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과 화사함은 봄만 못해도 풍요로움과 낭만이 넘실대는 만추(晩秋)의 계절이다. 산하는 울긋불긋 가을이 불타지만 섬유인의 마음은 엄동설한이다.설마하던 섬유쿼터 폐지가 변곡점의 꼭대기에 도달했고, 국내적으로는 경기 불황속에 스트림간 갈등이 날카롭게 대치하고 있다.내년부터 시행될 섬유쿼터 폐지는 이미 받아놓은 밥상인 가운데 국가별 손익을 분석해보면 한숨이 절로 난다. 최근 미국의 섬유전문 일간지 WWD가 보도한 섬유쿼터 폐지에 따른 '2005 승자와 패자'는 중국과 인도가 최고 승리자임을 재확인해 주고 있다.세계 섬유교역의 대지진을 예고한 섬유쿼터 폐지를 목전에 두고 상황이 바뀐 28개 섬유 및 의류생산국을 A·B·C·D 4개 그룹으로 분석한 이 자료는 향후 세계 생산주도권이 어디로 갈 것인가를 확실히 예고해 주고 있는 것이다.中·印 쿼터폐지 확실한 승리자이에 따르면 보증된 승리자로 생산코스트, 로지스틱스, 비즈니스 경험 등으로 수입업자들에게 가장 확실히 선호될 나라는 재론할 여지도 없이 AAA를 받은 중국으로 지목됐다. 그 뒤를 이어 AA를 받은 국가는 인도, 인도네시아, 터키 순이며 A는 캐나다, 베트남, 루마니아, 모로코, 튀니지가 지목됐다.중국과 인도, 인도네시아, 터키가 쿼터폐지후 가장 확실한 섬유수출대국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다음 B그룹에는 경쟁력 있는 의류생산 능력을 바탕으로 간접비용을 절감하고 더 많은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성공 할 수 있는 국가로 가까스로 한국이 포함됐다.그러나 B그룹에서도 1위는 BBB를 받은 캄보디아가 가장 가능성이 크고, 태국과 방글라데시가 BB를 받았으며, 한국은 필리핀, 스리랑카, 남아프리카 그리고 미국내 생산과 같은 꼴지 B에 속했다.물론 B그룹보다 못한 C그룹에는 과테말라, 엘살바르도, 멕시코, 온두라스, 도미니카 공화국 등 카리브 국가들이 포진돼 있어 그동안 전성기를 구가하던 카리브국가에 해가 지고 있음을 확인했다. 또 이보다 못한 D그룹에는 쿼터 폐지후 경쟁력을 상실할 것으로 보이는 패자국가로 니카라과, 폴란드, 말레이시아, 레소토, 코스타리카, 모리셔스 등이 지목됐다.결국 세계의 공장 중국과 풍부한 노동력, 수준 높은 교육에 하이테크 직업 포진, 거대한 면방산업 등의 이점을 안고있는 인도가 세계섬유생산의 주도권을 잡게될 것은 기정사실로 밝혀졌다. 쿼터폐지를 불과 2개월 남겨놓고 있는 이 시점에서 중국은 벌써 샴페인을 터뜨리기 위해 표정관리에 들어갔다.실제 지난달 22일 동경에서 열린 한·중·일 3국 비즈니스 포럼에 참석한 중국 대표단의 태도에서도 이같은 자신감이 넘쳐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 섬유 분과위에 참석한 중국 대표단은 "중국이야말로 실크를 중심으로 2000년 역사의 섬유 종주국이다. 그런데 선진국들이 의도적으로 만든 섬유 쿼터규제로 고통을 겪어 왔다. 이제 쿼터가 없어지면 세계섬유생산 1위국으로서 당연한 권리를 행사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는 것이다.문제는 불과 2개월후 쿼터가 폐지되면 한국의 경쟁력은 겨우 B그룹의 꼴찌에 머물게 됐는데도 백가쟁명식 혼란만 난무할 뿐 아직까지 우리가 어디로 가야한다는 대전제가 없다는 점이다. 10년전부터 쿼터폐지는 발등의 불로 대두돼왔지만 정부의 섬유정책은 실종된 채 아직까지 우왕좌왕 딱 부러진 중장기 정책이 없다.그많은 섬유단체 중 상당수는 정부의 눈치나 보고 안주했을 뿐 업계를 가이드 할 책무를 포기했다.당사자인 업계 역시 쿼터폐지가 몰고 올 섬유교역의 천지개벽을 의식하지 않고 그저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겠지 하며 허송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의류봉제 수출업체들만이 발빠르게 글로벌소싱을 확대해 세계적인 공급업체로 자리매김 했다.해외공장 종업원 3만5000명에서 7만명 규모로 확대하고 있는 영원무역을 필두로 니트봉제 3인방 세아교역, 한솔, 한세를 포함해 글로벌경영에 성공한 많은 의류업체들이 수천만 달러씩 통크게 투자해 당당히 경쟁하고 있는 것이다.그러나 과거에는 해외봉제공장에 100만~200만달러 규모를 투자하면 20~30개 라인을 가동할 수 있었으나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쿼터폐지에 대비해 전세계적으로 누가 더 크고 싸고 빠르냐의 경쟁이 가열되면서 어느덧 100~200개 라인의 초대형 공장이 아니면 경쟁할 수 없는 상황이 도래했다.그래서 국내에 있는 연간 2000~3000만달러 규모의 의류수출업체들은 갈수록 설 땅이 좁아지고 있다. 미국의 대형 백화점과 스토어 바이어들도 기왕이면 규모가 큰 업체에 오더를 몰아주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는 것이다.더욱 걱정인 것은 대구합섬직물 산업이다. 공황에 가까운 장기불황이 3년이상 지속되다보니 지난 5년간 신규 설비투자가 사실상 중단됐다. 세계최대 합섬직물산지가 속절없이 붕괴되면서 잿빛 도시로 변하다보니 신규투자는커녕 있는 설비도 매각하기에 여념이 없는 상황이다.설상가상으로 우리 내부의 고질적인 병폐인 스트림간의 갈등이 확산되고 있다.청와대와 국회로 가자바로 대구에서 민란(民亂)까지 거론되고 있는 원사가격 폭등의 주범인 유화업계의 폭리문제다. 유화업계는 국제유가 인상으로 불가피한 국제시장가격이라고 우기지만 연간 수천억원씩 이익을 내면서 하부 스트림을 부황들게 하는 것은 정상적인 시장 경제하에서는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실제 작년말대비 현재 PTA가격은 46%, MEG가격은 66%, 카프로락탐은 78%나 폭등했다. 같은 비율로 원사값도 인상을 시도했지만 직물경기가 워낙 나빠 실질 인상은 겨우 30% 반영에 그쳤다는 것이다.솔직히 국제유가 인상을 핑계삼은 유화업계의 주장은 너무 억지논리이다. 석유수입 부담금이 배럴당 13원에서 8원으로 내렸고, 수입관세도 3%에서 1%로 내렸다. 환율 또한 작년말대비 7%나 내렸다.이미 석유가 인상분을 반영하지 않아도 원가 인상요인을 거의 흡수했다. 그런데도 화섬기초원료가격을 폭등시킨 것은 폭리를 위한 횡포라고 볼 수밖에 없다.우여곡절 끝에 꽁무니를 빼던 산자부가 이를 조정하기 위해 2일 유화·화섬·직물업계 연석회의를 갖기로 했다. 이번에야말로 만나서 악수하고 레코드판 틀고 헤어져서는 안된다. 수요업계는 사생결단 각오로 담판을 내야하고 유화업계도 성의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산자부의 역할이 어느 정도 먹혀 들어갈지 지켜볼 일이다. 이번에도 신통한 대답이 없으면 청와대와 국회를 상대로 일을 벌일 수밖에 없다. 화섬업계와 대구직물업계가 악에 받친 마지막 상황임을 알아야 한다. <本紙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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