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서(處暑)가 지나기 무섭게 삼라만상 산천초목이 가을을 알린다. 10년만의 찜통더위에 녹초가 된 일상도 서서히 생기가 돈다.그러나 대명절 추석을 앞둔 결실의 계절이 왠지 겁난다. 듣기만 해도 섬뜩한 '대란설'이 다시 고개를 들기 때문이다.봄부터 심심찮게 불거진 내수패션업계의 부도 대란설이 가을문턱에서 더욱 요란하다. 돈으로, 악으로 버틸 때까지 버티어온 일부 업체들이 이제 막다른 길목에 도달했다는 소문이다.해마다 추석을 전후해 단골 메뉴로 등장한 대구 직물산지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분위기가 흉흉하다. 이미 수많은 업체들이 떡쌀 담그고 야반도주했거나 스스로 문닫고 간판을 내렸으나 대란의 불씨는 남아있다. 장기 불황에 때아닌 원사파동까지 겹쳐 엎친데 덮친 격이다. 올 추석을 전후해 이판사판 야반도주 가능성이 누구인가를 놓고 원사 메이커들이 벌써부터 눈을 시뻘겋게 감시하고 있다.부도기업 전조등은 덤핑투매특기 할 것은 지난날의 궤적을 볼 때 부도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은 이미 식은 죽먹기 처럼 확연해졌다. 그것은 최근 수개월동안 어느 업체가 가장 가격덤핑을 심하게 했느냐와 맞물리기 때문이다. 대구직물 역사상 가격 덤핑업체는 필연적으로 부도를 냈다는 점에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바로 '덤핑은 부도'라는 공식이 성립되기 때문이다. 해외 시장에서 가격투매업체가 요즘따라 곤욕을 치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얘기는 다르지만 현재의 금융제도로는 섬유산업의 생존자체가 한계상황을 헤메일 수밖에 없다. 적어도 무차입기업을 제외하고 은행돈을 쓰는 기업은 생사여탈권을 은행이 쥐고 있고, 그 은행이 지금 목조르기에 들어간 것이다.사실 은행은 피도 눈물도 없는 돈장사 하는 곳이다. 중언부언하지만 햇볕 쨍쨍한 날 우산을 빌려주고 비가오면 인정 사정없이 회수하는 곳이다.현행 시스템은 섬유기업이 은행이란 고양이 앞에 쥐신세가 돼 옴짝달싹 못하게 돼있다. 우선 은행의 대출기준 8단계 신용등급 구분에서 섬유는 6등급이하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요즘 은행의 내규를 보면 대출기준의 우선순위에서 담보기준 못지 않게 미래 성장 가능성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 당연히 IT를 비롯한 첨단산업이 상위등급이 될 수밖에 없다.여기에 또하나 소중한 것은 매출 및 순익 증가율을 중시하고 있다. 과거처럼 실속 없이 외형에 치중할 수 없는 섬유기업들은 경기불황으로 당연히 매출도 순익도 감소할 수밖에 없다.'섬유는 사양'이라는 모진 풍토병이 은행에 가장 깊고 넓게 만연돼있어 섬유라면 담보 없이는 만져보고 준다고 해도 기피할 정도로 변묻은 새발 털듯 기피하고 있다. 일반대출은 말할 것도 없고 설비자금까지 하루빨리 갚으라고 성화다. 매년 한꺼번에 10~20%씩 갚지 않으면 6.1%금리가 어느날 갑자기 8.5%로 높아지고 수출대금 정상 네고도 훼방놓고 있다.무역금융도 외형이 줄면 정비례해서 한도가 줄어든다. 줄어든 만큼 기업은 상환해야 한다. 대환도 용납되지 않는다. 득달같이 불이익이 뒤따른다. 결국 은행의 목조르기에 스스로 떡쌀 담그는 섬유기업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문제는 그래도 섬유만큼 안정적이고 가득액 좋고 고용기여도가 큰 산업이 없는데도 이를 제대로 모르고 오도하는 금융정책을 어떻게 바꾸느냐 하는 점이다. 지금 남아있는 섬유·패션기업들은 그동안 산전수전 다 겪으며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나름대로 자생력을 갖추고 있다. 제조업체만 1만8000개에 달한 섬유업체들이 가지많은 나무 바람 잘날 없듯이 숫자가 많은 만큼 쓰러진 업체도 많을 수밖에 없다. 옥석을 구분 못하고 싸잡아 모든 섬유기업을 한통속에 몰아넣는 평가기준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여기서 중요한 것은 일선 은행지점장들의 힘으로는 아무리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더라도 다른 방도가 없다는 점이다. 본점에서 내려온 규정을 일선 지점장이 뒤엎을 힘도 재량도 없기 때문이다.또 솔직히 은행도 장사인데 그들보고 위험부담을 떠안으라고 강요할 수도 없다. 뻔히 손해볼 줄 알면서 은행에만 대출기준을 완화해달라고 떼를 쓸수는 없는 것이다. 은행을 향해 자선사업을 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그렇다면 기본적으로 은행의 손실부담을 줄여주는 방안이 적극 마련돼야한다. 신용보증한도를 대폭 늘리거나 다른 방법으로 은행의 손실을 줄일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선행돼야 된다.바로 이것은 개별기업이나 단체 힘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정부차원에서 정책적으로 조정돼야 할 사항이다.그래서 산업정책을 총괄하는 산업자원부가 전면에 나서 재정부와 금융감독원들과 적극 협력해 대안을 마련해줘야 하는 것이다. 은행도 손해 보지않고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해주지 않고는 섬유산업에 대한 대출 규정 완화는 씨도 먹힐 수 없다.과거처럼 관치 금융시대도 아니고, 대통령이 명령한다고 은행창구가 호락호락 들어줄 상황이 아니다. 통박을 제대로 짚고 전략을 마련해야한다.손실부담 대책은 정부몫문제는 업계 스스로 이런 은행의 손실부담축소 제도를 만들 수 없다면 정부를 채근하는 적극성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점이다. 업종별 섬유단체도 겉으로는 목소리가 크지만 악에 받친 고성으로 해결될 수는 없는 것이다.업계나 단체가 금융제도를 깊이 연구하고 파악해서 그 대안을 산자부에 제시하고 또 산자부가 정부부처끼리 협의해 성사될 수 있는 그런 전략이 필요하다. 산업정책을 총괄하는 산자부라해도 금융제도의 기술적인 분야까지 알기는 어려운 것이다.아무튼 이제라도 업계와 단체가 총력을 경주해 정부에 탄원하고 호소해야한다. 이대로 가면 경기불황보다 은행의 돈장사 근성에 기업이 다죽는다고 봉기하는 심정으로 적극 나서야 한다. 산자부도 은행의 목조르기로 죽어가는 업계를 더 이상 강 건너 불구경하지말고 부처간 협의를 강화해 대안을 마련해야한다. 업계가 다 죽는다고 아우성쳐도 너희가 저질렀으니 너희가 해결하라는 식의 태도는 정부가 취할 태도가 아니다. <本紙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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