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유ㆍ패션巨人 박성철 신원 회장 - 대담 조영일 발행인

名品 창출 영예의 대통령상 ‘반하트’ 세계 최고급 ‘브리오니’와 동일
신원 창업 41년. 패션 최강자 대형 의류수출 명성 올 매출 7000억
한국산 스웨터 덤핑제소 무혐의 판정주도. 니트수출 대국 초석 다져
섬산련 회장 재임 IMF때 섬유센터 4개층 매각위기 잠재운 일등공신
개성공단 미래낙관, 기독교계 거물 개성교회 천지개벽 실감
올해부터 성장동력 가속페달 글로벌 섬유ㆍ패션기업 우뚝


한 국가의 흥망성쇠가 통치자의 철학에 따라 좌우되듯 산업의 부침도 이끄는 지도자에 따라 명운이 바뀐다. 이 땅의 빈곤퇴치 주역이자 고부가가치 지식 문화산업인 섬유패션산업 발전사에도 이 같은 지도자의 역할이 컸다.

이 같은 대전제에서 박성철 (주)신원 회장(74)의 공로를 빼놓을 수 없다. 그가 한국의 섬유ㆍ패션산업 중흥을 일으킨 한 시대의 주인공으로써 아직도 현역에서 맹활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80년대 우리나라 섬유제품 수출의 대명사는 스웨터였다. 섬유쿼터를 적용받던 그 시절 아크릴 스웨터를 중심으로 우리나라 스웨터 수출이 한 때 연간 50억달러에 육박했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미국의 보호무역이 본격화되면서 미국 업계가 한국산 스웨터를 중심으로 홍콩과 대만 등 주요 3국의 스웨터에 대해 반덤핑 제소를 단행했다.
극동 3국의 스웨터가 봇물처럼 들어와 미국 산업에 피해를 안기고 있다는 주장이다. 잘나가던 한국 스웨터 수출이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당시 스웨터 수출조합 이사장인 박성철 회장은 이대로 당하면 국내 스웨터 수출은 조종을 울리는 것은 물론 관련 연관 산업까지 떡쌀 담그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판단했다.
박성철 이사장은 수출업계 대표자 회의를 긴급 소집해 정면 승부하자고 채근했다.
박 이사장의 강력한 주장을 받아들여 업계가 변호사 비용을 마련키로 했다. 전년도 수출실적을 기준으로 안분 배정해 변호사 비용을 걷었다.

한일합섬, 태광산업, 신원, 유림, 영우통상 등을 비롯한 회원사들은 박 이사장의 진두지휘에 따라 무려 52억원을 갹출했다. 이 돈으로 워싱턴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3개 로펌에 의뢰해 2년을 싸웠다.
그 결과 한국산 스웨터는 미국정부로부터 최초의 무혐의 판정을 받았다. 반면 대만과 홍콩은 덤핑혐의가 인정돼 고율의 덤핑관세로 풍비박산 나고 말았다.

한국의 스웨터 산업은 수출이 지속되었고, 이것이 큰 동인이 돼 니트의류로 확대되면서 오늘날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니트의류 강국이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박성철 회장이 98년 한국섬유산업연합회 회장으로 취임하던 시절 국가적으로 전대미문의 IMF 환란을 맞았다. 정부의 기금지원과 업계의 일부 출연으로 강남 삼성역 인근 섬유센터는 금융기관으로부터 과다한 건축비 차입부담으로 빚더미에서 헤매고 있었다.

섬산련 이사회에서는 눈덩이 빚더미를 해소하기 위해 섬유센터 17층중 4개 층을 매각하기로 하고 이를 전담할 추진위원으로 당시 공석붕 패션협회장과 곽태환 염색연합회장이 원매자를 찾아보기로 했다. 그러나 박 회장은 어렵게 건립한 섬유센터를 일부 매각한다는 것은 훗날 두고두고 전임 회장을 원망하는 것은 물론 매각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에서 정부 고위관리를 찾아가 설득했다.
정부나 정치권에 마당발인 그는 정부의 협조를 받아 은행과 공공기관을 유치해 매각 위기를 넘겼다. 그 당시 박 회장이 나서서 해결하지 않았다면 금싸라기 섬유센터 4~5개 층이 남의 소유로 바뀌고 말았을 것이다.

그는 당시 개인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다. IMF사태로 피땀 흘려 축성한 신원그룹이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가 카드사용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러나 섬산련 이사회 골프나 잦은 회의에 들어가는 목돈을 사재를 털어 현금으로 결제했다. 섬산련 상근 부회장인 당시 장석환씨가 민망해 “연합회가 처리하겠다”고 말해도 막무가내로 본인이 부담했다.
그가 고집스럽게 정부 고위층을 설득해 섬유센터 몇 개 층을 매각하지 않고 지켜냈기에 지금 섬산련이 임대료 수입으로 업계를 위한 많은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의 폭 넓은 대인관계와 영향력은 당시 정부로부터 많은 신뢰와 지원이 가능했고 ‘프리뷰 인 상하이’를 그가 창설해 한국의 섬유패션이 중국 시장을 개척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워크아웃의 혹독한 시련 속에 정도경영, 투명경영을 발판으로 모기업인 신원 하나만을 남기고 금싸라기 같은 15개 계열사를 과감하게 매각해 금융권 부채를 모조리 갚았다. 수많은 워크아웃기업 중 가장 빠른 2년 만에 워크아웃을 졸업하고 신원의 무차입 경영을 실현시킨 신화를 일구어냈다.
그에 대한 에피소드 하나만 더 소개하면 신원그룹이 워크아웃기간 중 건설, 전자, 유흥, 골프장 등 계열사를 모조리 매각할 때 있었던 일화다. 자식처럼 아끼던 명문 신원골프장을 마지막 매각과정에서 모그룹 회장으로부터 제안이 들어왔다. 명문 골프장으로 명성이 자자한 신원골프장을 탐낸 재벌급 또는 준재벌급에서 극비리의 프러포즈가 온 것이다.

이 과정에서 신원 골프장을 자기에게 넘겨주면 뒷돈으로 500억원을 주겠다고 제시하는 기업인이 있었다. 기왕 매각할 바에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그 기업인에게 매각하면 500억원을 챙길 수 있는데도 그는 “내가 그 돈 받아 잘 먹고 잘살면 하나님을 배신하는 것이고, 회사 임직원과 사회에 고개를 들고 살 수 있느냐”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리고 회원들에게 지주회사로 운영토록 돌려줬다. 그 일이 있고난 뒤, 원매를 자청했던 그 기업인과 지금까지 소원한 관계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그의 이 같은 결백성은 독실한 기독교 신앙에서 비롯된 것으로 주변에서는 평가하고 있다. 신길교회 장로이자, 국가조찬기도회장을 역임할 정도로 기독교계의 거물 인사다.
1년 내내 새벽 4시에 새벽기도를 나가고 회사에 아침 6시 출근한다. 신앙으로 살고 신앙으로 죽겠다는 일념아래 기업경영보다 더 우선하는 것이 교회 나가는 일이고 복음전파다.

협박과 퇴출압력을 수 없이 받으면서도 개성공단 신원공장에는 대형교회가 축성돼 운영되고 있다. 동토의 나라 죽의 장막 북한 땅에서 교회를 짓고 십자가를 세운, 천지개벽 같은 기적을 박 회장은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같은 엄청난 복음 전파의 기적은 자신의 역량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총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강조한다.

새해 경영지침을 ‘혁신과 성장’, ‘신뢰와 존중’, ‘미래와 도전’으로 정하고 25시를 뛰고 있는 박 회장을 마포 신원 본사 집무실에서 만났다.

-여전히 건강이 좋으시네요. 새벽부터 시작된 하루 일과가 쉴 틈 없는 격무인데, 건강유지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하고 은총을 받으면 육체도 정신도 건강해집니다. 매일 오후 시간에 짬을 내 간단히 운동을 합니다. 걷는 운동, 기구운동 빠지지 않고 하는데 동연배에 비해 10년 정도 젊은 기분이에요…”(웃음)

-글로벌 경기 침체에 극심한 내수 불황이 겹쳐 패션기업의 내용이 좋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신원은 지난해 내용이 우등생이었다면서요.
“작년에 수출과 내수를 합쳐 매출 6000억을 상회했어요. 수출 경기와 내수 경기가 모두 어려운 상황에서 선전한 것이죠. 올해는 내수 패션경기도 회복국면이고 오더 상황으로 봐, 수출경기도 회복되고 있어 수출 내수 합쳐 7000억 규모는 무난할 것으로 봅니다.”

-결산서 상으로는 작년 하반기 후반부터 영업이익이 호전된 것으로 나타났던데요.
“우선 재작년까지 해외공장 투자를 5000만달러 이상 과감하게 했어요. 베트남 하노이의 1법인에 이은 2법인은 대형 80개 라인인데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봉제공장으로 평가받고 있지요. 인도네시아에도 대규모 투자를 했고요. 해외 바이어들이 하노이 2법인 공장을 보고 탄성을 질러요. 덕분에 오더가 대거 쇄도하고 있습니다.”

-패션사업도 과감한 공격경영이던데요.
“아시다시피 신원은 변화무쌍한 패션시장에서 ‘베스띠벨리’, ‘씨’, ‘비키’, ‘이사베이’, ‘지이크’, ‘반하트 디 알바자’등을 포함한 7개 브랜드가 모두 정상급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디자인력과 품질, 브랜드 인지도 등에서 확실한 차별화 전략을 구사하고 있지요. 이것을 소비자들이 신뢰하고 있는 것이죠.”

-신원 남성복 ‘반하트 디 알바자’가 2013 국가품질경영대회 명품 창출부문에서 패션업계 최초로 대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했지요.
“저희가 반하트 남성복은 2011년 론칭 당시부터 세계적인 명품을 표방하고 전개해 왔어요. 저희가 독점판매권을 갖고 있는 ‘브리오니’와 동일한 품격과 명성을 갖춰 한국에서 세계 최고 VIP상표인 ‘브리오니’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있어요. 브리오니 한 벌 가격이 2000만원을 홋가할 정도니까요. 정부 주무부처와 관련 품질관리 공인기관에서 몇 번씩 검증을 거쳐 국가품질경연대회의 대상을 받게 된 겁니다. 이태리의 자랑인 ‘브리오니’와 동일한 품질을 인정받고 있어 수요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내년부터는 반하트의 흑자규모가 본격 확대될 겁니다.”

-지난해부터 바짝 중국 진출에 전력투구하고 계시던데요.
“중국은 누가 뭐래도 광활한 제2의 내수시장입니다. 사실은 십수년 전에 저희가 중국 진출에 나섰다가 여러 사정으로 축소했는데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싶어 작년에 4개 브랜드를 진출시켰고, 올해 3개 브랜드를 추가 진출할 겁니다. 패션감각과 디자인 모든 면에서 저희 브랜드 인지도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어 돌풍을 예고하고 있지요.”

-지난해 정부 주도로 발족한 명품포럼 회장을 맡고 계신데요.
“패션뿐 아니라 여러 분야의 대기업, 중견기업이 모두 참여하고 있어요. 한국이 패션 선진국 뿐 아니라 세계 10대 경제 강국으로 도약한 시점에서 명품창출은 만시지탄의 감이 있어요. 각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품 창출에 대한 관심과 의욕이 넘치고 있지요. 저희 ‘반하트’가 벌당 2000만원이 넘는 이태리 최고급 브랜드 ‘브리오니’와 자웅을 겨루게 된 것도 이 같은 저희 명품에 대한 집념의 소산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명품창출은 이제 필연적인 논리이고 현실적인 대안입니다. 패션 명품창출에 신원이 선도적인 역할을 할 겁니다.”

-화제를 바꿔 개성공단 얘기 좀 듣겠습니다. 2004년 동토의 땅 개성공단 시범공단에 가장 먼저 진출해 개성공단 붐을 조성했습니다. 정말 안심할 수 있습니까.
“나는 누가 뭐래도 개성공단은 앞으로 안심해도 된다고 확신합니다. 평소 내 철학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 개성공단이라고 주장해왔어요. 지난해에는 예기치 않은 폐쇄조치로 저희 회사부터 큰 피해를 입었지만 한 번은 겪어야할 과정이었어요, 개성공단이 5개월에 닫혔을 때, 남북 양측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남북 모두 특히 북측은 더욱 큰 고통을 겪었지요. 다시는 폐쇄하면 안 되겠다는 공감대를 남북이 공유했다는 점에서 전화위복이라고 봅니다.”

-개성공단의 당위성은 경제적 측면뿐 아니라 정치, 군사적으로도 필연적이지 않습니까.
“당연한 얘기죠. 개성공단이야 말로 과거 중국 심천과 같은 자본주의 경제 실험장이지요. 남북 긴장완화의 완충역할은 말할 것도 없고요. 개성공단이 완전 중단되면 바로 그것은 전쟁을 의미합니다. 남북 모두 자칫 수십만, 수백만 사상자와 경제 손실을 감수하고 전쟁할 리는 없지 않습니까. 양질의 노동력과 저임금, 물류비가 없고 관세가 없는 세계 최고의 투자적지입니다. 안심하고 투자하고 거래해도 됩니다.”

-개성공장에 건립한 매머드 개성교회는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데요.
“북한에 버젓이 십자가를 세우고 예배를 볼 수 있는 신앙의 성전을 설립하는 게 쉬운 일이겠습니까. 시련과 고충이 많았지요. 아직은 개성공단에 상주하는 남측 관계자들이 정기적으로 예배를 보고 신앙을 공유하는 성전입니다만… 개성공단을 방문한 내국인뿐 아니라 해외 인사들은 경천동지할 중대 사건이라고 칭송이 자자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총으로 이루어진 것이죠. (※이 대목에서 행여 북측을 자극할까봐 조심스럽게 말을 아낀다.)

-글로벌 섬유ㆍ패션기업인 신원이 신규 사업으로 식품분야에 진출한다면서요.
“식품산업은 전 세계가 공유할 수 있는 유망산업입니다. 구체적인 얘기는 아직 공개하기 어렵지만 내부적으로 본격 준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신원의 일취월장 재도약을 지켜봐 주십시오.”

-끝으로 2세 경영인체제가 정착된 것으로 압니다. 경영일선에서 언제쯤 물러나실 생각이신지요…(웃음)
“장남은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어 회사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있지요. 차남이 부회장으로 내수와 중국 사업을 관장하고, 3남 박정수 부사장이 수출영업을 맡고 있어요. 각기 밤낮 가리지 않고 전력투구하고 있어 안심이 됩니다. 앞으로 5년 내에 경영권을 넘기고 하나님을 잘 모르는 오지국가에서 선교활동에 전념할 생각입니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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