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산업정책 우선순위는 업종별 산업의 흥망성쇠를 좌우한다. 정보통신이나 IT산업이 급성장 한것도 시대의 흐름 못지않게 정부의 우선순위 중흥정책과 맞물리고 있다.빈곤퇴치의 주역이자 무역수지 흑자 일등 공신인 섬유산업이 오늘이 있기까지는 과거 정부의 섬유·패션산업에 대한 집중적인 육성의지에서 비롯됐다. 주무부처인 상공부에 섬유원료과, 방적과, 제품과 등 3개과가 포진하면서 다양하고 적극적인 중흥정책을 폈기 때문이다. 섬유산업 정책을 담당하는 관료들 또한 섬유전문지식과 뜨거운 소명의식으로 무장해 밤을 새며 열정을 쏟았다.정부의 섬유산업정책과 공직자의 열정, 여기에 업계의 강한 신념이 톱니바퀴를 이뤄 맞물려 돌아가면서 세계 4위의 섬유대국이 됐다. 현대를 제외한 대다수재벌들이 섬유로 축성했고, 기계·전자·자동차·첨단산업의 생성자원도 섬유가 담당했다.섬유는 미운오리새끼시대가 바뀌면서 정부의 3개 섬유과가 하나로 축소돼 오늘의 섬유·패션산업과로 탈바꿈했다. 섬유산업 역시 급속히 쇠락해 너도나도 난파선에 쥐 빠져나가듯 해외로 탈출했다.글로벌 경영이야 필연적인 논리이자 현실적인 대안이지만 문제는 남아있는 국내 기업들이 날이 갈수록 헉헉거리며 간판 내리고 있다는 점이다. 임금은 치솟고, 사람은 귀하고, 경쟁력이 떨어지다 보니 축소지향은 불가피한 상황이다.설상가상으로 분·초를 다투는 국제환경은 쿼터폐지라는 대지진까지 몰고 왔다. 지난 반세기 우리 섬유수출의 시장보호막이 사라지면서 특단의 대책이 없는 한 중국과 인도의 시장 독식이 불을 보듯 뻔해지고 있다.이럴 때 요구되고 있는 것이 정부의 적극적이고 강한 섬유중흥정책이다. 산업이 대위국(大危局)에 처해있을 때 정부가 나서 보다 강력한 중흥정책을 통해 위기를 타개하고, 업계가 희망과 신념을 갖고 전력투구할 수 있도록 가이드 하는 것은 당연한 책무이다.그러나 돌아가는 통박은 이같은 업계의 염원과는 아주 다르게 가는 것이 현실이다. 말로는 섬유가 국가기간산업이라고 떠들면서 실제는 우선 순위 꼴찌를 맴돌고 있다.중언부언하지만 산자부의 17개 업종 중에서 지원 우선 순위 17번째라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정보통신이나 에너지 분야는 조(兆) 단위예산을 쏟아 붓고 있지만 섬유는 덩치 큰 대구 밀라노 프로젝트를 포함해 올 한해 500억이 채 안 된다.명색이 정책과인 섬유·패션산업과의 금년도 생활향상지원자금 규모가 섬산연과 의류산업협회·패션협회·패션소재협회·컬러센터 등 5개 단체를 합쳐 20억원에 불과하다. 아직도 1만8000개에 육박하는 제조업을 갖고있는 섬유산업에 이같이 미운오리새끼처럼 푸대접하고 있는 것이다.또하나 가당찮은 것은 지난 4월 중국 상하이에서 개최된 '프리뷰 인 상하이'에 참석한 전임 김칠두 차관이 현지에서 가진 섬산연 회장단과의 회의에서 섬유업계에 단기 실용화 기술개발자금 30억원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었다. 업계에서는 기술 개발촉진을 위해 더 많은 액수를 요청했지만 우선 30억원을 지원하고 소진되면 다시 재검토하겠다고 적극적인 의지를 표명해 섬유업계는 이 자금을 활용할 준비를 서둘러 왔다.그러나 최근 들리는 얘기로는 기술개발 자금을 심의하는 과학기술 심의자문회의에서 부결돼 한푼도 쓸 수 없게됐다는 것이다. 물론 이 자금의 주무과는 산자부 기술개발과 이지만 수요자인 섬유·패션산업과가 이 예산을 따기 위해 어느정도 최선을 다했는가에 대한 여론은 별로 긍정적이지 못하다는 전언이다.또 지난 얘기이지만 2기 밀라노프로젝트와 관련해 섬유산지인 경북도 당국이 R&D자금 등으로 활용할 진흥예산을 올해 한푼도 계상하지 않아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대구시는 올해부터 5년간 섬유진흥자금으로 205억원을 계상하고 집행하고 있는데 제직설비가 대구보다 많은 경북도는 이를 배제했다는 것은 어불성설 이었다.결국 같은 섬유업체라도 대구시 행정구역에 소재한 업체는 이 자금을 지원 받고 경북도 소재업체는 못 받는 어처구니없는 현상이 벌어졌다. 급기야 국제섬유신문을 비롯한 언론이 이를 신랄히 비판하고 경북도도 대구 중진들과의 회동에서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점을 시인하면서 내년부터 예산에 반영할 것을 약속했다.이같은 혼란도 근본적으로는 경북도의 잘못이지만, 산자부가 당초 이 문제를 지적하고 예산반영을 적극적으로 종용했으면 이같은 우를 범하지 않았으리라는 것이 일반적인 여론이다. 아쉽고 안타까운 것은 이것뿐이 아니다.국내 봉제산업 활성화를 통한 직물, 면방, 염색 산업의 연쇄파급이 기대되는 개성공단 문제만 해도 업계는 뒤늦게 정부를 원망하고 있다. 남북관계란 특수한 사정을 감안할 때 언제 완공될지 확실히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건축비는 어느정도 합리적인 수준에서 이루어질 것으로 알았다.제 역할 못하는 섬유패션과그러나 시범단지 입주 업체들을 기준으로 할 때 평당 건축비가 중국보다 6배나 비싼 150~200만원이라는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알려지자 개성 섬유공단 입주를 희망한 신청업체들이 소스라치게 놀라고 있다. "현대 아산이 그동안 쏟아 부은 대북 비용을 한꺼번에 벌충하려는 것이 아니냐"며 "정부는 가격산정때 무엇했느냐"는 원성이 쏟아지고 있다. 결국 우수수 포기의사를 밝히기에 이르렀다. 물론 산자부 입장에서는 할말이 많겠지만 지방 아파트 건축비와 맞먹는 봉제공장 건축비를 대폭 인하하기 위해 산자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또 최근에 더욱 심하게 불거진 유화업계의 폭리로 인한 화섬·직물업계의 반발과 행정지도 요구도 손을 못쓰고 눈치만 살피는 듯한 산자부의 소극적인 태도 또한 지탄을 면할 수 없다. 섬유기업에대한 은행의 목졸림에 대한 정부차원의 개선책은 속수무책인 상태에서 업계와 언론의 지나친 엄살이 몰고온 부작용이라고 오도한 고위공직자의 사고도 깊이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당면한 섬유쿼터 폐지에 대한 대응책도 확실히 마련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모습이다.물론 기업의 운명은 기업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그렇다고 죽건말건 알아서 하라고 방치하는 것은 정부가 취할 태도가 아니다. 무엇보다 공직자의 소명의식과 열정이 필요하다. 생활산업국장을 6개월·8개월만에 갈아치우는 인사정책으로는 섬유·패션산업의 제대로된 중흥정책이 나올 수 없다. 섬유·패션을 담당하는 공직자의 전문성과 열정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요구된다.이대로 가면 게도 구덕도 다 놓친다. <本紙 발행인>
저작권자 © 국제섬유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