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이나 기업, 국가를 불문하고 안되려면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지기 마련이다. 비록 자연이 몰고온 재앙을 인력으로 막을 순 없지만 하늘이 내린 징벌은 너무 가혹하다.10년만의 폭염으로 산천초목은 물론 사람까지 삶아대더니 태풍 '메기'까지 몰아쳐 풍비박산을 냈다. 가뜩이나 살아가기 팍팍한데 무서운 재난까지 겹쳐 허탈한 탄식을 떨칠 수 없다.설상가상으로 3차 오일쇼크까지 예고돼 거덜나고 있는 우리경제에 기름을 퍼붓고 있다. 석유수입 세계3위, 석유수요 세계6위라는 정신 못차린 국가가 필연적으로 겪게될 경제의 치명상을 무슨 재주로 막을지 오금이 저린다.눈을 조금만 밖으로 돌리면 더욱 울화가 치민다. 10년 불황을 탈출한 이웃 일본은 도약의 날개를 달아 떵떵거리고, 세계의 공장 중국은 한국을 우습게 볼 정도로 경제 대국으로 비상하고 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역사왜곡도 자신감 넘치는 경제력을 바탕으로 비롯됐다. 양파처럼 벗길수록 속이 드러나지 않는 떼놈근성을 이제와서 삿대질하는 우리가 한심하다.호떡집에 불난 쿼터정책더욱 혼란스런 것은 중국과 일본이 우리를 장기판에 졸 취급하고 있는데도 외통수에 몰린 우리 내부에 제논에 물대기 식으로 노론 소론, 동인 서인식의 정쟁으로 날밤을 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잘못된 역사의 질곡과 족쇄에서 벗어나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친일이니 친북이니 하며 과거사 문제로 각혈하는 대립이 몰고올 파장과 국론분열의 후유증을 어떻게 감당할지 깊이 성찰해야한다. 과거문제도 중요하지만 더욱 절실한 것은 우리 모두를 보듬고 미래를 개척하는 일이다. 우물안 개구리 식으로 내편, 네편으로 갈라 적과 동지 타령을 거듭하는 사이 자칫 게도 구덕도 다 놓칠 수밖에 없다.옛부터 좋은 것은 따라하기 힘들지만 나쁜 것은 배우기 쉽다고 했다. 정치권과 지도층이 눈만뜨면 개처럼 으르렁거리니 산업정책인들 제대로 될 리가 없다.섬유쿼터 폐지만 해도 그렇다. WTO에 의해 10여년전에 쿼터폐지가 결정됐고 이 사실은 정부나 업계나 귀가 따갑도록 들어왔다. 국제섬유신문도 11년전부터 세계 섬유교역의 대지진을 예고하는 교역자유화 문제를 지나칠 정도로 열심히 부각시켜왔다.그러나 우리 업계는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겠지'하며 안일하게 대응해 왔다. 정부도 무소신·무능력·무대책으로 일관해 작년까지 대책회의 한 번 제대로 갖지 않았다.발등에 불이 떨어지니까 금년들어 호떡집에 불난식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진행되고 말았다. 결국 가장 큰 섬유쿼터 수혜국으로 시장보호를 받던 우리가 어영부영 미적거리는 사이 중국과 인도가 아가리를 벌리고 세계시장을 독식하겠다고 나서고 있는 것이다.세계의 공장 중국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는 홍콩은 5~6년전부터 정부주도로 쿼터폐지를 대비한 다각적인 준비를 서둘러왔다. WTO 섬유담당 관계자는 물론 오더결정의 키를 쥐고있는 미국의 대형 또는 중견 체인스토아 전문가를 수시로 초청해 세미나를 열었다.쿼터폐지이후 섬유류 대형 수요처인 미국 백화점과 중·대형 체인스토아의 오더전략과 가장 유망한 공급자의 조건과 위치를 세밀히 연구하고 준비해왔다. 결국 내년에 당장 미국시장에서 현재 16%의 중국 비중이 50%로 확대되고, 4%인 인도산도 15%로 뛰어오를 것으로 전망하고 여기에 초점을 맞춰 섬유·의류 정책을 준비해온 것이다. 홍콩이 쿼터폐지가 초읽기에 들어간 이 시점까지 비교적 여유있게 대응하고 있는것도 수년전부터 이같은 상황을 예견하고 대응해왔기 때문이다.다른 국가들이 이렇게 준비하는 동안 우리 업계나 정부·단체는 낮잠자고 있었다. 개별업체가 대응책을 마련하기는 여러 가지 한계가 있었지만 많은 선각 기업인들이 해외 오프쇼어 공장이란 묘책을 마련하는 등 자구책을 강구한 것은 부인 못할 사실이다. 그러나 정부는 그야말로 무소신 무대책으로 강 건너 불구경했다.더욱 울화가 치민것은 업종별 섬유단체가 그토록 많지만 섬유수출의 생사여탈권이 걸려있는 쿼터문제에 거의 무관심했다는 점이다. 단체의 본연 임무인 기획조사를 통해 보다 적극적이고 다양한 교역 자유화전략을 마련하는 일은 뒷전이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기까지 속수무책으로 일관한 무능한 섬유단체들은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문제는 이 시점에서 정치권처럼 무능한 정부나 단체 업계의 과거사만 탓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늦었지만 최선이 아닌 차선의 대비책이 무엇인가를 찾아 총력 대응하는 것이 우리가 살길인 것이다.솔직히 스타일당 백만장을 상회하는 월마트의 대량오더는 주지도 않지만 받아도 한국에서 처리할 능력이 사라진지 오래다. 이런 대형오더는 현재 방식대로 앞으로도 느긋하게 딜리버리 5~6개월 조건으로 해외 오프쇼어 공장에서 처리할 수밖에 없다.그러나 한국에서 생산 수출하는 의류제품은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안된다. 극히 교과서적인 얘기이지만 소비자의 요구에 따라 디자인을 자주 업데이트해 리드타임을 더욱 줄여야 살아남을 수 있다. 그야말로 소량 다품종, 고급화, 조기생산, 조기출고를 원스톱체로 전환해야한다. 그것이 오히려 실속은 크다. 중국은 벌써 쿼터폐지에 대비해 소량오더를 기피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先출고가 살길이다WTO 연구보고서대로 이렇게 순발력을 발휘하면 거리가 가까운 카리브나 중남미에 국가들은 쿼터폐지로 인한 피해를 줄일 수 있다. 문제는 이것이 의류생산의 특성상 국내 생산에서는 수월치 않다는 점에 심각성을 안고 있다.그러나 이것이 결코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이미 이 방식을 채택해 성공한 기업들이 있다.우선 숏딜리버리 체제를 획기적으로 강화해 선적후 일주일이면 미국에 도착하는 카리브보다 3주가 더 걸리는 항해일수를 선생산·선출고로 카버해야 한다. 3주의 갭을 해소하기 위해 디자인 변화를 예측하고 원·부자재를 조기에 확보해야 한다. 부산에서 시애틀까지 12일에 가는 선박을 이용해 기간을 단축할 필요가 있다. 물론 원부자재를 무모하게 사전 확보하는 것은 조심스럽게 접근해야한다. 자칫 회사가 돌이킬 수 없는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의류수출업체들은 자체 디자이너를 확보하고 바이어측 디자이너와 수시로 긴밀히 혐의해야한다. 또 품목도 중국이나 인도, 베트남이 할 수 없는 까다로운 제품에 포커스를 맞춰야 한다. 같은 팀복이라도 단순한 야구복보다 악세서리나 염색, 날염이 까다로운 길거리 농구복에 치중해야 한다. 국동과 최신물산을 비롯한 상당수 업체가 이런 전략으로 성공하고 있다. 호랑이에 업혀가도 정신만 제대로 차리면 살수 있듯이 쿼터가 폐지돼도 이렇게 순발력을 동원하면 길은 열리기 마련이다. <本紙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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