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을 겹쳐 세우면 보기만해도 위태롭기 짝이 없다. 이같은 불안한 상황을 가리켜 진서께나 읽은 식자들은 '누란(累卵)의 위기'라고 표현한다.섬유산업 전반에 돌아가는 통박이 바로 이런 모습이다. 수출, 내수 가릴 것 없이 경기는 바닥이고, 환율은 곤두박질 치는데 내부의 파열음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절대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수출은 업종에 따라 기복은 있지만 사실상 대공황 상태를 방불케 한다. 이런 판국에 콩값은 천정부지로 뛰고 두부값은 폭락해 섬유 산업전반이 아비규환이다.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사실상 환율정책이 실종됐다. 불과 한달 사이에 원화대비 달러 환율이 100원 가까이 폭락했다. 1천만불 수출하면 10억원이 공중으로 증발했다. 가만히 앉아서 강도에게 당한 격이다.수출·내수 총체적 고통직물은 야드당 1~2센트를 놓고 줄다리기를 하고, 의류수출도 타당 달러단위가 아닌 센트 싸움을 하는 섬유업계로서는 억장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섬유뿐 아니라 모든 수출기업이 똑같이 겪고 있는 고통이다.설상가상으로 내년에는 달러당 원화환율이 950원선 운운하는 것을 보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정부관리들은 세계적인 달러 악세속에 환율 방어가 녹록치 않다고 변명하지만 일본과 중국은 환율폭락이 우리의 20%에도 못미칠 정도로 끄떡없이 버티고 있다.실제 달러 보유고가 8000억 달러에 달하는 일본은 지난 한달 평균 엔화 환율 강세가 우리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치고 있다. 외환 보유고가 5000억 달러에 달한 중국은 위안화 환율이 제로 베이스로 요지부동이었다. 우리정부의 환율정책이 수출기업의 숨통을 조인 꼴이다. 이런 절체절명의 상황인데도 국빈초청으로 영국에서 금마차탄 대통령은 우리 경제가 요순시절이라고 태평성대를 선언했다.1인당 국민소득 2만불 시대를 달성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환율폭락을 방치한 것이라면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나라경제를 거덜낸 YS정부시절 섣부른 OECD 가입이 몰고온 부작용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더욱 열패감을 가져온 것은 근본적으로 협소한 인구 4500만명의 내수 시장마저 폭삭 주저앉아 회복 기미가 안보인다. 가뜩이나 경기가 바닥인데다 날씨마저 거꾸로가 매기가 없다. 짧은 봄에는 늦추위가 오고 여름에는 주말마다 비가 오고 가을은 실종되고, 겨울은 12월이 되도록 겨울답지 않은 포근한 날씨를 유지했다.할수없이 시즌초반부터 파격세일로 물량 처리에 급급하다보니 기업의 채산성은 갈수록 말이 아니다. 여기에 공룡백화점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횡포와 독선이 갈수록 기승을 부려 입점업체들의 한숨은 갈수록 땅이 꺼진다.그동안 글로벌 소싱전략으로 성공을 거둔 의류봉제수출업계도 내년부터 쿼터가 폐지되면서 치열한 가격경쟁에 비상이 걸렸다. 대형 오프쇼어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회사는 오더는 있지만 중국과 인도를 중심으로 한 저임금국가들의 무차별 공세로 내용이 극히 부실해지고 있는 것이다.의류봉제 수출 가격이 쿼터가 폐지되면서 줄잡아 10~15%내외의 가격하락은 이미 예고된 상태이다. 쿼터가 유지되는 금년에도 채산이 빠듯한 판에 이같은 가격하락은 겨우 공장가동에 주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수출·내수·환율 보든 것이 악재 투성이인 판에 더욱 울화가 치민 것은 우리 내부의 스트림간 갈등구조이다. 화섬강국인 우리나라가 유화업계로부터 공급받고 있는 화섬 원료 가격 폭등으로 하부 스트림이 속절없이 붕괴되고 있다.바로 PTA와 EG. 카프로락탐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면서 화섬원사 가격이 덩달아 춤을 추고 있다. 결국 하부 스트림인 대구 합섬직물업계가 가뜩이나 심각한 대공황 속에 원사값 폭등으로 폭삭 주저앉고 있는 것이다.중언부언 하지만 국제 유가가 두바이산은 작년말 대비 금년 현재까지 24% 인상에 그쳤고 여기에 석유수입 부담금과 관세인하, 환율 하락으로 유가인상요인을 거의 흡수한 셈이다. 그런데도 유화업계가 70%까지 화섬원료 가격을 올린 것은 누가 뭐래도 폭리가 자명하다. 보다못한 산자부가 다죽어가는 대구 합섬직물업계의 탄원을 고려해 유화업계의 가격조정을 시도하고 있지만 덩치큰 유화업계의 반응은 한마디로 시큰둥하다.명분은 화섬원료 국내 공급가격이 국제시세보다 싸다는 것이다. 산자부도 기가막혀 과장 레벨을 시작으로 국장, 차관보 레벨까지 관장업무 파트별로 협의를 하고 있지만 각기 소관산업을 감싸느라 아무런 성과가 없다.물론 시대가 바뀌고 정부의 역할이 줄어든 상황에서 명분없이 가격을 내리라고 해서 먹혀들리 없다. 화섬설비 증가로 중국에서 수요가 늘고 있어 국제 가격이 강세인 것만은 부인 못할 사실이다.그러나 유화업계의 생산량중 가장 큰 비중은 국내 화섬업계 공급량이다. 국내 산업이 다 죽고 나면 그 같은 가격을 유지할 리가 없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더욱이 과거 유화업계의 국내 공급가격이 국제시세보다 훨씬 비쌀 때 국내 화섬업계는 어려움을 감수하면서 비싼 국산 화섬원료를 대량 사용해 줬다. 아무리 세월이 지나고 판세가 바뀌었다해도 과거의 은혜를 이렇게 망각하고 안면 바꾸는 것은 지나친 상혼이다.과거의 은혜 이렇게 응대하나이같이 정부의 무능과 유화업계의 강자적 논리에 분기충천한 대구산지가 급기야 오는 15일 생존을 위한 대규모 궐기대회를 갖게 된 동기다. 세계 직물시황의 대공황 속에 현재의 원사가격으로는 도저히 생존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절망감이 이런 사태를 촉발한 것이다.물론 대구 산지가 노기등등해 대규모 궐기대회를 한다고 당장 무슨 해결책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죽더라도 앉아서 죽는 것보다 서서 절규하며 왜 죽는지를 청화대와 국회, 행정부 금융기관에 알려 변화를 촉구하기 위한 최후의 몸부림인 것이다.누가 뭐래도 섬유는 전산업의 뿌리이고 섬유로 번 돈을 종자돈 삼아 오늘의 각종 첨단산업이 탄생했다. 아직도 고용과 가득액 무역수지의 일등공신임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런 사실을 정확히 알리고 섬유인 스스로도 기술개발과 자구노력으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다짐의 장으로 이번 궐기대회가 준비되고 있는 것 같다. 대구 섬유업계가 전대미문의 대규모 궐기대회를 강행해도 눈과 귀를 막고 못본척, 못들은 척하는 정부나 금융기관이라면 섬유인의 가슴에 불을 지르는 적개심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本紙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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