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 햇볕나면 우산주고 비오면 회수한다.
세계 경기 불황불구 매출 줄면 대출 거절
섬유산업 건설업과 동일 대출수위 최하위
차별화 소재 전문 설비. 장기저리자금 지원해야
섬산련 추천 있으면 시설자금 우선 대출 제도화해야


국내에서 손꼽히는 화섬교직물 전문기업 중의 하나인 P社 P某회장은 요즘 허탈한 탄식을 못 이겨 밤잠을 못 이루고 있다. 충청도에 있는 반도체용 공장을 130억원에 인수해 새로운 신소재 원단 전문공장으로 키우기 위해 시설자금을 금융권에 요청했다가 가는 곳마다 막판에 거부당해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 공장은 감정가격이 80억에 달해 이 중 40억원을 대출 받아 인수했는데 독자적인 기술을 바탕으로 첨단 설비를 도입하기 위해 시설자금을 신청했으나 가는 곳마다 퇴짜를 맞았다는 것이다. 사업계획서를 책 한권 분량으로 만들어 은행은 물론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보험을 찾았다가 마지막 중소기업진흥공단에 중기시설자금을 신청했으나 담당직원들이 뻔질나게 들락거리다 결국은 ‘NO'라고 대답한다는 것이다.

이유는 최근 매출이 감소돼 규정상 대출이 어렵다는 반응이다. K은행을 비롯 이곳저곳 여러 은행을 노크했으나 하나같이 매출이 최근 3~4년간 계속 감소돼 대출 규정에 합당하지 않는다는 궁색한 변명이다.

이 회사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첨단 염색가공공장을 비롯 4개 공장을 보유하면서 한 때 1억달러까지 수출했으나 주 시장은 유럽경기가 몇 년간 곤두박질쳐 매출이 5000만달러 수준으로 감소될 수밖에 없었다.

대학에서 섬유공학을 전공한 P회장 자신이 신소재 개발의 대가로 정평이 날 정도로 기술개발에서 자타가 인정하는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는 P社가 이럴진데 다른 기업들은 오죽하겠는가?
은행들은 햇볕 날 때 우산 빌려주다 비오면 야박하게 걷어가는 고약한 돈장사 근성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어 섬유뿐 아니라 많은 중소 제조업체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

청와대 금융감독원이 중소기업에 아무리 산용대출을 확대하라고 지시해도 일선 창구에는 씨가 먹혀들지 않고 있다. 그들은 가만히 있어도 사기업 보다 높은 임금을 받으면서 누리고 사는데 괜히 의욕적으로 대출해주다 “만에 하나 잘못되면 자기만 다친다”며 차라리 가만히 있으면 이 같은 위험부담은 없다는 식의 복지부동이 만연돼 있다.

섬유산업 중 이미 공동화된 봉제산업이야 그렇다 쳐도 허리 부분인 미들 스트림이 속절없이 퇴영의 길을 재촉하고 있다.
니트직물이나 화섬교직물 등 직물산업 쪽이 급속도로 붕괴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다.

대구산지나 경기북부 산지 불문하고 우선 사람이 없어 향후 5~6년 내에 거미줄과 곰팡이가 가득 찰 공장이 부지기수다. 우리 섬유산업의 중추신경 중의 하나인 미들스트림인 직물산업이 갖고 있는 취약점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데도 이를 개선할 자구능력도, 정책적인 지원도 갈수록 가물가물해지고 있다.
니트나 화섬ㆍ교직물 같은 미들 스트림은 구조적으로 자금이 많이 묶이게 돼 있다.

요즘은 예전과 달리 원사 구매 자금부터 거의 현찰박치기가 아니면 공급 자체가 안 된다.
당월 원사 입고분은 말일 결제가 안 되면 당장 원사 공급이 중단된다. 과거 3~4개월 주던 여신이 돈 떼일 위험성이 크다며 당월 결제로 바뀐 지 오래다. 특별히 배려한 곳이 한 달반 여신이다.
원사를 구매해서 제직이나 편직에 착수하여 염색가공을 거쳐 선적해 네고하기까지 웬만하면 6개월이 소요된다. 이 기간 동안 투입된 자금은 직물회사가 조달해야 한다.

그나마 경기가 좋으면 6개월에 끝나지만 불황이 장기화되고 있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원단 재고를 산더미처럼 쌓아둘 수밖에 없어 자금난이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섬유산업에 신규 시설 투자를 하겠다는 기업인은 대단한 용기를 갖고 있는 것이다.

중국과 인도네시아 등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세계적인 첨단설비가 선행돼야 하기 때문에 투자를 하려고 하는 것이다.
직물사업을 영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50대에서 60대, 70대로 구성돼 있고 이중 상당부문 자식들을 통한 2세 경영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이들 50ㆍ60ㆍ70세대들은 현재 가진 것만으로도 충분히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 원로들이 전 재산을 담보하고 새 기계를 넣기 위해 은행 문턱이 닳도록 쫓아다닌 것은 대단한 용기이자 애국자다.
자신감이 없으면 전 재산을 날릴 수 있는 위험부담을 안고 투자하겠는가.?

중국이란 세계의 공장이 지배하는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차별화를 위한 첨단 설비 도입이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본지가 최근 대서특필하고 있는 대형 의류수출 벤더들이 해외소싱을 통해 기업에 따라 올해 작게는 1~2억달러에서 14억달러까지 수출 외형을 키우고 있다. 이들은 향후 3~4년 내 외형을 지금의 배로 늘릴 의욕을 과시하고 있다.

이들 벤더들이 수출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국내 원단 사용은 반비례해 감소되고 있다.
기왕 레귤러 소재는 중국이나 인도네시아 등에 뺏긴다 해도 부가가치 높은 차별화 원사나 원단은 국산으로 공급해야 할 절체절명의 당위성을 갖고 있다.

대형 또는 중견 벤더들이 국산 원단을 더 많이 사용하기 위해서는 품질은 말 할 것도 없고 가격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그럼에도 고임금에 인력난까지 겹치는 피 말리는 제조업 현장의 상황은 예상보다 훨씬 심각하다.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세계적인 첨단 설비가 뒷받침이 되지 않으면 소용없는 일이다.

새로운 신설비 투자가 중소기업의 발등의 불이자 필연적인 논리이며 현실적인 대안이다.
그러나 은행권은 섬유산업에 대해 건설업종과 똑같이 대출 최하위 업종으로 천덕꾸러기 취급하고 있다. 기본 담보가 부족하면 설비에 대한 후취담보까지 해준다고 해도 ‘변 묻은 새발 떨 듯’ 외면하고 있다.

섬유산업 허리인 니트직물과 화섬교직물을 비롯한 미들 스트림을 살리지 않으면 섬유산업의 미래가 없다. 미들스트림이 죽으면 업스트림도 동반 소멸하는 것은 불문가지다.

따라서 섬유산업이 업ㆍ미들ㆍ다운스트림의 동반 성장을 위해 특히 직물관련 산업의 설비 투자에 대한 장기저리 정책자금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위에서 지시만 할 게 아니라 일선 창구에서 먹혀들어 가도록 철저한 관리감독이 필요하다.

이 문제는 곧 섬유산업연합회에서 상황의 심각성을 알고 차별화를 위한 시설투자를 확대하기 위한 중장기저리자금 대출을 확대해줄 것을 요청할 방침이다.

한ㆍ중 FTA의 쓰나미를 방지하기 위해서도 미들 스트림의 구조 고도화를 위한 설비투자 지원책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 하나의 대안으로 섬산련은 은행 및 신보, 기보 등과 MOU를 체결해 섬산련 기술위원회(가칭)의 추천서가 있으면 저금리 설비자금을 우선 대출하도록 제도를 만들 필요가 있다. 일본의 섬유산업이 붕괴된 실태와 원인을 정확히 분석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후발국의 섬유산업에 대한 추격은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중국은 물론 인도네시아도 요즘 설치한 지 10년 미만된 설비를 스트랩 중에 있다. 우리는 20년, 30년 고물기계로 섬유강국을 지향하는 것은 말잔치에 불과한 것이다.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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