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올 것이 오고 만것같다. 섬유업체 역사상 초유의 집단봉기가 현실로 다가왔다.대구산지가 다 죽게 됐다고 아우성을 쳐도 조소로 응대한 정부나 은행, 유화업계를 향한 노기등등한 지역섬유업계의 분노가 행동으로 이어지게 됐다. 섬유업계 역사상 초유의 사태인 '대구·경북 섬유업계 생존을 위한 궐기대회'가 오는 12월15일 대구 신천 고수부지에서 개최키로 확정된 것이다.날카로운 겨울바람도 아랑곳 않고 지역섬유인 1만명이 모이게 될 이 궐기대회가 몰고 올 전대미문의 파장은 매우 심각할 수밖에 없다. 특정산업 그것도 국가 경제의 뿌리인 섬유산업이 정부와 은행, 그리고 앞공정 스트림을 향해 집단봉기를 일으킨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쇠붙이 만지는 업종보다 순하고 착한 섬유인들이 악에 받친 심정으로 이같은 집단행동을 결정한 자체를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무능한 대응 집단봉기 자초물론 자기 주장이 관철되지 않는다고 집단봉기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생각은 잘못일수 있다. 절차와 대화를 통해 난제를 해결하고 도움을 받는 것이 순리이다.그러나 대구 섬유업계가 이같은 마지막 결정을 하기까지 시간과 인내에서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정부나 은행, 유화, 화섬업계에 붕괴되는 대구산지의 참상을 수없이 호소하고 설득했지만 아무것도 이루어진 것이 없다. 결국 최선이 아닌 차선의 방법으로 이길을 선택한 것으로 보여진다. 이대로 가다는 이미 창궐한 부도 돌림병을 치유할 수 없어 대구산지 전체가 줄초상으로 떡쌀을 담그는 절망적인 사태가 필연적으로 오기 때문이다. 이같은 업계의 절규를 정확히 알리고 지원을 호소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 길을 택한 것이다.실제 대구 산지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집단 봉기할 수밖에 없는 처절한 상황을 감지할 수 있다. 세계 최대 화섬직물산지인 대구가 전성기때 5만대의 혁신직기를 가동하던 것이 시난고난 무너지면서 현재 겨우 1만2천대가 가동되고 있을 뿐이다.이것도 채산이 맞아서가 아니라 멈추면 넘어지는 자전거 바퀴처럼 기업행태가 취약해 어거지로 돌리고 있다. 이대로 가면 내년 초에 혁신직기 가동대수가 1만대 이하로 떨어지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사실이다.직기 가동대수가 1만대가 무너지면 바로 산지기능의 마지노선이 무너지는 것은 묻지마라 갑자생이다. 이렇게 되면 한국에는 합섬직물 산업이 붕괴돼 갈 필요가 없다는 여론이 전세계 바이어들 사이에 파다하게 나돌 수밖에 없다.그나마 아직은 싸구려는 중국에서 고급품은 한국에서 살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바이어가 찾아오지만 지난 반세기 공든 탑이 무너지면 게도 구덕도 다 놓칠 수밖에 없다. 이같은 절박한 위기감 때문에 죽기 전에 마지막 방법으로 수단은 좋지 않지만 청와대와 국회 중앙정부를 상대로 섬유인의 처지와 각오를 호소하기 위한 것이다.솔직히 섬유산업이 돈을 벌어 중화학, 반도체, 전자, 통신 등 오늘의 첨단산업을 일으켰다. 그중 절반이상을 대구 섬유업계가 담당하는 막중한 역할을 했다.그러나 정부의 섬유중흥정책은 구호와 구두선에 불과했고 사양이란 풍토병이 창궐하면서 은행의 목졸림에 집단으로 무너졌다. 신규대출은커녕 기존 대출금 회수에 혈안이 됐다. 금리도 꼴찌인 7등급을 기준해 타산업보다 훨씬 비싸게 적용하고 있다.은행본점의 대규모 섬유업종에 대한 자금회수와 대출기피로 엉뚱하게 대구에 러브호텔 융자가 가장 많았다. 그 결과 인구 250만 도시에 러브호텔수가 5000개에 달하고 있다. 그쪽은 섬유보다 더욱 불황이 심해 연체가 급증하는 등 은행들이 또다른 골치를 앓고 있다는 소문이다. 소가 웃을 짓이다.근본적으로 정부의 섬유정책도 실종된지 오래이다. 가능하지도 않은 2010년 섬유수출 300억 달러, 세계 3위 섬유대국이란 장밋빛 청사진으로 바람만 잔뜩 넣어놓고 실체가 별로 없다. 힘있는 정보통신·에너지분야는 연간 조(兆)단위 예산을 지원을 하면서 섬유분야중 돈 먹는 하마로 평가절하한 밀라노프로젝트를 포함해 연간 500억원도 안되는 예산이 고작이다. 산자부 17개 업종순위중 섬유가 꼴찌인 17위라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국가 기간산업이란 허울 속에 이같이 철저하게 외면 당하고 무시당하고 있다.더욱 억장이 무너지는 것은 화섬 원료메이커인 유화업계의 강자적 논리이다. 국제유가 인상분을 석유수익금 부담금 인하와 관세율 인하, 여기에 가파르게 이어진 환율하락으로 사실상 흡수됐는데도 올들어 화섬원료가격을 작년말 대비 76%까지 올랐다.득달같이 화섬사 가격도 실질 반영율은 다소 낮지만 역시 사종별로 46%에서 70%까지 뛰었다. 이 여파로 작년 말까지 직물제조원가에서 원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47.8%에서 올해는 68.3%로 높아졌다.화섬사 가격이 9월과 10월, 11월 연속 3개월간 뛰었는데도 직물업계는 9월에 인상된 원사가격마저 반영하지 못해 허탈한 탄식에 빠졌다. 매월 단위로 그것도 세 번씩이나 연달아 가격을 올리자고 하면 들어줄 바이어가 어디 있겠는가 하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결국 직기를 돌리는 것보다 세워두는 것이 손해가 적을 수밖에 없다. 하나의 예증으로 대구에 있는 1200대 규모의 某제직공장이 한 대도 돌리지 못하고 세워놓고 있는 것이 지금 대구가 서있는 현주소이다.누군가 책임져야 한다더욱 한심스러운 것은 대구 직물업계가 마지막 상황에서 이같은 원사값 폭등의 주인인 유화가격 안정을 정부와 유화업계에 수없이 탄원했으나 소용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말로, 서류로 수없이 건의를 했지만 들은 척도 안하다 산자부차관보 주재로 회의한번 하고 성과없이 끝나고 말았다. 심지어 "죽는 놈은 죽게 놔두지 왜 붙들고 가느냐"는 모욕적인 발언까지 들었다. 정부의 섬유산업 정책도 실종됐고, 조정능력도 없는데 대한 실망과 분노가 폭발하게 된 것이다.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상황을 안이하게 보고 건성으로 대응한 산자부부터 책임을 통감해야 된다.끝으로 최선의 선택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사상초유의 집단봉기 성격인 대구·경북 섬유업계 생존을 위한 궐기대회가 평화적으로 진행돼 정부와 은행, 원료메이커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됐으면 싶다. 대구산지 기질과 능력으로 봐 이번에도 그대로 넘어가면 서울에서 대규모 궐기대회를 다시 가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리고 정부와 은행, 대기업에 할말은 하되 대구 섬유업계 스스로도 구조를 고도화하고 기술개발에 앞장서 경쟁력을 갖추는 스스로의 소명과 책임도 동시에 다짐하는 결의의 장이 되길 당부한다. <本紙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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