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회 Tex+Fa CEO 조찬간담회’ 백영훈 KID원장 강연

섬유산업은 대한민국 발전 일으킨 첫 번째 주역
한국의 기업가 정신, 21세기 亞太시대 리드할 것
근대화 격동현장 체험담 참석자 동기 부여 ‘갈채’














“오늘날 ‘2013년’이 여러분에게 주는 테마는 어떤 것입니까? 100년전 10월 일본이 우리나라를 자신의 손아귀에 넣고 조선통독을 임명한 달입니다. 2013년 10월, 여러분은 잊혀진 조국의 100년 앞에서 다가올 100년이 어떻게 기록되길 원하십니까? 성공으로 기록될 것인가? 아니면 실패로 기록될 것인가? 마음가짐을 다시 해볼 시점입니다”

백영훈 한국산업개발연구원(KID) 원장이 100여명의 섬유ㆍ패션 CEO들에게 설파한 내용이다.

지난 24일 서울 강남 르네상스호텔에서 열린 ‘제32회 Tex+Fa CEO 조찬간담회’에 초빙된 백영훈 원장은 ‘21세기 한민족시대 최고 경영자의 비전과 선택’ 주제의 강연을 통해서 참석자들에게 비전과 선택의 메시지를 던졌다.

백 원장은 우선 1960~1970년대 우리나라가 어려운 역경을 딛고 근대화를 이룩한 여정에서 섬유산업이야말로 대한민국 발전을 일으킨 첫 번째 주역이라며 섬유ㆍ패션 관계자들의 노고를 치하했다.
백 원장은 이날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된 강연에서 자신이 조국 근대화의 격전장에서 경험한 생생한 사례들을 소개하거나 외국의 한국학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하면서 성공 경영의 동기부여에 열정을 쏟아냈다.

그는 강연 서두에 자신이 대학 재학 중 국비 유학생으로 선발돼 독일 유학길에 오른 것 소개한 뒤, 박정희 정부시절 서독으로부터 차관 도입 당시 벌어졌던 막전막후 에피소드까지 곁들이는 등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전개해 나갔다.

이승만 박사는 국가를 재건하기 위해 해외 경제학 박사를 양성 방침을 세웠고, 미ㆍ영ㆍ불ㆍ독 4개국을 대상으로 유학생을 파견하기 위해 인재를 발굴 지원했다.

고려대 상과 대학에 재학중이던 백영훈은 15대 1의 경쟁을 뚫고 독일 국비 유학생 1호로 선정됐다.
그는 독일에 건너가 1959년 Erlangen대학에서 경제학박사를 취득했다. 대한민국 경제학박사 1호다.

이후 박정희 정부 때 통역사로, 경제사절단 등으로 참여하면서 독일의 학계 경제계의 인맥을 동원해 차관 도입 과정에서 주역을 담당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라인강의 기적을 모델로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웠고, 서독으로부터 차관을 얻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던 상황이었다.

백 원장은 자신이 입안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서’를 독일 현지에서 차관 도입 브리핑 자료로 활용했다고 전했다.
차관을 얻으러 독일을 방문한 정래혁 상공부장관 주도의 한국의 경제 사절단은 독일 정부로부터 방문 첫날부터 문전박대를 당했다.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정권의 정통성을 문제 삼아 미국이 독일에 압력을 넣었던 것.

사절단은 ‘독일통’ 백영훈 교수의 역량에 의존하다시피 했다. 백 교수는 독일 유학시절 인맥을 총 동원해 불철주야 뛰었다.
대학 은사인 포크스 교수한테 읍소를 하면서 그의 지인인 에르하르트 수상을 만나게 해달라고 간청을 했다.
이마저 신통치 않자 대학 은사의 부인에게 찾아가 은사의 마음을 움직이게 해달라고 애원했다.

드디어 1주일 후 독일 경제부차관이 미팅을 하자고 통보해왔고, 미국 몰래 비밀리에 3000만 달러의 상업차관 도입에 성공했다.
백 원장은 수십 년이 흐른 지금도 당시를 회상하며 목이 멘 듯 목소리가 떨렸다.

차관 도입 과정에서 한국은 독일의 요청으로 광부 5000명과 간호사 2000명을 보낸 것도 이때 일이다.
한국인들의 근면성에 감동받은 독일 국민들은 같은 분단국가인 한국을 도와주자는 공감대가 형성됐고, 당시 뤼브케 대통령은 박 대통령을 국빈 초빙하기에 이른다.

박 대통령이 수행원들과 아우토반을 달리다 멈춘 뒤 차에서 내려 고속도로 바닥에 입맞춤을 하면서 결의에 찬 눈물을 흘렸다는 일화도 소개했다.

박 대통령은 귀국 후 이 같은 백 교수의 역량과 노력을 칭송하며 그를 청와대로 초빙, 현관까지 마중나와 껴안아줬다는 일화도 소개했다.

이후 대통령의 지시로 연구소 건립이 추진됐고, 1965년 11월 지금의 한국산업개발연구원(KID)이 탄생했다는 사연도 설명했다.
경부고속도로 타당성조사, 창원-구미공단 조성, 코엑스ㆍ무역센터 건립 등이 백 원장의 작품이다.

우리나라는 이후 베트남 파병과 연동한 현지 토목공사, 경부 고속도로 건설, 가발 수출 등 산업화에 총력을 기울이며 ‘라인강의 기적’에 버금가는 ‘한강의 기적’을 이루게 된다.

1960년 당시 우리나라의 1인당 GNP가 인도(52달러)에 이어 최하위권인 76달러에서 1977년 수출 100억 달러에 1인당 GNP 1000 달러에 오르자 세계가 깜짝 놀랐다.
선진국이 100~150년 걸려 이룬 것을 한국은 불과 30~40년 만에 달성한 것이다.

세계의 학자들은 이때부터 한국을 주목하기 시작했고, 코리아 세계의 중심국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을 잇따라 내놓았다.
백 원장은 2011년 폴 케네디 교수가 일본 도쿄대학에서 ‘21세기는 아시아 태평양 시대가 도래할 것이고 그 중심에 한국이 설 것’이라고 말한 것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케네디 교수가 말한 ‘5가지 한국정신’을 인용 설명했다.
△문화의 독창성 △가정의 경쟁력 △높은 교육열 △기업가 정신 △젊은이의 충성심이 그것이다. 젊은이의 충성심은 징병제를 실시하고 있는 한국의 군제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백 원장은 이번엔 오스트리아의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1883~1951)가 강조한 5가지 경영철학을 강조했다.
△경영은 학문의 지식이 아니라 지혜다: 역경ㆍ경쟁을 이기는 것은 지혜다. 개척ㆍ모험ㆍ도전정신이 중요하다.
△경영은 끝없는 혁신이다: 어제보다 오늘이 나아야 한다. 경영은 영원한 창조적 파괴의 과정이다.
△경영의 경쟁력은 조직력에서 나온다: CEO의 책임은 절대ㆍ완전ㆍ무한적이어야 한다.
△경영의 가장 소중한 자산은 (자본이 아닌)인력이다: 키워드는 대화ㆍ신뢰ㆍ설득ㆍ참여ㆍ성취다.

백 원장은 위 5가지 명제를 슘페터가 경영자들에게 놓고 떠난 것이라고 참석자들에게 재차 강조했다. 그는 경영의 목적은 이윤이 아니라 성취의 희열ㆍ기쁨이며 예술ㆍ사상ㆍ철학이라고 덧붙였다.
백 원장은 끝으로 아놀드 토인비가 역설한 ‘미래는 미래가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만 다가온다’를 자신이 구호로 선창하고, 참석자들의 기립을 유도해 함께 외치며 ‘열강’을 마무리했다.

이날 강의는 섬유ㆍ패션 CEO들의 큰 호응을 얻으며 평소보다 30분가량 더 이어졌고, 강연 도중 이례적으로 수차례 갈채가 쏟아졌다.
<사진 있음>

□ 백영훈 원장

<주요 경력>
△1954년 고려대학교 상과대학 졸업
△1958년 독일 Erlangen대학-대학원졸업(경제학박사)
△1959~1974 중앙대학교 상과대학교수
△1964~1973 대통령경제고문
△1970~1979 ECAFE 아세아공업개발기구 상임고문
△1976~1979 제9대, 10대 국회의원
△1970~ 재단법인 한국산업개발연구원 원장
△1990~1999 중소기업정책 위원장
△1991~1999 한국방위산업학회회장
△1996~ 한국질서경제학회 회장

<주요상훈>
△대통령포상, 은탑산업훈장, 대통령 유공기념비 수상, 독일민간외교 훈장, 독일연방공화국 대십자훈장, 국민훈장 모란장 등 다수

<주요저서>
△공업화과정의 이론, 현대경제의 이론과 실제, 한국경제와 공업화과정에 관한연구, 한국경제의 도전, 21세기는 너무 늦다, 아우토반에 뿌린 눈물, 한강에 흐르는 라인강의 기적‘ 대한민국에 고함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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