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광 메리야스, 천우사가 수출주도오는 11일은 열세번째 맞는 섬유의 날이자 20세기 마지막을 장식하는 섬유인 축제의 날이다. 지난 87년 섬유수출 100억달러 달성을 기념해 제정된 섬유의 날은 올해야 말로 단순한 연례행사차원을 떠나 지난 한세기 섬유산업의 발자취를 재조명하면서 새밀레니엄을 준비하는 뜻깊은 날이다.돌이켜보면 이땅에 빈곤퇴치의 주역이자 경제발전의 견인차인 섬유산업은 지난 한세기 초고속 성장속에 사양이란 모진 풍토병을 앓으면서 꿋꿋하게 자리매김했다. 그 궤적을 조망해보면 우리나라에 섬유산업이 제대로 효시를 이룬 것은 지난 1917년 11월 일본 미쓰이그룹이 부산에 조선방직을 설립하면서 부터이다.당시 1만5,200추의 정방시설과 직기 610대를 처음설치해 가동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면방산업이 생성했다. 재벌의 상징이었던 면방산업이 섬유산업을 선도하면서 남과북에 제품산업이 유아기로 시작됐다.해방이후 서울과 평양을 중심으로 메리야스공장이 생성됐고 대구에 똑딱직기 공장이 들어서면서 직물산업이 시작됐다. 이를 바탕으로 섬유수출이 시작된 것은 1959년 지금의 혜양섬유 전사인 동광 메리야스공장이 미국에 5게이지 스웨터 300장을 선적하면서 부터다.이를 바탕으로 동광메리야스가 스웨덴으로 시장을 확대하면서 제품산업 수출이 걸음마를 시작한 것이다. 물론 이에 앞서 견과 면을 주축으로 한 섬유수출이 시작돼 51년에 110만달러의 수출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그러나 뭐니 뭐니해도 섬유수출이 본격 개화기를 맞은 것은 5.16이후 보세가공체제의 의류수출이 시작되면서 수직상승했다.1963년에 처음으로 천우사가 보세가공와이셔츠를 수출했고 이어 삼도물산, 덕성무역이 주축이 돼 봉제수출을 대량으로 확대했다. 우리나라 전체수출의 80%이상을 의류수출이 감당했던 60년대이후 관련산업이 연쇄적으로 발전되면서 88년까지 수직상승으로 이어졌다. 이과정에서 섬유로 벌어들인 외화로 국부가 차곡차곡 쌓였고 중화학산업의 외자조달도 섬유가 맡아왔다. … 80년대 후반 의류수출쇠락그러나 경제전반의 고도성장 후유증은 인건비 비중이 큰 제품산업부터 서서히 퇴영의 길을 걸으면서 해외 탈출로 연결돼 무려 1,200개이상이 해외로 빠져나갔다.물론 섬유산업 업종마다 기복이 있고 상황이 달라 동반추락은 아니였지만 제품산업이 쇠락의 길을 걸으면서 90년대 들어 타섬유산업 전반에 낙조가 드리워지기도 했다. 이같은 조정기를 거치면서 섬유산업의 쇠락을 더욱 독촉한 것은 한정부 고위인사의 섬유사양론이 제기되면서 산업전체가 심하게 출렁거렸다.장관의 허튼소리 한마디에 은행들은 섬유기업에 돈줄을 조였고 섬유기업들도 사기가 떨어져 심한 침체기를 겪기도 했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도 이같은 후유증이 완전히 사그러들지 않아 섬유산업이 겪은 풍토병의 후유증은 깊고 오래갔다.이같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섬유산업도 업종별로 음지가 양지되고 양지가 음지로 변하는 판도변화가 이루워졌다. 전대 미문의 IMF가 터지면서 꺼져가던 제품수출이 다시 전성기를 맞아 섬유수출을 주도했다.상대적으로 수출섬유의 대종품목이었던 합섬직물이 정체기를 형성했고 몇천억씩 투자된 화섬원사메이커들이 거꾸로 추락하는 반전을 겪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국내 섬유산업은 다시 안정을 되찾아 성숙기에 진입했다.섬유산업의 지난 궤적에서 유아기와 성장기 성숙기로 가는길을 배웠고 그 저력이 지금 이순간도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섬유수출이 크게 증가추세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급격히 오그라들지 않은 것이 부인못할 가능성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지난 51년 섬유수출이 처음 100만달러를 돌파했을 때 비로소 한국경제는 움을 트기시작했다. 67년에 1억3,700만달러의 수출실적을 올려 처음으로 1억달러를 돌파하면서 전성기 가능성을 예시했다. 그로부터 6년후인 73년에 12억4,200만달러를 달성해 섬유수출 10억달러달성을 시현했다. … 100억달러 달성이념 섬유의날 제정다시 14년만인 87년에 섬유수출 118억6,400만달러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워 대망의 100억달러 수출을 기념하기 위해 섬유의 날이 제정된 것이다. 이때부터 성장가도에 다소 제동이 걸려 95년에 184억4,000만달러를 달성한 것을 정점으로 작년엔 165억달러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그러나 올해는 170억달러를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보여지고 있어 안정기에 접어들고 있음을 확인해주고 있다. 물론 섬유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세월이 갈수록 약해지고 있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지난 67년 섬유수출이 1억달러를 처음 돌파하던 해는 총수출에서 섬유가 차지하는 비중이 42.8%에 달했다. 73년에 10억달러를 돌파했을때는 무려 38.5%였다. 또 87년 100억달러를 돌파해 111억8,000만달러를 달성한해에는 역시 24.5%로 줄었다.작년에는 그 비중이 12.5%로 축소됐고 금년에는 이보다 더욱 축소될 전망이다. 그러나 세계 섬유선진국 모두가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우리보다 훨씬 작지만 완벽한 성숙기에서 안정성장을 유지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더구나 섬유수출 200억달러를 바라보는 세계4위 섬유수출대국임은 물론 연간 15조에 가까운 내수시장규모를 가지고 있다. 섬유수입도 지난 95년에 60억달러에 육박했으나 IMF에 눌려 작년에 30억달러 수준으로 줄었을뿐 올해 35억 달러를 웃돌전망이다.비록 수출증가세가 둔화되고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화됐지만 섬유산업이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도 절대적임을 부인할수 없다. 아직도 전체제조업체의 19.2%작년기준 섬유제조업체수가 1만8,000개에 달해 우리나라 전체제조업체의 19.2%라는 막중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고용인도 48만명으로 전체 제조업의 16.3%를 차지하고 있다.작년한해 섬유산업 부가가치가 14조710억원에 달해 전체 제조업의 8.8%달했다. 작년에도 무역수지에서 약130억달러의 흑자를 기록해 국가 예산규모의 20%이상을 차지하고 있다.작년 한해 우리나라 정부예산규모가 75조원인데 반해 97년 섬유부문 무역흑자가 17조3,700억원에 달한 것이다. 한마디로 외화가득율과 고용창출이 가장 유리한 국민경제의 핵심산업이 바로 섬유산업이다.세계 10대 섬유수출국중 7개국이 선진국이며 관세, 비관세 장벽을 통해 선진각국이 규제하고 있는 것도 이같은 점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더욱 희망적인 것은 올해부터 본격진행중인 대구 밀라노 프로젝트의 추진 효과가 예상을 뛰어 넘은 도약을 가져올수 있다는 점이다.총 6,800억원이 투입될 밀라노 프로젝트는 2005년후에도 계속 사업으로 이어지겠지만 일단 기본계획이 마무리되는 2007년부터는 가시적인 효과가 상상을 초월할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바로 2007년에는 대구에서만 섬유생산이 16조로 늘어나고 국내 전체적으로는 50조로 껑충뛸것으로 정부는 분석하고 있다.무엇보다 우리나라 섬유수출이 2007년에 300억 달러규모로 늘어나면서 이중 대구지역에서 150억달러를 달성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세계 시장 점유율이 9%에 달해 명실공이 세계 3위 섬유대국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현재의 우리나라 섬유산업위상이 세계시장점유율 5.4%와 수출 세계4위와 비교해볼 때 판도가 달라진다. 밀라노 프로젝트는 단순한 대구지역 섬유산업뿐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 섬유산업의 선진화를 재촉하게 된다.익산에도 니트전문 단지가 생기고 구조가 고도화 된다. 패션산업의 괄목할만한 성장이 바탕이 돼 섬유·패션산업의 도약기를 맞이하게 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섬유산업이 미래가 장미빛 투성이 만은 아니다. WTO규정에 따라 2005년 섬유쿼터가 폐지된후 과연 우리섬유산업이 어떤 영향을 미칠것인가를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해질수 있다.세계의 섬유산업구조가 권역별로 블럭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NAFTA회원국의 이점을 이용해 미국시장을 무관세로 질주하게 될 멕시코등지와 어떻게 경쟁이 가능할지 선뜻 대답이 안나온다.만만했던 우리의 주종시장이었던 중국이 어느덧 경쟁국으로 변해 위협하고 있는 상황을 아직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어느덧 세계는 한울타리안에서 가장 싸고 좋은 물건만이 살아남는 시대에 와있지만 대응력이 부족한 우리 섬유산업의 장래가 걱정이다.바로 세기말 마지막 섬유인의 날을 맞으면서 새천년에 어떻게 안정성있는 고도성장을 유지하느냐가 오늘 우리 섬유인들이 풀어야 할 과제이다. <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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