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탄소섬유시장 1위의 일본 도레이그룹이 한국에서 올 한해에만 총 3000억원에 달하는 통 큰 투자를 시작했다.

도레이의 한국 법인인 ‘도레이첨단소재’가 경북 구미에 생산 공장을 설립, 일본 이외에 아시아 국가에서 처음 탄소섬유 생산기지를 건설한다. 향후 구미공장은 아시아를 넘어 세계시장을 공략하는 탄소섬유의 제조 거점이 될 것이라는 게 도레이 측의 설명이다.

도레이첨단소재의 이영관(63) 사장과 일본 도레이의 닛카쿠 아키히로(日覺昭廣·62) 사장은 17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경북 구미시 국가산업4단지에 있는 제3공장에 탄소섬유 생산라인을 건설한다고 밝혔다.

이 사장은 “2013년 1월부터 연간 2200t 생산을 목표로 시작해 2020년까지 탄소섬유의 연간 생산량을 1만4000t으로 늘릴 것”이라며 “이는 구미공장이 향후 12%대의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는 세계 최대 탄소섬유 생산기지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10년 후 10조원대 탄소섬유시장 창출

도레이첨단소재는 구미 공장에만 올해 우선 500억원을 투자하는 데 이어 10년간 총 88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국내 첫 탄소섬유 생산기지가 될 구미공장에서는 주로 자동차, 항공기 등 산업용 탄소섬유가 생산된다.

‘꿈의 신소재’로 불리는 탄소섬유는 아크릴 섬유를 불에 태워 만드는 것으로 무게는 철의 4분의 1에 불과하지만 고탄성·고강력을 갖고 있어 이를 항공기나 자동차 등에 사용할 경우 연료 사용이 줄게 되면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

탄소섬유는 처음 골프채·테니스라켓 등의 소재로 쓰이기 시작해 항공기·자동차·로켓의 구조재와 풍력발전 블레이드(날개), 전기·전자 부품, 건축 자재 등으로 적용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도레이첨단소재는 이미 삼성전자, LG전자 등과 함께 공동으로 자동차 경량 동체, 액정표시장치(LCD) 소재, 로봇팔 등 탄소섬유를 적용할 수 있는 소재 개발에 착수한 상태다.

도레이그룹은 연간 20조원으로 추정되는 세계 탄소섬유시장에서 시장점유율 30%를 기록하면서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미 일본, 미국, 프랑스, 독일 등 4개국에서 탄소섬유 공장을 가동하고 있는 도레이는 이번 한국의 탄소섬유시장 성장성에 큰 기대감을 나타냈다.

닛카쿠 사장은 “한국의 탄소섬유 시장은 현대자동차, 삼성전자 등 글로벌 대기업들의 수요 증가로 지난해 2400t 규모에서 2020년에는 1만4000t으로 커질 것”이라며 “2020년에는 10조원 이상의 탄소섬유 관련 신규 시장이 형성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번 도레이그룹의 구미공장 투자 결정은 저렴하고 안정적인 전력 조달, 한국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의 세제 지원 등이 고려됐다. 이와 함께 닛카쿠 사장은 “무엇보다 오랜 파트너십과 뛰어난 경영자원이 결정적인 요인이었다”며 이 사장의 경영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

이 사장도 “탄소섬유 제작 과정에는 전력이 많이 필요한데 한국의 전기요금은 일본에 비해 절반, 중국에 비해 30∼40% 저렴한 데다 구미시의 적극적인 유치 의사와 지원 약속이 있었다”고 말했다.

◇“탄소섬유 기술 성장엔 많은 시간이 필요”

한편 효성, 코오롱 등 국내 화섬기업들의 탄소섬유 개발 실적을 살펴볼 때 2005년 시작된 이후 아직 소규모 시험설비 가동 등 초기 단계에 머물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닛카쿠 사장은 “도레이가 탄소섬유 사업을 시작한 지 40년이 넘었지만 제대로 이익이 나기 시작한 것은 10년도 채 되지 않는다”며 “특히 가공 편의성에서 큰 격차를 벌인 도레이를 한국 기업들이 단기간에 따라잡기는 힘들 것”이라고 진단했다.

또 중국이 아닌 한국에 탄소섬유 공장이 유치된 데 대해 도레이의 탄소섬유 담당 고이즈미 신이치 부사장은 “대량살상무기, 핵무기 등에도 쓰이는 탄소섬유의 경우 기술이전에 있어서 국제적 제약이 있다”며 "중국은 그런 면에서 아직 ‘화이트 국가’가 못 되며, 미국 등 주요 국가는 동맹국이 아니면 탄소섬유 기술이전을 하지 못하게 한다”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의 경우 정부 차원에서 이미 탄소섬유 개발이 활발히 진행 중이고 개발 업체만 10여 개가 있는 데다 특히 국방산업에 수요가 많아 일본 기업이 진출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고 전했다.

김숙현 기자 sojung@

◈도레이그룹은
세계 탄소섬유시장에서 40%의 점유율를 차지하고 있는 도레이그룹은 1926년에 창업한 이래 전 세계에 자회사 240여개와 임직원 3만8000여명을 두고 있다. 대표적인 섬유·소재·화학기업으로서 2010년 회계연도 매출이 1조5300억엔(잠정치, 약 20조6200억원)에 달했다.

한국 자회사로 삼성이 세운 제일합섬이 전신인 도레이첨단소재(옛 도레이새한)가 있다. 지난 1999년 일본 도레이와 ㈜새한의 한·일 합작기업(지분 6대4)으로 설립됐다가 2008년 1월 새한이 갖고 있던 지분 전량을 도레이가 넘겨받아 지금은 도레이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이번에 도레이첨단소재는 탄소섬유 외 기존 사업인 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PET) 필름 생산에는 모두 1500억원을 투자하며 섬유, IT소재에 각각 500억원씩을 투자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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