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트의류 성장 잠재력 무한… 2020년에 5억불 수출 해야죠”
서울공대 섬유공학과 출신 55년 섬유 한 우물 판 니트의류수출 代父
3인 동업 75년 창업한 최신물산. 의류수출업체 대표적인 건실기업
94년부터 의리강한 3인의 창업자 2선 후퇴 전문 경영인체제 성공
히트작 벨로어 니트셔츠 대박, 니트의류 고가화 성공신화 구축
국내업체 해외 소나기 진출 자제해야. 우월적 지위 바잉오피스 횡포시정 돼야
국제섬유신문 섬유패션업계의 코디네이터 신뢰성, 영향력 가장 높이 평가 시정돼야


우리나라 대형 의류수출 밴더들은 전 세계 의류공급업체 중 난공불락의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지구촌 곳곳의 해외 생산기지를 활용해 작게는 연간 1억달러에서 많게는 연간 13억달러를 수출하는 글로벌 메이저로 우뚝 섰다.

세아ㆍ한세ㆍ한솔 등 ‘빅3’는 연간수출이 10~13억달러로 치솟았고 약진, 신성통상, 신원, 노브랜드, 광림 등 랭킹 10위권 기업이 선진국 백화점과 대형 체인스토어를 장악하고 있다.
이를 대형 밴더들의 오늘의 성장가도의 시발점은 니트의류였다. 아직도 절대적인 비중은 니트의류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대형 밴더들의 주력 아이템인 니트의류 수출의 질적 성장을 주도한 숨은 기업이 최신물산이다. 서울공대 섬유공학과 출신의 최원갑 회장과 현희헌 회장, 서울상대 출신의 신동환 회장 등 3인의 생산과 무역의 대가가 지난 75년 의기투합해 설립한 니트의류 수출 전문기업이다. 외형보다 내실위주로 소가 밟아도 끄떡없는 내실경영의 상징인 최신물산은 수출니트류의 고급화를 선도해 세계적 전문기업으로 명성을 날린 강소기업이다.

수출외형은 전제 7~8위권이지만 이익률은 가장 높은 건실기업이다. 이 회사는 올해로 창립 37년을 맞고 있지만 동업이 어려운 한국적인 풍토에서도 차돌처럼 강한 3인 대주주의 응집력과 차별화 전략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때마침 본지 창간 19주년을 맞아 탁월한 경영능력을 발휘해온 니트의류 수출의 대부격인 업계의 원로 현희헌 회장(79)을 본지 조영일 발행인이 집무실에서 만나 최신의 독특한 경영스타일과 성공비결 그리고 향후 계획을 들어봤다.

-오랫만입니다. 죄송한 표현이지만 삼산녹옥 드셨나요? 80연세에 그렇게 팔팔할 수가 있습니까…(웃음)
“아직은 괜찮아요. 매일 런닝머신하고 산에도 가고 가끔 골프도 하죠. 많이 걷는 편입니다. 바쁘게 사니까 늙을 틈이 없어요. 항상 긍정적인 마음으로 최선을 다한다는 신념으로 일관하다 보니 건강을 지켜주는 것 같아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 아닙니까. 제가 신장이 1미터 73인데 체중 72Kg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어요.…(웃음)

-경영일선에서는 손을 떼었지만 여전히 업무는 챙긴다면서요. 작년에 인도네시아 공장 지을 때도 현장에 상주하면서 뙤약볕 속에 직접 진두지휘하신 걸로 들었습니다.
“저희 창업멤버 3인은 오래전에 경영일선에서 손을 뗐지요. 지난 94년부터 바잉오피스 지점장 출신인 홍성표 사장이 경영을 맡았고, 중간에 잠시 월마트 소싱 담당 부사장을 했던 김기명씨가 사장을 맡다 다시 홍성표 사장이 올 초까지 전문 경영인으로 경영을 해왔어요. 그러다 최근에 신원에서 수출담당 사장을 역임한 김종면씨를 전문 경영인으로 영입한 것입니다.

다만 저희는 주요업무는 보고받고 의견을 개진하면서 필요하면 현장에 직접 찾아가 해결하고 있어요. 해외공장 짓는 일들은 남에게 맡기기가 어려워 제가 직접 현장에 상주한 것이죠. 전문 경영인들이 잘해주고 있어 저희는 편합니다.”

-서울대 섬유공학과를 졸업하신 후 상당기간 직장생활을 하신 걸로 압니다.
“대학 졸업 후 염색전문회사에 입사해 18년 동안 3개회사를 거쳤지요. 제 전공이 염색가공 아닙니까. 그러니까 대학 졸업 후 58년부터 영등포에 있는 동화염직에 들어가 6년간 근무했어요. 그 후 삼양동에 있는 대광염직에서 다시 6년간 근무하고 다시 대건염직으로 옮겨 다시 6년간 근무했는데 마지막 공장장 상무로 퇴임하기까지 공교롭게도 한 회사에서 6년씩 근무해 18년을 월급쟁이 생활을 한 것이죠”

-최신물산 설립이 1975년 아닙니까 어떻게 3인이 의기투합해 동업관계를 구축하셨는지요.
“제가 마지막 대건염직 상무(공장장)를 그만두고 하청 임가공 사업보다 직접 무역을 해볼까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편직공장을 준비하던 참이었습니다. 어느날 서울공대 섬유과 동문인 최원갑 회장과 서울상대 출신인 신동환 회장이 만나자고 연락이 왔어요. 그분들은 무역과 관리분야 전문가들이고 저는 생산전문가란 점에서 의기투합하기로 한 것이죠.”

-지분 관계는 어떻게 하셨는지요.
“저와 최원갑 회장이 각35%, 신동환 회장이 30%로 3인 공동 경영체지이었지요. 직급은 사장, 부사장, 전무체제이었지만 대주주였기에 완벽한 공동경영체제를 이어온 것입니다. 동업관계가 어렵다고 하지만 저희는 그 점에서 한치의 불화 없이 역할분담을 해 운영해왔지요. 서로 욕심부리지 않고 신뢰하며 역할부담을 하니까 마찰이 있을 수 없지요.
그중 신동환 회장은 아깝게 재작년에 세상을 떴어요. 그래도 그 아드님이 지분을 그대로 승계해 권리를 정상적으로 행사하고 있습니다”

-처음 창업하면서 주력 아이템을 니트의류로 정해 지금까지 고수하고 있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었습니까,
“창업 당시 세계 패션트랜드가 니트의류 쪽으로 바람이 불기 시작했어요. 창업자 3인도 니트의류로 방향을 설정하는데 이의가 없었지요. 그때 시작된 니트의류 강세가 계속 이어져 지금까지 오고있는 것입니다.”

-최신의 히트작은 벨로아니트 아닙니까
“그렇지요. 니트의류 중에서도 고급, 고가화 제품이니까요. 당시에는 국내 업계가 벨로아 부문에 별다른 관심이나 전문지식이 없었거든요. 저희가 벨로아 원단을 개발해 미국 백화점에 공급했는데 이것이 적중해 대히트를 친 것입니다. 지금은 벨로아 비중이 많이 줄었고 모달, 텐셀과 고급코튼 소재 비중이 훨씬 커졌습니다만….”

-최신의 경영스타일은 독특하지 않습니까. 창업 이후 지금까지 매년 결산 후 이익금을 사내 유보시키지 않고 대주주 3인에 매년 배당한 것으로 압니다만….
“매년 결산 후 이익금의 80%는 대주주에게 현금 배당합니다. 나머지 20%는 사내 유보시키지요. 이중 10%는 직원들에게 인센티브로 배당합니다. 이 같은 원칙은 창업 초기부터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지요”

-그래서 그런지 외형 신장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작년에 1억 5000만달러 규모를 수출하셨다죠.
“작년에 외형이 많이 늘어난 셈이죠. 알다시피 우리는 외형경쟁을 안합니다. 후발주자들이 규모의 대형화를 놀랄만큼 확대하고 있지만 저희는 이익이 안 남으면 오더를 안 받습니다. 올해는 당초 2억달러 수출을 겨냥했는데 아마 다소 못 미치지 않을까 봅니다. 다행히 미국경기가 서서히 회복되고 있어 희망을 갖습니다만…”

-장기계획은 어떻게 보십니까
“2020년을 목표로 5억달러 수출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8년 정도 남았으니까 여러가지 준비를 완벽하게 해 달성시킬 겁니다. 내년에는 조정기를 거쳐 재도약의 끈을 바짝 조일 겁니다. 성장 잠재력은 충분하다고 봅니다”

-최신의 경영스타일은 대형 밴더들과는 달리 그야말로 다양한 다품종 소량체제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저희는 한 해 동안 수출한 스타일이 2000여종이 넘을 정도니까요. 오더 당 몇천장은 물론 500장 짜리도 소화해내고 있지요. 바로 이것은 오더 시점에서 생산, 수출과정이 그야말로 분초를 다투고 이루어집니다. 이런 오더가 돈되는 것이죠. 최신은 이런 점에서 국내 최고의 순발력과 차별화업체로 자리 잡고 있어요.

다른 회사에 근무하다 최신에 온 직원들은 처음에 애를 먹습니다. 한 스타일당 오더 단위가 50만장, 100만장 하다 몇백, 몇천장 오더를 하려니 오죽 손이 많이 가고 바쁘겠습니까. 그러나 이런 오더를 소화할 수 있는 다품종 소량체제가 정착해야 수익성이 높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저희는 니트의류 수출밴더 중 국내 생산비중이 가장 많은 업체입니다”

-작년에도 현회장님이 직접 인도네시아 공장을 건립하였는데 해외 생산기지는 어느 규모입니까
“인도네시아에 2개 공장 45개 라인에 5000명 규모가 있고 니콰라콰에도 16개 라인 공장을 갖고 있지요. 해외공장을 수출전선 중 최전방 전투병 역할을 하고 있지요. 후방에서 군수지원을 아무리 잘해도 최전방부대가 제대로 작동이 않되면 전선은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해외공장 생산관리에 항상 온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지요.”

-인도네시아도 한국기업이 너무 많이 진출해 인력스카웃 등 부작용이 많다면서요.
“그게 문제에요. 처음 해외공장을 건립할 때는 그 지역 인력 수급문제들을 충분히 사전 검토한 후 착수해야 하는데 한국기업들은 먼저 나가있는 기존 공장 옆에 너도나도 소나기 진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필연적으로 기존 공장에서 인력 스카웃을 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지난번에 국제섬유신문이 한국의 某업체가 그런 얌체짓을 한 ‘인력스카웃 파문을 득달같이 대서특필해서 바로잡았지요.’ 국제섬유신문은 우리나라 섬유업계의 코디네이터로 저희가 항상 높이 평가하고 가장 신뢰하고 있지요. 정부가 할 수없는 일을 국제섬유신문이 조정하고 해결해줘 고맙게 생각합니다. 해외에서도 국제섬유신문을 인터넷으로 많이 보더라구요”

-37년 창업역사상 가장 성공한 기업으로 정착했습니다만, 경영하시면서 마음 고생하신 일도 많으셨을 텐데요.

“기업하다보면 이런 일 저런 일 많이 겪기 마련이죠. 그러나 지금은 많이 해소되고 있지만 아직도 바잉 에이전트들의 횡포는 척결되지 않고 있는 것 같아요. 오더를 주는 입장이긴 하지만 마치 상전처럼 행세하는 고약한 버릇이 아직도 남아있다는 겁니다. 수출 회사직원을 마치 아랫사람 취급하는 경망스런 행동이 많아요.

심지어 단추ㆍ박스 공급업체까지 지정하는 어처구니없는 횡포를 저지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 회사는 그런 폐습이 별로 눈에 띄지 않지만 상당수 수출업체들이 겪고 있는 공통된 애로일 겁니다. 이 같은 잘못된 대못을 하루빨리 뽑아 내야한다고 봅니다.”
-시간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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