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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호 회장에게 시스템양복에 크노와이셔츠가 만나면 ‘고품격 패션의 완성’이냐고 묻자, 한 가지 더 ‘최고 기술의 완성’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라이프어패럴ㆍ(주)리더무역 대표이사 정근호 회장

세계 최초 'NO주름셔츠' 개발…韓 업체들 공유 시장 장악 원해
백화점방문 외국인에 브랜드보다 하나뿐인 ‘크노기술’ 알렸으면…
시스템양복도 독보적…300개 패턴 DB보유 ‘완벽한 정장’ 제작

“세계 시장에서
주름을 잡을 것”


“최고의 와이셔츠는 단지 유명 브랜드가 아닌 최고의 기술력이 담긴 제품이어야 합니다. 국내 백화점에서 내보이는 옷이라면 적어도 ‘크노’ 정도는 돼야죠”
라이프어패럴 정근호 회장의 자신감이다.

“소비자들에게 제대로 된 품질의 와이셔츠를 제공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주름 없는 와이셔츠, 이게 바로 세계에서 하나 뿐인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기술입니다”

정근호 회장은 자신이 개발한 주름 없는 ‘크노’ 와이셔츠(드레스셔츠)가 프랑스, 이탈리아, 중국 등 해외에서 호평을 받고 있는데 정작 국내에서는 그 품질을 인식하고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워한다.

‘크노(CHNO)’란 Crease(주름) H(수소) NO(없다)의 약자로 형상프레스기를 활용하여 어깨선ㆍ몸통 옆 솔기 등 재봉선 부분의 주름을 없애는 공법이다.

와이셔츠에 손이 가장 많이 가는 다림질의 고민을 한 방에 해결한 셈이다.
정 회장은 이 기술을 10여년에 걸친 각고의 노력 끝에 2012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크노공법은 재봉선에 특수 필름 소재를 넣은 뒤 고도의 열처리를 이용해 주름을 반영구적으로 없애주는 방식이다.

- 세계시장 생존 기술력으로 무장해야
정 회장이 크노 기술개발에 뛰어든 이유는 오직 하나다.
우리나라 봉제기술이 가격경쟁 면에서 중국, 베트남 등에 점차 밀려날 것을 우려한 나머지 기술력으로 승부해 보겠다는 집념에서였다.

“과거 기능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석권하던 대한민국의 손기술 다 어디 갔습니까. 봉제 분야에서도 중국, 베트남이 치고 올라옵니다. 그들에게 자리를 내줄 수야 없잖습니까? 저가 물량공세로 나오는 신흥국한테 가격으로는 경쟁이 안됩니다. 오직 기술력으로 승부해야죠”

정 회장은 NO주름 ‘크노’기술 개발에 뛰어든 이래 몇 차례나 포기할까 생각했었다고 토로한다.

자신이 고안해낸 특수 필름 소재를 재봉선에 안에 넣은 뒤 프레싱 직전까지는 무리가 없었으나 열처리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열을 조금 세게 가하면 필름 소재가 오그라들고 열이 못 미치면 주름이 그대로 남아 두 가지 다 주름이 나타났던 것.

정 회장은 수차례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지난해 말 비로소 최적의 프레싱기법을 찾아냈다.
“몇몇 업체들도 비슷한 기술 개발에 뛰어들었다가 프레싱(열처리) 부분에서 벽에 부딪혀 중도에 접은 것으로 압니다”
정 회장의 집념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 ‘크노’ 탄생하자 외국 업체서 먼저 손짓
라이프어패럴이 ‘크노’기법을 탄생시키면서 단박에 수출시장에 돌풍을 몰고 왔다.
크노기술이 세상에 막 알려지자 프랑스의 듀퐁사에서 먼저 제의가 왔다. 이른바 선수가 선수를 알아본 것.

정 사장은 일단 1년 조건부 계약으로 듀퐁사에 기술을 제공키로 했다. 단기 계약 후 추후 옵션을 염두에 둔 까닭이다.
현재 이 회사의 와이셔츠는 전국의 백화점 등에서 라이프어패럴의 크노기술 라벨과 병행 부착돼 판매되면서 시장 점유율을 확대해가고 있다.

정 회장은 와이셔츠의 깃과 소매의 빳빳한 패턴 이후 30년 만에 탄생한 기술의 신기원이라고 강조한다.

- “미국이 고어텍스라면 한국은 크노”
“크노는 와이셔츠에 적용될 이 시대 최후의 기술이라 할 만 합니다. 미국에 방수(防水)원단 ‘고어텍스’가 있다면 한국엔 NO주름 ‘크노기술’이 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게 바로 중국을 따돌리고 미국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할 대한민국의 글로벌 경쟁력입니다. 이 기술을 저희 회사만 독점할 것이 아니라 국내 모든 셔츠 제조업체가 적용해 글로벌 시장으로 나갔으면 합니다. 외국의 바이어와 소비자들에게 ‘크노는 코리아, 코리아는 크노’를 인식시키자는 것이죠.”
의외였다.

정 회장이 그토록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독보적 기술을 국내 모든 업체들과 함께 나누겠다는 것이다.

“저는 크노기술이 단지 라이프어패럴의 기술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기술이라는 점을 세계에 알리고 싶은 것입니다. 과거 세계를 주름잡던 우리나라 봉제기술을 이제 기술력으로 업그레이드해 또 다시 신흥국과 격차를 벌려놓자는 거죠”

- 伊 업체서 150만장 주문 "일단 NO"
라이프어패럴은 최근 이탈리아의 한 업체에서 크노기술 셔츠 150만 장의 오더를 받았다.

이 회사는 이탈리아 당국에 ‘크노’상표권 등록해 권리를 보호해주겠다고 정 회장에게 약속했다.
그러나 정 회장은 수출 계약을 일단 보류했다.

“당장 150만 장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탈리아의 한 업체에게 곧바로 독점 공급할 이유가 없지요. 크노기술을 더 알리기 위해 현지 여러 업체들로 하여금 경쟁에 뛰어들게 할 겁니다. 이 역시 한국의 기술을 더 널리 알리기 위한 포석이니까요”

이 후 이 회사의 제휴 시도를 알아차린 다른 업체로부터 연락이 오고 있다고 밝혔다. 정 회장 바람대로 미끼를 문 셈이다.

- 가장 완벽한 스타일 ‘시스템제작’
정근호 회장한테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자랑이 시스템오더(시스템양복)다.

라이프어패럴은 크노기술 탄생 이전에 이미 시장에서 ‘시스템양복’으로 그 유명세를 떨쳐왔다.
시스템양복은 말 그대로 컴퓨터 시스템으로 수요자의 양복을 맞춤 제작한다는 의미다.

양복 공정의 경우 일반적으로, 고객 방문→치수재기→시침질(가봉)→(2~3일 소요)→(중가봉)→제품 완성 등 3~4단계 과정을 거친다.
그러나 시스템주문은 다양한 패턴 중에서 고객의 체형에 맞는 스타일을 컴퓨터가 찾아낸 뒤 소매와 품만 줄이는 정도로 마무리되기 때문에 제작 과정이 간단히 끝난다.
공정과 시간이 기존 방식보다 단축되다 보니 인건비가 줄면서 제품의 값이 매우 저렴하다.

“고객의 니즈에 시스템양복보다 더 완벽할 순 없지요. 일부에서는 수제가 아닌 기계 제작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컴퓨터는 사람이 놓치기 쉬운 치수의 오차를 잡아낸 뒤 최적의 스타일로 만들어 줍니다. 당연히 옷이 ‘쫙’ 빠지고 값은 저렴할 수밖에요.

- 美ㆍ日 견학 선진 시스템기술 응용
정 회장이 시스템 양복에 뛰어든 것은 20년 전 그가 미국과 일본 현지에서 업계를 시찰하고 나서부터다.

“기가 막혔습니다. 기계에서 어떻게 저토록 완벽한 제품이 나올까? 당시 미국의 유명 A제품 X제품이 대량생산으로 나오는 것을 보는 순간 우리가 해오던 손기술로만으로는 따라잡기가 역부족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시스템양복에 대한 그때의 신선한 충격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는 옷의 ‘패턴’까지도 미국ㆍ일본이 한국의 그것과 판이했다고 당시의 소감을 전했다.
정 회장은 초창기 시스템오더를 이해하기 위해 직접 옷을 가지고 와서 역순으로 해체하면서 분석하는 일도 여러차례 반복했다고 설명했다.

라이프어패럴은 현재 300개의 패턴을 DB로 구축해 놓고 있다. 즉 300개의 ‘매우 구체적인’ 샘플 안에 모든 사람의 체형과 스타일 패턴이 들어있는 셈이다.

정 회장은 또 상당수의 업체에서 ‘시스템오더’를 도입하고 있지만 보유하고 있는 패턴이 그리 많지 않아 정밀도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안다고 말한다.

결국 시스템양복 덕분에 옷값의 거품이 빠지면서 100만 원 대 정장을 30~40만 원 대에 공급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회사 관계자가 설명했다.

“9년 전 쯤 양복협회로부터 항의를 받았습니다. 시스템오더의 출현으로 수제양복 종사자들의 입지가 줄어들 것을 우려한 때문이죠”

- 시스템제작 방식 때문에 값이 저렴
중국ㆍ베트남으로부터 중저가 물량이 판친다면 오히려 고급품으로 가는 게 맞지 않느냐고 묻자 정 회장은 고개를 젓는다.

“저는 그럴 때마다 업계 사람들에게 일을 하자고 외칩니다. 즉 소량 고가제품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낮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문량이 줄어 우리 업계의 고급 기술자들의 손이 놀고 있는 실정이잖아요. 일을 하래야 일감이 없는 것입니다. 잘 만들어진 중저가 시스템양복의 수요는 느는데 말입니다”

그러면서 가격이 중저가이기 때문에 고급이 아니라는 생각은 편견이다고 덧붙였다.
정 회장은 시스템제작 때문에 인력의 손길이 줄었지만 대량생산 체제로 돌아가기 때문에 일감 확보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한다.

그는 올해 한국 맞춤양복협동조합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이를 계기로 시스템오더 활성화에 더욱 매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 무역 전담 법인 ‘리더무역’회장 겸임
정근호 회장은 고교 졸업 후 서울 명동에 있는 맞춤양복점에 첫 발을 내디딘 후 40년 가까이 한 길을 걸어왔다.

그가 설립한 라이프어패럴의 양복-와이셔츠 제품이 해외에서 꾸준히 수요가 늘면서 2000년 무역의날엔 ‘수출100만불탑’을 수상했다.
회사는 현재 1, 2공장 등에서 350여 명이 근무하고 있고, 서울 충무로 본점 외에 전국에 10개의 매장을 두고 있다.

정 회장은 라이프어패럴의 의류 수출에 탄력이 붙기 시작하면서 1991년엔 별도의 무역법인 ‘리더무역’을 설립해 회장을 겸임하고 있다.

- 중국서 더 알아주는 ‘명품 패션인’
정근호 회장은 한국보다 중국에서 더 알아주는 한국 섬유ㆍ패션계의 VVIP다.

‘中-韓 경제인연합회’와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중국의 전ㆍ현직 장관 및 각 성의 주요간부, 각종 경제단체와 활발한 교류를 유지해오고 있다.

정 회장이 한국의 LS전선 공장을 상하이 무석(無錫)市에 유치하는데 앞장서자 중국 당국이 감사의 표시로 현지에 ‘LS거리’를 명명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정근호 회장에게 'CHNO기술'과 '시스템양복' 다음엔 어떤 기술이 기다리고 있느냐고 물었다.
“일단 크노가 최후의 기술입니다. 크노에 올인하고 있습니다. 지구촌 남성들이 멋들어지게 입은 셔츠, 누가 봐도 한 눈에 크노임을 알 수 있게 말이죠. 세계 시장에서 ‘주름을 잡을 것’입니다.”
오윤관 기자 fashion-news@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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