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패션 세계화 가는길 ‘패션거장’ 빈자리 커
‘앙드레김아뜨리’ 고인 유지계승 분주한 움직임
“앙드레는 흥행 보증” 브랜드 라이선스 이어져


‘그가 5년만 더 함께 했더라도…우리 패션산업에 동력이 붙을 텐데’
앙드레김(본명 김봉남. 1935.8.24~2010.8.12)타계 3주기를 앞두고 지난주 서울 서초동 ‘앙드레김아뜨리에’를 찾은 패션계의 한 원로 인사가 되뇌던 안타까운 독백이다.

한국 패션계가 세계화로 향해 속도를 높이고 있는 여정에 대한민국 패션 거장의 빈자리가 너무 컸던 까닭이다.
2013년 8월 12일. 대한민국 백의(白衣)의 거장 앙드레김이 이 세상을 떠난지 3주기다.

-화이트의 대명사, 패션에 시대정신 접목
그가 생전에 머물렀던 서울 신사동에 있는 의상실 ‘앙드레김 아뜨리에’.
하얀 꽃 장식, 하얀 조각 작품. 화이트톤이 휩싸고 도는 의상실 내부 분위기가 늘 흰색 차림이었던 그의 미소를 머금고 친근하게 맞아준다.

사방의 하양 베이스에 책과 TV, 탁자 등의 까망이 앙상블을 이룬 모습. 그의 숨결이 고스란하다.
대한민국 국민 패션디자이너 故앙드레김, 그는 화이트의 대명사였다.

앙드레김의 아들 김중도씨(앙드레김아뜨리에 대표)는 “아버지가 흰색을 참 좋아하셨다. 마음이 마치 미소년처럼 때 묻지 않으셨고, 한결같이 순수했다”고 회상한다.

앙드레김이 연출해낸 백색의 미는 지루하거나 단조로울 틈이 없는 매우 창조적 컨셉의 연속이다.
그는 동시대 세계 패션계를 주름잡았던 블랙을 사랑한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1936.8.1~2008.6.1)과 대비된다.

화이트를 대표하는 디자이너 앙드레 김은 웨딩드레스가 없던 시절 최초의 서양식 웨딩드레스를 자신의 뮤즈이자 당대 톱스타였던 엄앵란의 결혼식에서 선보이는 등 한국 패션의 역사이자 전설이었다.

1962년 소공동 조선호텔 앞의 양복점 한 켠을 빌려 ‘살롱 앙드레’라는 의상실을 열었고, 그해 12월 반도호텔에서 첫 패션쇼를 개최하며 한국 최초의 남성 디자이너로 패션계에 데뷔했다.

이후 ‘앙드레김 패션쇼’는 그 자체가 최고의 스타덤이었다.
송승헌, 장동건, 원빈, 권상우, 이영애, 김희선, 최지우, 김태희 등 당대 톱스타들이 그의 의상을 입고 런웨이 혹은 무대에서 세인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김중도 대표에 따르면 앙드레 김은 집에 TV를 3~4대씩 놓고 동시에 보았다.

화면에서 눈에 띄는 신인이 있으면 직접 전화를 해 패션쇼에 나와 줄 것을 권했고 그들과의 유대를 이어갔다. 배우 김희선의 경우도 그랬다.

앙드레김은 새벽 4시 반에 기상해 각종 신문과 방송을 다 본 후 하루를 시작했다.
작품에 현실성이 결여됐다는 일부의 시선을 의식해서일까? 그는 이처럼 자신의 패션에 늘 시대정신을 담으려 했는지 모른다.
김 대표는 “부친은 그처럼 열심히 사셨고, 많은 유명 인사들이 아버지의 옷에 크게 만족해 하셨다”고 전한다.

한국 패션을 최초로 세계 무대에 선보인 디자이너 앙드레김. 그 자신 또한 늘 하얀색 의상을 입으면서 세인들에게 백의(白衣)의 거장으로 인식시켰다.

-삼국시대-비잔틴 예술 동서양의 완벽 조화
1966년 파리에서 최초의 해외패션쇼를 열었을 때 ‘르 피가로’지는 그의 패션쇼를 신비의 마술이라고 표현했다. 앙드레김만이 자아내는 독창적 아우라에 대한 찬사와 갈채다.

그의 패션쇼는 애틋하고 아련한 스토리가 묻어난다.
그리움이 간절하고 사무침이 미어지다가 어느새 정열과 박동이 솟구친다. 이내 작품 속의 화려한 유혹에 취하다보면 지고지순한 사랑에 감동하면서 신비로움으로 승화된다. 한 편의 대서사시다.
한국의 정서를 몽환적으로 표현한 ‘칠겹옷(Seven layers dress)’은 그의 독보적인 ‘앙드레김스러움’을 말해준다.

한국적 원색의 오간자(Organza)에 용, 사람, 나비, 잉어, 꽃, 극락조 등이 아플리케로 수놓인 일곱겹의 옷을 입은 모델이 애절한 우리 음악에 맞춰 하나씩 옷을 벗으며 진행된다.

허물을 벗 듯, 알에서 깨어나듯… 관객들은 칠겹의 속살에 몰입하면서 무아지경에 전율한다.
그는 생전에 작품을 말하면서 “삼국시대 이후 우리의 궁중복과 화려한 비잔틴 예술의 조화가 모든 작품의 기본 모티브”라고 밝혔다.
“서양 고전에서 영감을 얻었지만 우리네 어머니와 할머니의 한과 그리움을 함께 담아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처럼 동서양의 조화를 완성도 높게 표현했다.
그는 한국과 한국의 색, 한국의 미를 특히 사랑했다.

마이클 잭슨이 한국에 왔을 때, 앙드레김은 그에게 의상 몇 벌을 선물한 뒤 잭슨으로부터 자신의 전속 디자이너가 돼 달라는 제안을 받았지만 정중히 거절했다는 얘기는 이미 알려진 대로다. 앙드레김은 잭슨에게 어디에 귀속되지 않고 한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로 남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마이클 잭슨은 이후 공식 석상에서 앙드레김의 의상을 즐겨 입었다.

-올해 4개 라이선스브랜드 추가 출시 이어져
앙드레김이 안보이는 앙드레김의 아뜨리에, 그를 추모하는 팬들의 발길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앙드레김의 책상에는 그가 좋아했던 꽃다발이 늘 놓여있다.

사람들은 앙드레김이 남긴 디자인의 작품을 구매하고 기업들은 라이선스 요청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 '앙드레김' 브랜드 라이선스사업은 도자기(한국도자기), 속옷(아인스M&M), 골프웨어(정선가족), 침구(한울아리), 안경(반도광학), 양말(빈센치오), 잡화(성창F&G) 등 10여 개에 달한다.

이들 라이선스업체와의 대부분 계약이 2010년 앙드레김 별세를 전후해 만료됐지만 '앙드레김' 브랜드가 지닌 잠재적 가치를 고려해 대부분 재계약으로 이어졌다.

아인스M&M이 전개하는 '앙드레김 란제리'의 경우 2002년 홈쇼핑으로 시작해 론칭 10년이 지난 후에도 꾸준히 출시되고 있다. 이제품은 홈쇼핑 시장점유율 1위를 유지하는 등 인기를 끌면서 2005년부터는 대형마트에 입점하거나 대리점을 확대해 나가는 등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2008년부터 '앙드레김' 도자기 라인을 출시하고 있는 한국도자기는 기존 홈세트, 커피세트, 뷔페세트, 예단용, 반상기류 등 스테디셀러 제품 외에도 신규 라인이 잇따라 출시하고 있다.

'앙드레김 골프웨어'의 경우 아웃도어 대세 속에 골프웨어 시장이 저조한 가운데서도 연 매출 200억 원 이상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올해 말까지 앙드레김의 라이선스를 받은 4개 브랜드가 추가로 출시될 예정이다.

현대우산, 유진타월, 라옴 청바지, 한국도자기 자회사 리빙의 주방용품(뚝배기) 등으로, 이미 제품이 나왔거나 계약이 마무리 된 상태다.

김중도 대표는 “아직도 라이선스 브랜드를 접할 때마다 부친의 숨결이 살아 숨쉬고 있는 듯 하다”고 말한다.
그는 또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 뿐 늘 그분이 함께 있다”며 “아버지의 사업을 잘 이끌어 나가고 싶다”고 전했다.

-패션쇼-기부-브랜드 통해 지속 소통
2011년 9월에 기공된 앙드레 김 기념관. 해마다 이곳에서 앙드레김 패션쇼가 열린다.
패션 불모지였던 60년대 디자이너로 입문해 평생토록 소원했던 자신의 꿈이 완성된 바로 그곳이다.

매년 봄 여름 가을 겨울 자연을 풍경삼아 아뜨리에에서 패션쇼를 열겠다던 그는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자신만의 공간을 남겼다.

그는 떠났지만 이제 많은 이들이 디자이너 앙드레김의 모습을 이곳에서 계속 볼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주변엔 이처럼 패션쇼, 라이선스 브랜드 등 대한민국 패션의 아이콘 앙드레김이 항상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앙드레김 사후에도 앙드레김아뜨리에는 유니세프, 서울대병원, 연세대병원 등을 비롯해 각 단체에 활발하게 기부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앙드레김아뜨리에는 김중도 대표 체제하에 임세우 실장, 디자이너 재단사 봉제사 등 앙드레김과 호흡해온 20여명의 장인들이 변함없이 근무하고 있다.

김 대표는 후계자 선정과 관련 “다소 늦어지고 있다”면서 “앙드레김 디자인 정신과 철학을 보존하면서도 현대적 감각으로 재조명시킬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인물을 찾고 있다”고 말한다.
아뜨리에 측은 올해 앙드레김 3주기 기념행사를 특별히 계획하지 않았다.

지난 8일 서울 진관사에서 가족과 의상실 실무를 맞고 있는 임세우 실장, 그리고 임직원과지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조촐한 천도제를 가졌다.

샤넬의 이미지를 지향하고 이브 생 로랑의 감각을 존중했던 코리안 그레이트 패션디자이너 앙드레김.
그가 오늘 사람들에게 말하는 듯하다.

엘레강스하게, 때론 판타스틱하게…패션은 인류의 아름다움이자 행복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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