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옥황상제가 따로 없다. 헌법재판소가 국가 최고 통치자인 대통령의 목을 붙였다, 떼었다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불과 6개월전 탄핵소추로 실각위기에 빠진 노대통령을 구출한 헌재가 이번에는 그를 불신임했다. 정권의 명운을 걸고 추진하던 천도(遷都)가 국태를 흔들고 민안을 그르치는 일이라고 추상같이 판결한 것이다.세상만사 조급하게 무리하면 병통이 생기기 마련이다. 아무리 여·야 정략적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600년 도읍지를 5년 임기 대통령이 특정지역으로 밀어붙이려는 발상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그동안 수도 이전을 둘러싸고 끝없이 불거진 우리사회의 이념적·지역적 대결이 이쯤해서 종지부를 찍게돼 그나마 다행이다. '저주의 굿판을 걷어치우라'며 강공으로 치달은 청와대나 원내1당 당시 수도이전 특별법을 통과시켜 혼란을 자초한 한나라당의 원죄가 가볍지 않음을 반성해야 한다.직기 1200대 공장 한대도 안돈다한가지 특기할 것은 일반 국민은 물론 법률가도 생소한 수도 서울의 관습헌법 논리이다. 헌법에 구체적인 명문 조항은 없지만 서울이 수도라는 것은 오랜 전통과 관습에 의해 자명하고 전제된 사실이란 점에 백번 동의한다.이같은 대전제에서 대구 역시 명문 규정은 없지만 전통과 관습은 물론 현실적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산지이자 사실상 섬유수도임을 부인할 수 없다. 바로 그같은 섬유수도 대구산지에 지금 대공황이 불어닥쳐 아비규환이다.한때 세계 최대규모를 자랑하던 5만대의 혁신직기가 겨우 1만대 내외만 가동하고 있을 정도로 죽음의 도시로 변하고 있다. 공장마다 세워둔 직기가 부지기수이고 국내외로 헐값에 매각되는 직기가 산더미처럼 늘어나고 있다.공장마다 남아있는 직기도 절반 가량은 세워둔 상태이다. 심지어 1200대 규모의 혁신직기를 보유하고 있는 어느 업체는 아예 한대도 못 돌리고 고스란히 세워놓고 있다는 소문이다. 직물업계가 이모양 이꼴이니 바늘과 실 관계인 염색가공업계도 연쇄반응을 일으켜 줄초상을 맞고 있다. 원인은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합섬직물 구조상 해외경기가 내리 3년 이상 냉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시장의 수요감소는 물론 중동시장까지 이라크 사태로 바닥밑 지하실 경기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가뜩이나 중국산에 가격 경쟁력을 잃어 설 땅이 좁아지는 판에 우리 내부적으로 안고 있는 불합리와 모순이 기업활동을 더욱 위축시키고 있다. 기업이 어려울 때 기대는 곳이 은행인데 섬유라면 '변묻은 새발 털듯' 아예 상대조차 기피한다. 신규대출은 말할 것도 없고 마른나무 기름짜듯 대출금 회수에 혈안이 돼있다. 정부가 마지못해 은행측에 대출회수 완화를 요청하지만 이미 외국인 임원이 포진하고 있는 금융기관의 반응은 '웃기지마라'는 식이다.이같은 고통속에 더욱 절망과 열패감을 안겨준 것은 원사값 폭등이다. 올 들어서만 화섬원사 가격이 60% 이상 뛰었다.해외 수출시황은 거꾸로 추락하는데 200g 기준 야드당 20센트 이상 원가부담요인이 생겼으니 시장에서 외면당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바로 원사값 폭등의 주범은 유화업계의 폭리 때문이다. 근로자 1인당 연봉 6000~7000만원씩 주고도 연간 수천억원씩 이익을 내는 유화업계의 일방통행에 화섬업계와 최종수요자인 합섬직물업계가 누렇게 부황든 것이다.최악의 경기불황이 3년 이상 지속되는 해외시장 여건에서 대구직물업계가 최소 가동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원사값이 어느정도 안정돼야 한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대구직물업계의 표류와 방황은 해소될 수 없는 것이다.그러나 공룡 유화업계에 대항해 화섬업계와 직물업계가 맞서 싸우기에는 계란으로 바위치기 격이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을 안고 있다. 마치 공룡 백화점 앞에 입점협력업체들이 당하듯 유화업계가 눈 한번 흘기면 화섬, 직물업계는 오금을 못피고 바짝 엎드린 구조이기 때문이다.하는수 없이 산자부를 상대로 구원을 요청하지만 거대기업 석유화학업계에겐 종이 호랑이에 불과하다. 모든 거래는 시장기능에 맡겨야지 왜 정부가 개입하느냐고 대들면 할말이 없다는 것이다.이런 무기력한 정부의 태도에 화섬업계와 대구 직물업계가 비분강개하고 있다. 수급에 문제가 있고 어느 일방의 독주나 횡포가 있다면 이를 바로잡고 조정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인데도 꽁무니를 빼고 있는 것이다.결국 악에 받친 대구산지가 집단봉기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구 또는 서울에서 '이대론 다 죽는다'는 절규를 통해 대규모 군중집회도 불사한다는 것이 현재 대구의 분위기이다.그런 극한 상황까지야 가지 않겠지만 심지어 고속도로를 점유하거나 군중집회를 통해 유화업계의 폭리를 규탄하자는 얘기가 서슴없이 나오고 있다. 대구·경북지역 관련 섬유업체들이 동시에 공장가동을 중단하고 집단봉기 하자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섬유업체가 갖고있는 원단재고를 들고 나와 정부와 국민이 보는 앞에서 불태우는 장외농성도 거론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대구견조가 오는 11월2일 이사회를 열어 정부의 무성의에 합의해 조합원 공장 1일 전면 휴업과 사업자등록 반환결의를 계획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앉아서 죽으나 서서 죽으나 죽기는 마찬가지 아니냐는 대구 특유의 '욱'하는 감정이 솟구치고 있다. 유화업계의 폭리뿐 아니라 이를 방치하고 조정능력을 포기한 굼뜬 정부에 대한 강한 반발인 것이다.장관이 직접 나서라그러나 이같은 격한 발언은 대구산지가 겪고 있는 극한상황에서 표출된 발언일뿐 어느 정도 실현 가능성이 있을지는 미지수다. 다만 정부가 사태를 너무 난이하게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유화업계의 폭리는 수요업계와의 상생을 위해 정부가 주저없이 개입해야 한다. 공정거래법을 지나치게 내세우는 소극적인 태도는 안된다.과거 철강파동때 정부가 포스코에 수출과 내수물량을 강제로 조정한 전례도 있다. 아무리 경쟁력을 잃고 있다고 하지만 이땅에 섬유산업이 무너지면 고용과 무역수지 등에서 국가 경제에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 없다. 정부가 우리 농업이 경쟁력이 있어서 연간 수십조를 지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수치만 생각하면 농촌을 지원할 이유가 없다. 섬유산업도 사양논리로만 일관할 수 없는 국가 경제의 핵심역량임을 잠시도 망각해서는 안된다.이번에야말로 산자부 장관이 전면에 나서 문제를 해결하는 성의를 보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겉잡을 수 없는 사태가 닥칠지도 모른다. <本紙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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