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봄이 온 듯 푸근했던 지난 15일 오후, 김중도(31) 앙드레김 디자인 아뜰리에 대표를 만났다. 오히려 이름보다 故 앙드레김의 유일한 아들이자 혈육이라는 소개가 사람들에게 더 익숙한 그다. 평생 뒤를 따른 아버지의 산 같은 그늘이 싫을 만도 하지만 그는 오히려 "아버지를 잊지 않고 기억해주는 이들이 고맙다"고 말한다. 형형한 눈빛에 사람좋은 미소를 갖고 있는 이 남자를 지극히도 아꼈던 앙드레김의 마음은 항상 푸근한 햇살 가득한 오후 같지 않았을까.
원유진 기자 ssakssaky@itnk.co.kr

- 앙드레김은 평소 사생활을 노출하지 않기로 유명했다. 유명 디자이너가 아닌 아버지 앙드레김은 어떤 사람이었나.
초중고 시절 아버지는 학교에 자주 오셨다. 학급에 햄버거나 피자를 돌리기도 하셨다. 사실 그때는 모든 친구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쏠리는 게 너무 싫었다. 아버지의 덕을 본다는 기분이 들어서였다. 아버지는 항상 내게 주시기만 했다. 아버지는 일상적인 모습의 사진이 거의 없으시다. 당신보다는 내 사진 찍어주기에 바빴기 때문이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은 후엔 그 사랑이 아이들에게 돌아갔다. 오히려 손자들에게 더 지극한 사랑을 주셨다. 손수 옷도 만들어 입히셨고, 해외라도 한 번 갔다 오시면 선물을 양손가득 갖고 오시곤 했다. 평소 아버지는 내게 결혼은 23에 해서 아이는 다섯은 낳으라고 말씀하셨다. 3년 늦었지만 26에 결혼해 손자 셋을 안겨드렸으니 그 부분은 효도한 셈이다. (웃음)

- 화려하게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생활은 소탈하셨다고 들었다.
아버지는 유명 디자이너 배경만 지우면 여느 대한민국 중년 남성과 다르지 않았다. 아버지는 우리 집 바로 앞 동, 같은 층에 사셨다. 문을 열고 아이들과 인사를 하면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셨다. 함께 식사하고 TV시청을 하는 일을 너무 즐거워 하셨다. 그리고 김치찌개를 좋아 하셨고, 떡볶이도 즐기셨다. 신당동 마복림할머니는 아버지의 절친이셨다.(웃음) 생활도 럭셔리와는 거리가 머셨다. 신발도 헤지면 칠을 해서 신으셨고, 양말은 구멍이 나면 꿰매 신으셨다. 지갑도 남루하기 이를 데 없으셨다. 평생 옷을 지으셨으면서도 정작 본인 옷은 평소 입으시는 흰색 옷 외에는 별로 남은 게 없었다. 평생 주시기만 하셨지 본인은 챙기지 않으셨다.

-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받아 직접 운영하고 있다.
편찮아 지시기 전까지는 아버지의 가업을 잇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패션에 관심도 없었던 데다 디자인과 무관한 불어를 전공해 평범한 직장인이 내가 갈 길이라고 여기며 살아 왔기 때문이다. 그러다 덜컥 아버지께서 대장암 판정을 받으셨다. 그 뒤로 아버지를 곁에서 모시면서 사업을 가까이 지켜봤고 2009년 군 제대 후 본격적으로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아버지가 이렇게 일찍 우리 곁을 떠나시리라고는 아무도 몰랐다. 당신 본인도 예상 못하셨던 일이다. 그렇다 보니 준비가 완벽하지 못했다. 30년간 아버지를 도와주신 임세우 실장님과 10년 이상 손발을 맞춰온 디자이너 팀들이 있어 유지는 하고 있지만 도약을 위한 변화를 준비고 있다.

- 변화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투자 제의가 많이 들어왔다. 당시 상속세다 뭐다 해서 정신이 없기도 했지만 자칫 아버지의 명성에 누를 끼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모두 고사했다. 그리고 생전에 진행하셨던 라이선스 사업의 경우 유지는 하고 있으나 란제리나 주얼리, 가방 등은 작은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50년 동안 아버지는 혼자 모든 일을 해오셨다. 모든 구성원이 아버지의 지시를 따라 일을 해왔다. 그렇다 보니 모두 자생력을 키우지 못했다. 당연히 운영을 방어적으로 할 수 밖에 없었다. 아직 정확한 변화의 내용을 말할 수는 없지만 틀을 깰 변화가 필요하다는 데 모두 공감하고 있다. 그 문제로 항상 고민 중이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아버지의 지인들과 패션 전문가들을 찾아뵙고 조언을 구할 생각이다.

- 많은 이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은 앙드레김을 이을 후계디자이너 선정이다.
아버지 생전에도 꾸준히 제안했던 내용이다. 임 실장님과 계속 논의를 하고 있다. 아버지가 돌아 가셨을 때 젊은 디자이너들이 아버지의 디자인을 재해석한 작품을 선보이는 특집이 있었다. 거기서 눈에 띄는 디자이너가 한 명 있었다. 그 외에도 여러 방면에서 앙드레김 브랜드 정체성 지키며 새 스타일 창조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디자이너를 찾고 있다. 앙드레김을 대표한 새얼굴이 결정되면 대대적으로 미디어 프레임을 선점하고 변화의 시작을 알릴 계획이다.

- 이제 앙드레김의 2주기가 돌아온다. 특별한 계획이 있나.
기흥 아뜰리에가 있는 용인시에서 아버지 기일을 준해 8월 10일부터 12일까지 추모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시에서는 패션밸리 조성을 염두에 두고 진행하는 사업이다. 그리고 아버지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도 준비 중이다. 배우 하정우 씨가 주연을 맞았고, 현재 시나리오 작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솔직히 하정우씨는 아버지가 좋아하신 꽃미남 스타일의 외모는 아니다. (웃음) 하지만 연기만큼은 최고다. 영화를 통해 멋지게 아버지를 재해석해 내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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