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섬유업계 수장(首長)인 민병오 대구·경북섬유산업협회장(72)이 6년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다.
지난 99년 취임 후 연임하는 동안 헌신적인 희생과 봉사로 일관해온 민 회장은 대다수 단체와 업계의 간곡한 3연임 요청을 뿌리치고 오는 11일 열리는 이사회에서 안도상 회장에게 바통을 넘긴다.
취임 당시 일각에서 옥상옥 이라를 비판이 쏟아졌던 섬산협을 명실상부한 오늘의 위상으로 끌어올린 그는 머무를 때와 떠날 때를 분명히 구분할 줄 아는 덕망 있는 지도자.
떠나는 뒷모습이 유난히 돋보이는 민 회장은 요즘 대구 섬유업계의 화합과 단결을 당부하면서 후임인 안도상 회장체제 구축을 위해 열심히 정지 작업을 벌이고 있을 정도로 깔끔한 마무리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경남 밀양 출신으로 부산대 법대를 나와 대구에서 섬유사업으로 부를 축적한 그는 모방과 염색, 가연·면사와 화섬원사판매 그리고 최근에 설립한 휴대폰칩의 전자 사업을 통합해 10여 계열사를 거느린 탄탄한 재력가로 평가받고 있다.
자신에게는 인색하고 엄격하면서도 업계나 그늘진 곳을 위한 공적인 곳에는 뭉칫돈을 아끼지 않은 그는 지난 6년 동안 베푸는데 앞장서온 통큰 지도자로 정평이 나있다.
섬유산업협회장에 쏟아 붙는 열정 못지 않게 법무부 범죄예방 대구경북지역협의회장을 10년 가까이 맡아올 정도로 능력과 청렴도를 인정받고 있다.
그는 지난해 사채 5억원을 출연해 대경 청소년선도장학재단을 설립해 이사장에 취임했고 올들어 대구 경제계 원로모임인 금오회장을 맡아 의욕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숭상받는 지도자.
후임자에게 바통을 넘기는 마지막 순간까지 잠시도 소홀함 없이 전력투구하고 있는 민 회장을 대구 검단동 유통단지 신사옥 집무실에서 본지 조영일 발행인이 만났다.
-먼저 대구국제섬유박람회(PID)를 성공적으로 마친데 대해 축하드립니다. 피로가 채 풀리지 않았을 텐데 상해에 다녀 오셨다죠?
"그래요. 섬유산업연합회가 주최한 프리뷰 인 상하이에 참석하는 것은 대구 PID에 협조해준 섬산련에 대한 기본 예의 아니겠습니까. PID도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프리뷰 인 상하이도 매우 만족했습니다."
-본질문제로 들어가 대구·경북섬유산업협회장을 한번 더 해달라는 간청이 쇄도한 것으로 들었습니다. 꼭 무정하게 거절해야할 이유가 있었습니까…(웃음)
"사람은 머무를 때와 떠날 때를 분명히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당초 저는 3년전에 단임으로 끝낼 생각이었는데 당시 상황이 불가피하게 한번 더할 수밖에 없었어요. 지난 92년에 직물조합 이사장도 업계의 연임 요청을 뿌리치고 단임으로 끝낸 것을 보면 저의 결단을 이해 할 것입니다. 한마디로 박수 칠때 떠나야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아직도 못다 이룬 과제가 산적해 있을텐데 그냥 발을 빼는 것은 책임 회피 아닙니까…(웃음)
"물론 내가 구상한 여러 사업을 채 마무리하지 못하고 떠나는 것은 아쉽고 미안하지만 '나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내가 못다 이룬 일은 연부 역강한 후임 회장이 더잘 할것으로 믿습니다."
-지난 6년의 업적을 자평 하신다면…
"6년전 당시 섬유산업협회는 별다른 하는일도 없고 응집력도 없었어요. 일부에서는 옥상옥 이라는 비판도 있었고요. 겨우 1년에 한번 대구 섬유축제나 주관할 정도로 하는일이 미약했습니다. 그러나 대구 PID를 저희협회가 맡으면서 해마다 그 성과가 놀랄 만큼 좋아졌습니다. 여기에 섬유산업혁신 클러스트 구축을 비롯 디자인 패션육성사업·섬유패션행사 등도 알차게 수행해 가는 지역섬유단체 본산의 기능을 충실히 담당하고 있지요."
-올 PID 성과가 가장 좋았다면서요.
"그렇습니다. 참가 업체수도 221개 업체 470여부스에 달해 역대 가장 많았고 국내외 바이어가 2만2000여명에 달하는 대성황을 이루었습니다. 이에따라 상담실적 41억달러, 계약실적 8억달러라는 큰 수확을 거뒀습니다. 정부와 업계·단체의 전폭적인 지원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특히 국제섬유신문이 바잉오피스와 대형의류수출업체·내수패션업체·프로모션업체를 망라해 바이어를 대거 유치해 주신데 대해 다시 한 번 고마운 인사를 드립니다."
-숙원사업중 아직 결실을 보지 못한 사업은 어떤 것 입니까.
"어려운 대구섬유산업을 회생하기 위한 다각적인 정부지원을 미쳐 해결하지 못한 아쉬움이 큽니다. 여기에 우리나라 최초의 섬유박물관을 건립하기 위해 이미 대구시 당국과 중앙정부에 협의하고 있습니다만 아직 착공하지 못한 것이 마움에 걸립니다. 이 또한 후임자가 잘 해결하리라고 믿습니다."
-대구·경북섬유산업협회가 앞으로 어떻게 운영돼야한다고 보십니까.
"명실공히 지역섬유단체의 본산으로서 구심체 역할을 다해야 할것입니다. 특정 업종이나 단체에 편협하지 말고 중립적 입장에서 업계의 화합과 단결을 유도하고 어려운 대구 섬유산업의 활동을 제대로 모색해야 할것입니다."
-재임중 가장 어려운 일이 있었다면…
"내가 몸과 시간을 바쳐 봉사하는 것은 공인으로서 당연한 의무라고 봅니다. 또 필요하면 자기돈을 많이 써야하는 것이 단체장의 불가피한 현실입니다. 문제는 누구보고 알아 달라는 공치사가 아니라 이유없이 시기 질투하면서 사람을 음해하는 풍토가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이젠 모든 걸 잊고 용서했지만 순간 순간 그만둘 생각도 여러번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웃음)
-대구 섬유산업이 고립무원의 한계상황에 와 있습니다. 정작 희망은 있는 걸까요.
"물론이죠. 인류가 있는한 섬유는 영원합니다. 문제는 방법입니다. 중국이란 거대한 장벽앞에 살아남는 방법을 효율적으로 찾아야합니다. 중국과 경쟁하는 제품으로는 살아남을수 없는 것 아닙니까. 바로 일본이 가는 방향처럼 중국이 할 수 없는 분야의 차별화 특화전략이 필요한것입니다."
-그러나 대구산지는 이미 투자 여력이 고갈된 것 아닙니까.
"솔직히 지난 10년간 대구에 신규투자가 별로 없었던 것을 인정합니다. 워낙 시장이 나쁘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투자를 기피했던 것이죠. 그러나 기업하는 사람들은 조금만 미래가 보이면 이떤 형태이건 투자하게 돼있습니다. 이 어려운 국면을 타개할 수 있는 처방이 전제돼야 하지만 신념을 갖고 투자해야 합니다. 다만 무리한 차입경영은 결국 돌이킬수 없는 상황을 초래한다는 점에서 자기 능력에 맞게 투자해야 한다고 봅니다. 제 자랑 같지만 저도 공장이 10여곳 되지만 은행 빚을 안쓰는 사람입니다."
-법무부산하 범죄예방 대구경북협의회장을 10년 가까이 맡고 계신것도 압니다. 작년 12월에 연임 되셨고요. 섬산협회장 연임은 고사하시면서 범방위회장직은 계속 맡으신 이유가 어디있습니까.
"섬산협은 어엿한 경제단체이고 범방위는 봉사단체입니다. 경제단체는 제가 아니라도 훌륭한 사람이 많지만 범방위 같은 생색 안나는 봉사단체는 아무나 할려고 안합니다. 대구 경제계의 원로모임인 금오회도 맡지 않을려고 안간힘을 쓰다 아마도 맡을 사람이 없다고 해서 하는수 없이 멍에를 뒤집어 쓴겁니다. 저는 명예욕과는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그동안 함정웅 염색기술연구소 이사장과는 유난히 코드가 잘 맞았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 함 이사장을 두고 떠나는 마음이 어떻습니까.
"함 이사장이야 말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지도자입니다. 개인적으로 가까우면서도 존경합니다. 비록 밖에 있지만 앞으로도 열심히 도울 일이 있으면 적극 협조할겁니다."
-민 회장이 창업하신 회사가 꽤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빚 없는 알부자라는 소문이고요. 아직도 경영 일선에서 일을 하십니다까.
"회사가 10여개 되지요. 이미 경영 일선에서 손을 떼고 2세 경영체제로 들어갔습니다. 천성이 은행 빚 쓰는 것을 싫어해 부채는 없습니다. 지난날의 에피소드입니다만 은행이자가 싸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느슨해 질까봐 필요할 때 은행돈보다 사채를 쓴일이 있었지요. 이자 비싸니까 무서워서 조기 상환하게 되더군요."
-앞으로 계획은
"오랜만에 홀가분한 기분으로 여행을 다닐까 합니다. 뜻에 맞는 친구들과 국내여행부터 갈까해요. 또 좋아하는 등산도 하고 골프도 자주 할겁니다. 그동안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 간직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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