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추계 서울패션위크의 뜨거운 열기로 한창인 지난 10월 26일 저녁 8시 서울무역전시장(SETEC) 1관.
수백 명의 관중들로 발 디딜틈 없는 그 곳은 디자이너 이상봉의 컬렉션이 열리는 곳이었다.
해외 초청 패션관계자들과 각국의 바이어, 프레스, 그리고 내노라하는 패션계의 수장들과 스타들이 모두 그의 무대를 향해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캣워크의 출발은 수십미터에 달하는 초대형 석고 흉상으로 시작했다.
새의 지저귐과 오묘한 음악이 흐르고 그 흉상위로 새의 깃털을 형상화한 신비로운 레이저 빛이 영상의 메시지를 전한다.
그리고 시작된 첫 무대는 그늘에 젖은 모래색, 누드, 화이트 톤이 한 축을 이루는 뉴트럴 컬러를 중심으로 한층 모던해진 여성복과 남성복이 펼쳐졌다.
특히 구조적인 컷팅과 극도로 정교한 디테일, 인체의 아름다운 흐름을 완성시키는 실루엣은 기대 이상의 압도적인 무대를 선사했다.
2011 S/S 이상봉 컬렉션은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의 영화 '성스러운 피'를 영감으로 자유를 갈망하고 구원의 메시지를 상징하는 새의 이미지가 전체 컬렉션을 관통하고 있다.
이를 위해 6월부터 제작한 석고 흉상은 사실 그가 파리 컬렉션 무대를 염두에 두고 3개월간 만들어진 작품이었다. 하지만 미음(ㅁ)자로 관중석이 만들어지는 바람에 조형설치는 포기했어야 했다.
즉, 파리컬렉션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아쉬움과 전달하려고 했던 메시지를 한국에서 제대로 보여준 셈이다.
"오래전 가슴과 머릿속에 인상 깊게 박혀버린 영화를 다시 한번 느끼고 싶어 열댓번도 넘게 보고 또 봤어요. 세계 컬트영화제 대상을 수상했던 컬트 무비의 대명사라고 불리는 성스러운 피는 사실 굉장히 잔인하고 무서운 영화에요. 어머니와 아들 그리고 소녀가 얽혀 있는 인간의 복잡한 내면과 갈등,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살인과 죽음으로 이끌어가는 스토리가 한번 봐서는 쉽게 이해하기 힘들지만 보면 볼수록 빠져들게 되죠. 반복적으로 보게 되면 결국 영화가 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바로 인간의 구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바로 그 구원의 메시지를 전 옷으로 승화시켰고, 그 메시지를 최대한 함축적이고 단순화시켜서 힘있게 보여주려고 노력했어요. 특히 진실과 거짓, 진짜와 가짜, 영혼과 실체 등을 옷 속에 옷이 있고 카라 속에 카라가 있는 디자인으로 풀어냈어요. 이는 1+1=1이라는 수학적 원론의 의미도 담고 있죠. 마지막 무대에 선보인 마임은 두 명의 사람이 한사람의 모습으로 구원의 메시지를 연기 했죠."
그가 이번 무대에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는 47벌의 의상과 구두, 그리고 무대연출이 함께 어우러져 잘 보여주고 있었다.
그의 작품들은 멀리서 보면 하나의 실루엣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정밀하게 설계된 고난도의 작업을 통한 결과물이었다.
이상봉의 시그니처라고 부를 수 있는 구조적인 볼륨, 그리고 깃털 모티브와 일러스트레이션에 트롱 프뢰유(입체화법) 기법이 만나 그래픽적인 실루엣을 완성시켜 이른바 '미니멀리즘을 모던하게 트위스트'한 컬렉션으로 평가받았다.
소재는 오가닉 실크, 린넨, 커튼, 그리고 깃털 모티브를 자수로 살린 디테일은 대칭과 비대칭의 구조 속에 녹아들어 신비롭고 여성스러운 스트럭쳐를 탄생시켰다.
여성의 몸을 형상화한 디지털 프린팅, 작가 김준의 작품을 일러스트 그래픽 프린트를 선명한 오렌지 컬러와 레드로 주목을 끌었다.
이번 작품에서 눈에 띈 남성복 무대는 내년 새롭게 선보이는 이상봉 옴므의 모습을 미리 점치게 해줬다.
한편, 월드 스타 김연아 선수가 직접 응원 매시지를 보낼정도로 각별한 디자이너 이상봉이 내년 1월 열리는 세계 선수권대회에 김연아 선수의 출전 의상을 제작해주기로 해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미 지난 2년간 김연아 선수는 가장 중요한 경기때면 이상봉 디자이너가 제작한 의상을 입어 큰 이슈를 몰았었다.
총 4벌로 탄생된 이 의상들은 과학적인 패턴과 선수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고려해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만큼 디자이너 이상봉이 그간의 무용의상을 개발해온 노하우를 십분 발휘해 탄생한 것.
김연아 선수는 지난 2년간 중요한 경기 때마다 이상봉 디자이너가 제작한 의상을 전세계 시민들에게 공개했었다.
"인체의 움직임과 동작 하나하나를 고려해야 하죠. 특히, 선수가 공기의 저항을 받지 않도록, 그리고 반짝이는 스톤 하나도 절대 떨어져서는 안돼야 해요. 선수의 부상과 직결되기 때문이죠. 따라서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세밀하게 제작해 탄생되는 특수복이라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김연아 선수 뿐 아니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품이라는 생각으로 만들고 있어요."
한국을 넘어 세계적인 월드 스타인 김연아 선수와 세계를 무대로 한국 패션의 위상을 높이고 있는 이상봉 디자이너. 이 두 사람의 만남은 패션계와 스포츠계를 넘어 우리 모두에게 훈훈한 감동을 주고 있다.

조정희 silky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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