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두절미하고 지금은 옹기짐을 지고 가다 자갈밭에서 넘어진 꼴이다. 대구 섬유업계가 처해있는 현주소가 바로 그렇다.사실상 공황에 가까운 장기불황에 유화폭등으로 인한 원사값 연쇄 인상으로 대구 합섬직물산지가 재기불능 상태로 붕괴되고 있다.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사양이란 모진 풍토병에 은행들이 갈수록 섬유를 미운 오리새끼 취급하고있는 것도 줄초상의 원인이다.설상가상으로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는 원화 절상으로 수출 의존도가 90%에 달한 합섬직물업계의 숨통을 끊어 놓은 격이다. 나라를 거덜낸 YS정권초기 외환보유고가 늘어나자 경제 관료사이에 "수출하면 역적"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할 때와 다름이 없다.속도조절도 정도 문제이지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외환관리를 이토록 엉터리로 하고있으니 도대체 정부 경제정책이 어디로 가는지 종잡을 수가 없다. 섬유뿐 아니라 모든 수출기업이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달러당 1200원 선은 고수해야 된다는 것은 경제계의 한결같은 지적이다.환율정책 '수출하면 역적'국회에서 경제를 모르는 국외자의 환율개입 시비가 있고부터 정부가 외환관리를 사실상 포기해버렸다. 결국 달러당 1,065원선 마저 무너지도록 방치한 것은 과거 정부의 '수출하면 역적'이라는 논리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달러가 넘쳐 주체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항변할지 모르지만 우리보다 보유고가 훨씬 많은 다른 나라들은 환율을 날개 없이 추락시키지 않고 있다. 11월15일 현재 한국의 외환보유고는 1860억8000만 달러로 집계되고 있다. 이웃 일본은 외환 보유액이 10월말 기준 무려 8379억 달러에 달하고 있다. 중국도 9월말 기준 5145억 달러에 달하고, 대만은 2350억 달러에 달한다. 이들 국가들은 환율 폭락 없이 잘만가고 있는데 왜 우리만 이 모양 이 꼴로 추락하는지 분통이 터진다.이런 판국에 가뜩이나 시난고난 사경을 헤매는 대구 섬유업계에 더욱 불을 지르는 것은 유화업계의 강자적 논리가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는 가운데 정부의 애매한 태도 때문이다. 지난 2일 우여곡절 끝에 열린 오영호 산자부 차관보주재 유화 화섬, 직물업계 간담회에서 유화업계 인사가 내뱉은 한계산업 정리론이 대구에 전달되면서 휘발유에 불을 붙인 꼴이 되고 말았다.당시 유화업계 참석자가 "안되는 대구직물산업을 정부가 왜 보호하려고 하느냐"는 식으로 쏘아붙인 것이 일파만파의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뒤늦게 이같은 발언을 전해들은 대구 직물업계 인사들이 "그 자리에서 따귀를 때리지 그냥 뒀느냐"고 회의 참석자를 향해 흥분하고 있을 정도다.이같이 대구 직물 업계 분위기가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산자부 관계자들이 최근 말썽 많은 유화는 뒷전으로 제쳐두고 "화섬업계가 원사값을 먼저 내려야 되지 않느냐"는 발언을 하고 다녀 사태가 더욱 꼬이고 있다. 연간 수천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는 유화업계를 감싸면서 눈덩이 적자에 신음하는 화섬업계에만 원사값 인하 압력을 내리는 것은 결국 원사값 인하를 위한 처방이 아닌 것이다.국내공급가격이 화섬원료 국제시세보다 싸다는 유화업계의 논리만을 인정하는 것은 덩치큰 석유화학업계에는 말발이 먹히지 않는다는 얘기이다. 콩값은 천정부지로 뛰게 방치하면서 두부 값만 내리라고 하면 그 말을 따를 업계가 누가 있겠는가 하는 점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자칫 대구직물산업의 생사여탈권이 걸려있는 원사값 조정은 결국 없었던 일로 넘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힌 격으로 대구직물업계나 화섬업계가 마지막 보루로 믿었던 산자부가 이렇게 나오니 이성적인 대응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속된말로 이판사판 위기에 몰린 대구직물업계가 악에받친 마지막 상황에서 생존권 투쟁을 위한 대규모 궐기대회를 준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자기의 주장이 관철되지 않는다고 해서 모든 것을 집단행동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잘못이다.그러나 오죽하면 업종 중에서 가장 점잖고 순박한 섬유업계가 생존권 차원에서 봉기를 생각하겠는가 깊이 성찰할 필요가 있다. 업계가 다 죽는다고 아우성을 쳐도 엄살로 받아들이는 정부의 태도는 백번 비판받아야 마땅하다.중언부언하지만 지금은 돈이 넘쳐 주체못하는 유화업계가 어려운 거래선을 위해 양보할 줄 알아야 한다. 노무현정부의 아젠다라고 할 수 있는 분배차원이 아니라 고통분담 차원에서 화섬 원료가격을 내려야 한다.그래야 화섬업계도 원사값을 내릴 수 있다. 원사값을 내리지 못하면 대구는 산지기능을 완전히 상실할 수밖에 없다. 대구가 산지기능을 상실한 순간 세계의 바이어들은 한국에 다시 오지 않는다. 끝장난 한국의 합섬직물을 구매하러 올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면 지금 불과 1만2000대의 직기가 겨우 가동되면서 근근히 유지하고 있는 산지기능이 붕괴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그렇게 되면 화섬도 유화도 같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유화도 화섬사도 직수출로 전체물량을 소화하기는 불가능 한 것이다. 게도 구덕도 다 놓치고 나서 후회한들 소용없다. 스트림간 공조가 그래서 필요하고 중요한 것이다.지금은 합섬직물 수출이 공황기에 접어들었지만 이 위기만 잘 넘기면 희망이 보인다는 점을 정확히 직시할 필요가 있다. 우리 합섬직물이 고전한 배경은 세계적인 경기 불황못지 않게 중국이란 거대한 복병 때문이었다. 생산원가가 없는 세계의 공장 중국 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같은 세계의 공장에도 중대한 변수가 감지되고 있다.정부가 유화 편들기인가무엇보다 중국의 정책기류 변화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중국정부가 사실상 부실 상태가 50%에 달하는 중국은행들에 대한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임박한 것이다.기업에 퍼준 자금을 회수하지 못한 금융기관들이 철퇴를 맞게됐다. 그 바탕 위에서 은행 부실을 막기 위한 고강도 조치가 바로 내년부터 본격화될 것으로 외신들이 전하고 있다.다시말해 원가개념을 무시하고 무차별 싸게 팔던 중국산 직물도 한계에 도달할 수 밖에 없다. 손해보고 팔다가는 무서운 제재를 받기 때문에 제값을 받을 것이고, 그렇다면 한국과의 가격 경쟁에서 별로 유리할 점이 없기 때문이다.여기에 개성공단에 200여개의 봉제공장이 가동되면 소요원단이 천문학적으로 들어갈 것은 불문가지이다. 대구는 앉아서 경기도나 다름없는 개성공단 봉제공장에 대규모 원단을 공급하는 어부지리를 얻을 수 있다. 지금 이 위기만 잘 넘기면 국내 섬유산업 전반에 새로운 르네상스를 맞을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스트림간 협력분위기를 강화해야 한다. 이같은 대전제에서 산자부가 이번에 용단을 내려 험한꼴 보기전에 유화업계의 양보를 끌어내야 한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 <本紙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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