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디자이너이자 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이하 연합회) 초대 회장인 이상봉 씨를 역삼동 쇼룸에서 만났다. 이순(耳順)(!)의 나이가 무색하게, 마음속 뜨거운 불덩이 하나를 단단히 품고 있는 남자.
“너무나도 서운했다.” 그의 단호한 대답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연합회와 지난 1년’이라는 주제로 지난 두 차례의 서울패션위크 이야기를 꺼낸 참이었다.

“지난 서울패션위크는 연합회 회원 모두 최악을 예상했고, 최선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패션센터 폐쇄와 연합회 결성 등 전후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아는 전문지 기자들이 결과물만 두고 가시 돋친 기사를 쏟아낼 때는 모든 디자이너들의 맘이 무척 아팠다.” 기자는 선뜻 그의 쓴소리를 부정할 수 없었다. 지난 두 번의 패션위크를 위해 이리 치이고 저리 부딪히며 분투한 그들의 노력을 알고 있기에…
글= 원유진 기자 fashion-news@nate.com
사진= 서세령 기자 fashion-news@nate.com

- 악조건 불구 패션위크 두 번 경험 값져
- ‘과정’보다 ‘결과’중시 전문지 보도 아쉬워
- 百과 편집숍 ‘CFDK’합의… 본격 신진육성
- 디자이너위한 작은 사업으로 유기적 시너지

● 연합회의 지난 1년을 돌아보면.
“우리가 기자회견을 한 게 2월이었다. 한 달 뒤 서울패션위크 사업자가 선정되고 그 다음달 행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자금·경험부족·장소 등 악조건 속에서도 어찌됐든 치러냈다. 잘했느니 못했느니 말이 많았지만, 10년 노하우를 갖고 있는 서울패션센터가 빠진 상황에서 두 번의 경험은 참으로 값진 것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디자이너들이 하나의 이름 아래 하나의 단체로 뭉쳤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미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 작년 서울패션위크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디자이너들도 지난해 추계행사가 최악이 될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주어진 상황을 감수하고라도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신인들은 이 무대를 통해서 인정받고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 최악의 상황에서 고군분투한 서울시나 피플웍스, 디자이너 모두에게 수고했다는 얘기는 전하고 싶다.”

● 패션위크를 취재하면서 연합회가 서울시와 운영사업자 사이 애매한 위치에 서 오해를 받고 있다고 느꼈다.
“행사를 진행하는 데 있어 연합회가 권한을 보장받아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사항은 아무것도 없다. 단지 동참해 조언하는 정도일 뿐이다. 하지만 지적한 대로 행사와 관련한 모든 비난의 화살은 연합회를 향했다. 일간지는 잘 몰라서 그럴 수 있다고 해도, 업계의 상황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전문지까지 결과물만 놓고 가시 돋친 비난을 쏟아낼 때는 많이 억울하고 서운했다. 불과 1년 전 서울패션센터가 폐쇄될 때는 소리 높여 성토하던 이들이 상황이 왜 악화됐는지는 아무도 얘기하지 않았다. 물론 모든 업계 전문 매체들이 열심히 하고 있지만, 다시금 존재 이유에 대한 성찰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지난해 백화점과도 다양한 비즈니스를 전개한 걸로 안다.
“신세계·현대 백화점에서 바자행사를 몇 차례 진행했다. 하지만 연합회의 가장 큰 목표인 신인육성을 위해서는 이런 일회적인 행사보다는 안정적인 고객과의 접점 마련이 시급하다고 판단했다. 백화점도 실질적인 비즈니스 형태 지원의 중요성에 공감했다. 그래서 올해 중 ‘CFDK’라는 이름으로 연합회 회원들의 작품을 판매하는 편집숍을 만들 계획이다. 여기서 가능성이 확인되면 독자적인 숍도 가능하게끔 연계할 생각이다. 두타와도 이야기가 무르익고 있는 중이다. 유통에서 신인 디자이너들을 위한 기회를 준 건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 디자이너 브랜드들이 백화점에서 점점 밀려나고 있다.
“디자이너들도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세계 모든 산업이 공정경쟁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그만큼 우리 스스로 경쟁력을 갖추도록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하지만 어느 정도 조율은 필요하다고 본다. 무조건 힘의 논리만을 절대적으로 앞세우기 보다는, 육성을 위한 지원을 요한 다는 말이다.”

● 신인 육성에 대한 연합회의 방침은.
“요즘 후배들은 감각은 좋지만 보호 속에 자라 나약하다. 작은 시련에도 쉽게 꺾인다. 어느 정도 성장하면 자율 경쟁을 통해 자생력을 갖도록 유도해야 한다. 지원금은 한정되어 있고 기회는 누구에게나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체계적인 지원책을 갖고 차등지원을 해 건전한 경쟁이 거듭되면 국내 패션산업은 자연스레 강화될 것이다. 패션은 스포츠나 예술과 달리 철저한 산업의 영역이다. 한 명의 빅스타가 모든 것을 한 번에 바꿀 수는 없다. 오늘날 케이팝 성공이 있기까지 수많은 회사에 소속된 다양한 아이돌들이 국내에서 경쟁을 하고 또 해외에 나가서 끊임없이 문을 두드리는 과정이 필요했다. 싸이가 뜬금없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선물이 아닌 것이다. 패션도 마찬가지다. 국내서 경쟁을 통해 역량을 갖춘 디자이너들의 끊임없는 도전이 이어지면 패션한류도 해외에서 케이팝만큼 인정을 받을 날이 올 것으로 믿는다.”

● 지난달 21일 송년회에서 신인 디자이너에 대한 시상도 있었다.
“남성복 디자이너 고태용, 여성복 디자이너 최지형을 신인 디자이너로 선정해 시상했다. 3년 이상 10년 미만 경력의 디자이너로 서울컬렉션을 한 번이라도 경험한 사람 중 10여명의 후보군을 선정했고, 기자단의 투표로 수상자를 정했다. 그리고 디자이너들이 뽑은 올해의 패션모델도 남녀 각 1명씩 선정했다. 김원중과 스테파니가 수상했다. 이들에게는 찍어낸 게 아닌 작가가 직접 만든 트로피를 선물했다. 요즘 가장 핫한 조각가 박승모가 제작을 맡아 줬다. 나중에 값이 꽤 오를지도 모른다.(웃음)”

● 연합회 회장직을 맡고 가장 큰 변화가 있다면.
“이전엔 나 스스로 소통을 거의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사람을 만난다. 선후배든, 공무원이든, 바이어든… 일단 만나 얘기를 나누면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몰랐을 때는 불평만 했지만, 알고 이해하게 되면서 해결하고 보완하는 건설적인 생각을 하게 됐다. 연합회 내에서도 꾸준히 대화를 하고 있고 이해와 조율을 통해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 2013년 연합회의 비전은.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디자이너 브랜드는 없다. 수십억원대 규모의 회사도 손에 꼽을 정도다. 500억원 이상 매출을 기록하는 곳은 한 군데도 없다. 연합회는 철저한 중소기업·개인사업자 위주의 단체다. 패션기업들이 주축이 돼 굵직한 사업을 진행하는 패션협회와 달리 연합회는 디자이너 개개인을 발전시킬 수 있는 작은 사업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디자이너는 디자이너가 가장 정확히 알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기성복 시장과도 유기적인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국제섬유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