것은 지난 19일에 열린 임시 이사회에서 일부 이사들이 격정을 감추지 못하면서 토로한 발언이 화제가 되고 있다. 방직협회 회장인 김준 경방 사장은 조부께서 전 경련회장을 역임했고 선친인 김각중 회장도 전경련 회장과 섬산련 회장을 역임했다.

그는 선친인 김각중 회장이 전경련 회장을 맡던 시절 후임 회장 선출이 자천 타천으로 설왕설래할 때 이건희 회장에게 후임 회장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하자 이 회장이 “현직 회장인 김 회장님 소신대로 하시죠”라고 현직 회장에게 힘을 실어줬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섬산련 회장 역시 현직 회장이 의중에 있는 분을 추천하는 것이 정도이고 또 총회에서 이를 수용하는 것이 순리가 아니냐”고 강조해 많은 이사들이 수긍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중진 이사는 “최근 섬산련 회장 선출을 둘러싸고 온갖 잡음이 그치지 않고 있는데 대해 후배로써 선배들에 대한 존경심이 생기지 않는다”고 뼈있게 일갈했다는 것이다.
그렇다. 정관에 규정돼 있는 것은 아니지만 후임 회장을 선출하는데 현직 회장의 의중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은 하나의 불문율이다. 물론 함량이 미달된 인사를 개인의 친불친에 따라 추천한다면 경우가 다르다.

결론적으로 섬유ㆍ패션업계는 산업의 특성상 쇠파이프 만지는 업종과는 확연히 다른 신 사업종이다. 깨고 부수는 강성 산업과 달리 순하고 착한 업종이다.
후배가 선배를 존경하는 오랜 전통이 변질돼서는 안 된다. 현직 회장이 부정부패로 지탄을 받은 경우는 다르지만 순수하게 헌신적으로 봉사한 지도자를 섬기고 기억하는 것은 후배들의 몫이다.

화합과 단결위해 서로를 보듬자

아버지가 할아버지에게 효도하지 않으면 아들도 아버지에 효도하지 않는다. 후배 지도자가 선배 지도자에게 깍듯이 존경하지 않으면 후배 지도자로부터 똑같은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다.
39년 섬산련 역사의 역대 회장 중 가장 헌신적으로 온 몸을 던져 봉사한 사람 중의 한 사람인 노 회장에게 가해졌던 무례는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자계훈(自戒訓)을 남겼다.

우리 업계가 팩트(FACT)에 근거하지 않고 ‘아님 말고’식의 잔혹하고 부당한 행태는 최소한 지켜져야 할 상도(常道)도 아니고 금도(襟度)도 아니다.

거두절미하고 늦었지만 이제라도 섬유ㆍ패션업계의 전통인 화합과 단결을 위해서 모두가 보듬으며 지혜를 모을 때다. 잠시나마 깊이 패 인 마음의 상처에 새살이 돋아나도록 양보하고 위로 할 때다.
비온 뒤에 땅이 더 굳어진 것처럼 이해하고 협력해야 한다. 섬산련 회장 선출을 둘러싸고 과거에 볼 수 없던 회화적인 진풍경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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