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스트림은 대규모 적자·다운스트림은 대거 침몰"이는 지난해 화섬관련 업·다운스트림업계가 보여준 자화상이다. 그리고 화섬관련 산업의 연중 행사는 업스트림업계는 생산감축이었고 화섬·편직물업체들은 도미노식 사업포기·규모축소였다. 양 업계 공히 한계상황을 맞아 더 이상 출혈을 감당치 못해 나타난 현상이다. 한국 섬유산업이 총체적인 위기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수출은 뒷걸음질치고 국내생산은 팔 수가 없어 재고로 이어지면서 전후좌우를 둘러봐도 탈출구가 쉽게 나타나지 않는 상황에 처했다. 특히 국내 섬유산업의 중추산업인 화섬산업의 붕괴파열음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폴리에스터·나일론 품목의 유례없는 적자발생은 화섬업체는 물론 전 섬유업체에까지 파문을 던지고 있다. 한국에서 섬유산업은 이젠 끝장이라는 자포자기 의식도 마냥 확산되는 상황이다.한국 화섬산업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위기에 처했다. 긴급처방이 없으면 공멸할 수밖에 없다는 진단도 나오고 있다. 절대절명의 순간 국내최대·세계정상권 화섬 생산능력을 보유한 효성의 행보가 관심이다. 조현택 효성 부사장을 만나 위기에 처한 한국 화섬산업과 섬유산업에 대한 대책과 비전을 들어봤다.▲섬유산업의 중핵인 화섬산업이 벼랑 끝 위기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된 원인은 무엇입니까.―국내 생산업체 난립에다 중국이라는 변수를 예측하지 못한 탓이지요. 누구의 책임이라고 탓할 수도 없지만 결국 국내업체만 골병이 든 상황입니다. 다운스트림업체의 업스트림 진출은 아마 한국 섬유업계가 아니면 볼 수 없는 현상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지금 업스트림으로 진출한 다운스트림업체 가운데 정상적인 업체가 하나도 없지 않습니까. 얼마나 무모한 짓이었는가를 웅변해주는 부분이지요. 그리고 IMF 환란 이후 한계기업이 속출했는데도 정치적인 논리에 휘말려 이를 지원한 정부당국의 시스템이 문제였습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이 때문에 지금 우량기업도 물귀신에 발목을 잡힌 것처럼 공멸위기에 처하는 기막힌 현상만 빚어낸 셈이지요.▲그렇다고 이대로 주저앉을 수만 없지 않겠습니까. 이제 현실을 딛고 다시 성장산업으로 전환하는 노력이 시급히 요구되고 있습니다만…―지난해 12월 일본을 방문했어요. 현재 일본 화섬업체들은 자발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다시 성장의 과실을 향유하고 있습니다. 아마 잔존자의 이익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일본 와인더 생산업체인 무라다·데이진·도레이엔지니어링 등 3개사의 합병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지금 중국특수 때문에 물량공급이 딸리는 아주 행복한 상황을 만끽하고 있어요. 멋진 구조조정의 결과이고 국내 화섬업계의 타산지석이 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국내 화섬업계도 구조조정 중심부에 진입했습니다. 이미 대하합섬은 탈락했고 또 일부 유동성이 취약한 업체들을 중심으로 앞으로 이 같은 상황은 더 확대될 수 있을 겁니다.▲지난해 폴리에스터·나일론 품목의 적자가 심각했고 스판덱스 역시 마진폭이 크게 감소하는 상황을 나타냈습니다. 적자발생 원인은 무엇이며 처방책이라면…―중국이 화섬생산에 나서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대량생산을 통한 코스트 경쟁이 가능했습니다만 이것이 이제는 통하지 않습니다. 지금 코스트 경쟁력은 더 이상 우리의 무기가 아니고 되레 우리 화섬산업의 발목을 잡는 요소로 대두됐어요. 그리고 원료가격 앙등도 적자발생의 주 요인이지요. 중국의 화섬원료 수요확대가 원료가격 상승을 촉발시킨 반면 원사생산은 공급과잉 상태를 보이면서 가격만 떨어트리는 상황이 연중 지속되니 적자를 안내는 게 오히려 이상합니다. 그렇다고 늘어나는 적자를 방치할 수는 없지요. 지난해 2분기부터 화섬각사가 한계상황을 보이는 품목을 중심으로 실정에 맞게 생산조정에 나섰고 올해는 더욱 확대될 것입니다. 저희 효성도 동일한 경우에 처했어요. 그 동안 장치산업의 속성 상 100% 가동률을 최고의 잣대로 여겨 가격이 떨어져도 설비를 가동시켜 왔습니다만 이젠 더 이상 이를 지속할 상황이 아닙니다. 이제 생산방식을 180도 전환시켜 나가는 것이 과제가 됐어요. 이는 품질경쟁 체제로 전환됨을 뜻합니다. 예를 들어 과거 10000개 제품을 생산해 10000원 이익을 냈다면 앞으로 100개를 생산해 10000원 이익을 내는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 인건비를 고정비용 계정으로 삼았던 과거의 생산방식을 탈피하면서 고부가 창출체제를 구축시켜 나가는 게 적자를 해소하는 최선의 선택으로 생각합니다.▲가동률 축소가 적자요인을 없애겠다는 의미보다 고부가 창출을 위한 사전포석으로 해석됩니다만 이를 위해서는 다운스트림(이하 DS)업체와의 협력시스템 구축이 전제가 되어야하는 것 아닙니까.―당연한 지적입니다. 이를 위해 그 동안 스판덱스 중심의 전시회 참가에서 앞으로 폴리에스터·나일론까지 확대, 명실상부한 종합 화섬업체의 위상을 알리는데 적극 나서고 특히 DS업체의 동반전시를 적극 권유해 고객사의 브랜드 홍보는 물론 판매촉진을 위한 다각적인 노력을 경주할 생각입니다. 또 현재 DS업체와의 협력시스템은 일본의 제도를 답습해 왔습니다만 올해부터 안양 섬유연구소가 중심이 된'테크니칼서비스센타'를 확대 운영하는 등 우리 스스로 창조하는 시스템구축에 나섭니다. 즉 고객밀착경영을 통해 각 부문별로 파악된 고객의 니드를 곧바로 제품개발로 연계시키는 한편 종전 클레임 발생 시 AS에 치중했으나 앞으로 BS부문을 적극 강화, 문제점을 사전에 보완시키는 등 제품의 성공률을 높여 나가는 전략이지요. 이를 통해 제품가치를 높이고 가격도 자연스럽게 인상시키는 것입니다. 이미 2년 전부터 '크레오라스쿨'운영을 통해 인프라를 구축해 온 만큼 다양한 DS업체와의 협력시스템 구축은 시간문제일 뿐이지요.▲DS업체와의 협력시스템 구축은 제품개발이나 품질보완 측면이 강합니다만 과제는 훌륭한 제품을 세계시장에 내다 파는 마케팅활동 아닙니까. 개별 DS업체의 시장개척 활동은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여집니다만…―이미 이도 준비가 완료됐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효성은 국내섬유업체 가운데 글로벌마케팅 전진기지가 많은 최대업체입니다. 종합상사 기능이 그것이지요. 기 구축된 글로벌마케팅 전진기지를 100% 활용, 세계 각 지역에서 발생하는 섬유정보를 취합해 DS업체에게 전달하고 또 DS업체가 생산한 제품을 판매할 수 있도록 연결기능을 최대한 가동시킬 생각입니다. 특히 틈새시장을 겨냥한 정보수집 강화를 통해 효성의 DS업체는 안심하고 제품개발이나 생산활동을 펼칠 수 있게 하는 한편 고부가가치 판매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지원체제를 더욱 확대해 나가겠습니다.▲국내외에 걸쳐 효성의 공격적인 섬유사업 투자가 시선을 집중시키면서 업계일각에서 무모하다는 이야기까지 흘러나오는 상황입니다. 이 같은 투자배경과 특히 해외투자가 갖는 의미는…―세계섬유산업은 매년 성장을 거듭하고 있고 또 어느 산업보다 성장잠재력이 높은 하이테크산업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는 세계 섬유시장은 크고 넓은데다 수요 또한 무궁무진하게 창출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것을 뜻하지요. 이제 효성의 섬유시장은 국내가 아닙니다. 앞으로 국내시장 의존도를 과감하게 줄여나가는 대신 세계 각 지역별로 생산·마케팅 로컬리제이션 체제 구축에 주력하고 있어요. 다시 말해 해외시장을 아예 우리의 고정시장으로 삼는 게 효성의 섬유산업 글로벌리제이션 전략의 핵심입니다. 로컬리제이션 구축은 스판덱스 영업에서 나타난 폐단을 최소화하는 차원에서 기획됐어요. 국내 주재원 파견을 통한 판매가 문화적인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면서 결국 에이젠트를 통한 대량판매에 의존 할 수밖에 없는 한계상황을 드러냈고 이는 앞으로 중국과의 경쟁에서 승산이 없다는 것을 의미했지요. 그래서 과감히 현지인을 채용, 마케팅을 비롯 AS까지 전담케 하는 교육을 강화해 현재 제품판매가 큰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현지투자는 로컬리제이션 구축을 기점으로 치밀한 수요조사를 통해 최대판매 효과를 올릴 수 있는 지역에 집중되고 이는 곧 섬유산업 글로벌리제이션을 실현하는 기반이 되는 것이지요. ▲최근 경쟁업체들은 앞다퉈 탈 섬유를 외치고 있고 또 중소 섬유업체들의 사업포기나 규모축소 등이 확산되는 추세입니다만… ―효성은 섬유 그 중에서도 화섬을 본업으로 국내최대 ·세계 정상급 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어요. 효성의 섬유부문에 대한 투자나 애착은 다름 아닌 본업을 바탕으로 경영이념인'선택과 집중'을 충실히 수행한다는 뜻입니다. 최근 비슷한 시기에 출발한 대부분의 동종업체들이 탈섬유를 외치고 있습니다만 본업을 벗어난 일탈은 근본을 없애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해요. 물론 시대적 상황에 따라 일률적인 가치관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무시할 수는 없지요. 특히 기업은 살아있는 유기체이기 때문에 생존을 위한 환경적응은 무엇보다 우선하는 과제라는 점에서 십분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섬유산업을 포기하는 것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어요. 특히 우리나라는 섬유산업의 노하우가 많은 장점을 갖고 있는 국가로 손꼽히고 있는데도 최근 국내 섬유업체들이 이를 쉽게 포기하는 풍조는 아무리 좋게 해석하려고 해도 납득이 안돼요. 섬유산업에 대한 저의 생각이 수구적인 가치관으로 폄하되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섬유산업을 통한 성장은 어떤 산업보다도 보장받을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것이 저의 신념이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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