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편직물산업이 벼랑끝 위기에 처했다. 각 경편업체마다 2000년대부터 오늘 현재에 이르는 지난 4년여간 수출가격은 떨어지고 수출물량이 뒷걸음질치는 최악의 경기침체 상황을 맞아 거의 탈진상태다. 희망의 21C가 경편업체들에게 되레 시련만 안겨준 셈이다. 또 이 같은 현상은 해소되기는커녕 올해가 생존의 분수령이라는 진단도 증폭되고 있다.불황의 골이 깊어지는 동안 수많은 동종업체들이 부도·도산으로 궤도를 이탈했다. 또 자발적으로 사업을 포기하거나 설비처분에 나선 경편업체 역시 부지기수다. 한마디로 생존을 위한 구조조정의 몸부림이 경편업계를 휩쓸고 있다. 한때 세계최대 경편직물 생산국이라는 명성도 이젠 유명무실 상태다.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라고도 말한다. 자구노력이 한창 진행중인 경편업체가 그 예다. 경편산업은 직물산업과는 달리 외부의 지원없이 자생적으로 성장·발전해온 국내 대표적인 산업으로 꼽힌다. 그래서 외부의 환경보다 내부에 얽히고 설킨 과제를 스스로 해결해 나가는 자구노력의 힘도 그 어느 산업보다 강력하다.경편업체들마다 불황극복을 위해 앞다퉈 고단위 극약처방을 내리고 있다. 생산설비 축소와 함께 영업·생산인력을 과감히 축소하는 등 비상경영체제 구축이 그것이다. 외형도 전성기의 60% 수준으로 줄였다. 거품을 제거하자 몸집도 날렵해졌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무엇인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한마디로 정보공유다. 정보가 없는 한 대세를 휘어잡을 수가 없다.경기가 호황국면일 경우 정보의 중요성은 피부에 크게 와 닿지 않는다. 크든 작든 이윤이 창출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황일 경우는 다르다. 정보는 기업의 생존을 좌우할 만큼 큰 비중을 갖는다. 이 같은 측면에서 경편업계에 시급히 요구되는 것은 정보의 공유다. 자구노력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그룹을 통한 시장조정기능을 확립시켜 나가는 게 요구되는 상황이다.경편직물은 국내 내수용보다 수출용 산업이다. 세계시장을 겨냥한 글로벌산업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국내 동종업계가 머리를 맞대고 생존을 모색하는 것은 그 누구도 탓하지 않는다. 스스로 제 살을 깎는 구조조정도 중요하나 이제는 거시적인 관점으로 눈을 돌려야 할 때다.중국은 한국 경편산업의 강력한 경쟁자다. 아니 한국의 생산능력을 이미 추월했다. 그리고 끊임없는 가격저항을 통해 우리의 시장을 삼키고 있다. 국내 경편업계가 自中之亂을 되풀이하는 동안 중국의 위협은 증폭돼 한국 경편산업의 심장부를 정조준했다. 이제 한국 경편산업의 생존은 중국의 공격권에서 벗어나는 게 열쇄로 부상했다.풍전등화 상황에서 국내 경편산업을 움직이는 대표주자 3명이 5월 20일 강남구 삼성동 중식당 도리 星宮에서 머리를 맞댔다. 한국 경편산업의 활로를 모색해보자는 취지에서다. ▲손기혁 동우섬유(주) 회장 ▲이시원 (주)부천 회장 ▲태혁준 (주)효창 회장이 그들이다. 이 날 본지 창간 11주년을 맞아 기획특집으로 마련된 좌담회에서 한국 경편산업의 활로 모색은 시작됐다.▲사회= 최근 몇 년간 한국 경편산업은 수출부진으로 큰 홍역을 치르고 있습니다. 국내 경편업체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몸집을 줄이는 것을 과제로 삼아 허리띠를 동여매는 데 안간힘을 다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아직 수출경기는 요지부동 상태를 보이고 있어요. 뒤숭숭한 상황이 지속되면서 업계의 사기도 나락으로 떨어질 때가지 떨어진 것 같습니다. 과연 경편산업의 활로가 보이지 않는 것인가요. 오늘 이 자리가 기탄없는 의견교환을 통해 한국 경편산업의 진로를 모색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知彼知己면 百戰百勝이라고 했습니다. 한국 경편산업의 과거, 현재, 미래를 조명해보고 이를 바탕으로 대응방안을 강구했으면 합니다.▶손기혁 동우섬유(주) 회장= 오늘 경편업계가 처한 현실은 시설과잉이 문제였던 것 같아요. 7∼80년대는 큰 무리없이 지나왔습니다만 특히 99년부터 2002년 초까지 이루어진 마구잡이식 증설이 큰 화를 부른 것이지요. 모두 나름대로 판단을 갖고 증설에 나섰습니다만 결과가 처참하기 그지없으니 문제입니다. 한마디로 당시 경편업계가 예상한 게 맞아떨어지지 않아 오늘의 부담으로 증폭되고 있어요. 큰 예가 시장다변화입니다. 제3국과의 경쟁에서 품질·생산 등 모든 면에서 유리했으나 시장개척을 소홀히 한 면이 너무 컸다고 생각해요. 또 중국이 세계 생산공장으로 부상하면서 우리의 입지를 크게 약화시킨 것도 원인입니다. 이제 중국의 경편설비 규모는 우리를 추월했어요. 물량을 움직이는 주도권이 중국으로 넘어가면서 국내 경편산업의 설 곳이 더욱 좁아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세계 트렌드가 환편쪽으로 넘어가면서 입지를 더욱 약화시키고 있어요. 환편제품은 트렌드에 맞게 빠르게 변화됐습니다만 경편제품은 그렇지가 못했어요. 지금 후회스러운 게 바로 이 부분입니다. 경편업계도 환편업계처럼 제품개발에 노력을 기울였다면 오늘과 같은 상황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결국 기존제품으로 중국과 경쟁하니 가격이 떨어지면서 오더도 감소하는 악순환을 자초한 것이지요. 현재 국내 원사메이커들의 원사개발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습니다만 앞으로 경편업계와 의견교환을 통해 원사개발로 이어지면 더 좋은 결과를 낳을 것으로 생각합니다.▶이시원 (주)부천 회장= 최근 일본의 기업 가운데 70년 이상 사력을 지닌 109개 업체를 분석한 장수기업 동우회라는 책을 읽게 됐어요. 이 중 장수기업의 근거로 기술력와 함께 경영자의 특성을 분석한 부분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이들 장수기업의 비결은 1위 미래예측력 2위 인내력 3위 상황판단력으로 나타났어요. 결국 경영자의 미래예측력과 상황판단력이 뛰어나야 기업이 장수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또 끝까지 고난을 이겨나가는 인내력도 큰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지난 97년부터 2002년까지 집중된 국내 경편업계 증설은 이 같은 의미로 고찰하면 시사하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해요. 국내 편직물 수출은 지난 96년 15억 달러에 불과했으나 97년 21억 달러를 기록하면서 20억 달러대로 올라선 뒤 계속해서 20억 달러대 수출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폭발적으로 증설이 이루어졌던 99년 수출이 26억 달러로 높아졌으나 이후 급격한 증설에 따른 역효과 때문에 2002년 기준 수출은 고작 2억 달러 늘어난 28억 달러에 그쳤어요. 이 기간 동안 국내 경편업체 대부분이 대규모 증설에 나섰습니다만 이 때문에 되레 큰 고통만 안겨 준 시기였습니다. 이 당시 미래예측력을 갖고 증설을 자제했더라면 국내 경편업체들의 상황도 크게 달라졌을 것으로 생각해요. 지금 생존 유무가 경편업계의 최고 화두입니다. 대부분 3∼40%에 이를 정도로 과감한 구조조정을 단행했어요. 이 시점서 세계 경편업체들의 상황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의미가 큽니다. 일본·이태리 등 선진국 업체들은 일찌감치 가족경영체제를 구축시켰고 강력한 경쟁자인 중국업체들도 소규모 가족경영체제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국내 경편업체들의 구조조정은 이제 스타트 라인에 섰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해요.▶태혁준 (주)효창 회장= 경편이든 환편이든 세계 편직물 수요는 계속해서 확대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현재 여러가지 환경요인이 복합적으로 맞물리면서 비용을 맞추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궁극적인 과제는 세계시장을 거머쥐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전문교육을 통한 기술우위와 함께 제3국을 통한 아웃소싱을 전략적으로 모색해야 합니다. 효창은 상해를 거점으로 삼아 중국산 제품에 대한 검품에 나서는 한편 일부 품목은 중국에서 가공하는 전략을 병행시키고 있어요. 이는 마켓 주도가 전제입니다. 최근 30여 년만에 비즈니스 최일선에 나섰습니다. 세계 경편제품 시장이 대부분 유태인에 의해 움직이는 체제예요. 이를 직시하고 전략적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일본은 1억 인구가 훨씬 넘는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자생력을 갖추고 있으나 한국은 오로지 수출만이 승부수입니다. 경편직물도 연구개발 제품을 제외한 대량생산 품목은 이제 해외생산을 요구받고 있어요. 국제시장을 겨냥한 설비대이동에 나설 때라는 것이지요. 이미 중국은 늦었습니다. 이집트·남아연방 등 아프리카·중동지역으로 생산거점을 확충시키는 것을 고려해야 합니다. 또 우리가 개발하고 중국이 뒤따라오는 시스템 정착 역시 과제예요. 중국으로 기술이전은 자살행위나 다를 바 없습니다. 섬유는 원사→제직→염색→후가공으로 이어지는 종합예술입니다. 해외생산이 효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스트림간 유기적인 공조체제 구축도 시급히 요구되고 있어요.▲사회= 세분의 말씀을 통해 한국 경편산업의 현주소가 적나라하게 드러났고 미래를 향한 가이드라인도 도출됐습니다. 특히 이시원 회장께서 말씀하신 일본 장수기업들의 최고경영자의 통찰력은 시사하는 바가 너무 큽니다. 지금 국내 경편업체 최고경영자 대부분이 절치부심의 자세로 위기극복에 나서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고경영자의 길은 형극상황의 연속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인내력이 더욱 요구되는 상황이 아니냐는 생각도 갖게 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국내 경편업체들의 제품력이 뛰어난데도 수출은 지리멸렬 상황만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이시원 회장= 중국의 섬유류 수출은 2001년 기준 세계물량의 24.6%에 달했고 지난해 30% 수준으로까지 확대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문제는 중국이 단순한 저가품 봉제의류 생산국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최근 일본의 유명 자수업체가 중국시장 조사차 산동성에서 복건성에 걸쳐 란제리류 트리코트 공장을 방문한 결과, 중국에서 생산하는 란제리류 트리코트 제품가격이 한국보다 훨씬 높았다고 합니다. 중국의 고급품질 생산능력이 우수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동시에 그만큼 우리의 강력한 경쟁자로 급부상했다는 반증이지요. 중국이 빠른 속도로 품질을 앞세운 경쟁체제로 전환시키고 있으나 국내 경편업계는 그렇지가 못해요. 경편직물 개발에 특화된 인력이 거의 양성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지요. 과거 한국 경편직물은 기술개발을 토대로 다양한 제품생산으로 이어졌습니다만 지금은 새로운 제품 개발능력을 갖춘 인력을 거의 찾을 수가 없어요. 일본이나 이태리가 경편직물 기술개발을 주도하는 시스템이었다면 상황은 조금 달라졌을 겁니다. 한국이 경편직물 부문에서 그 동안 개발이나 시장을 주도해온 게 현재로서는 솔직히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어요. 후속제품 개발로 이어지지 못하는 상황에서 설비가 급작스럽게 늘어나 주력제품의 수출가격이 떨어지고 물량도 주는 이중고를 겪는 상황입니다.▶태혁준 회장= 세계최대 의류소비시장인 미국의 제품가격은 1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어요. 미국정부가 물가안정을 우선 정책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최근 바이어들의 제품구매가 중간단계를 거치지 않아요.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원단 수입상을 통한 수출이 주류를 이뤘으나 이제 의류바이어가 직접 완제품을 요구합니다. 가격의 거품이 빠지고 있다는 뜻이지요. 그리고 원단구매량도 줄이고 있어요. 결국 국내 업계가 누려왔던 생산 즉 양의 우위가 점점 사라지는 상황입니다. 중국의 생산설비 파악이 전혀 안돼요. 게다가 대만의 기술이 중국으로 빠르게 유입되고 있고 후발국인 인도네시아·방글라데시 등에서도 경편설비가 구축되고 있어요. 예로 한국 원단을 사용했던 태국의 봉제공장의 경우 이제 자국생산 원단을 사용합니다. 한국산 경편직물을 수입·사용했던 국가들이 빠르게 자급체제에 나서고 있는 것이지요. 최근 이태리 밀라노로 수출되는 한국과 중국산 경편직물 가격은 20% 정도 차이가 납니다. 수출물량은 줄고 가격이 떨어지는 현상만 경편업계를 옥죄이고 있어요. 또 의류 소비패턴이 우븐에서 니트로 전환되고 있는데도 경편업체들의 안일한 대응전략도 최근의 수출부진을 증폭시킨 결과로 생각합니다.▶손기혁 회장= 지금 중국내 경편설비가 약 4500대 정도로 한국의 4300대 수준보다 약간 웃도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만 핵심은 효율성입니다. 한국의 경편 및 염색관련 설비의 효율성을 70%로 봤을 경우 중국은 60% 수준에 이르고 있어요. 이는 양국 모두 짜는 물건만 짠다는 뜻이고 특수기술자도 필요치 않다는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효율성은 제품개발이 뒤따르지 않는 한 제고할 수가 없어요. 이렇다보니 바이어들의 가격도 한국·중국간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국내 가공비용 즉 염료비·인건비·유틸리티비 등 직접비 외에 부대비용이 너무 높아요. 그런데도 바이어들의 주문은'품질은 한국, 가격은 중국'을 요구합니다. 현재 바이어 가격으로는 도저히 이를 맞춰 줄 수 있는 여건이 안돼요. 수용하면 마냥 적자입니다. 그래서 외주가공은 최대한 줄이고 있어요. 현재 가공물량은 98·99년 대비 50%선으로 떨어졌어요.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후가공으로 효율성 제고에 나서고 있습니다. 후가공 협력업체들의 생산현장은 열악합니다만 기술력은 이태리를 빰 칠 정도로 탁월해요. 그나마 후가공을 통해 제값을 받을 수 있어 그나마 유지하는 셈입니다. 근본적으로 이윤을 남겨 재투자로 이어져야 발전을 모색할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이 안타깝기 그지없어요.▲사회= 말씀을 종합해보면 현재 여건은 경편업계가 스스로 문제를 풀어나가는데는 한계상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국내 경편산업은 외부지원 없이 자생적으로 성장을 모색해 온 대표적인 산업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업계차원보다는 개별기업 차원의 대응책으로 일관해 왔다는 지적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경기가 호황일 때 어떤 식으로 대응을 하던 큰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지금은 전 업계가 어려움을 겪는 대 위국 상태입니다. 이미 많은 경편업체들이 정상궤도를 이탈했습니다. 앞으로 또 어떤 악재상황이 돌발할지도 모르는 안개상황입니다. 물론 개별업체별로 차근차근 이를 타개시켜 나가고 있습니다만 좀더 발전적인 측면에서 업계의 중지가 모아져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특히 시장을 리드하기 위한 업계차원의 마케팅전략이나 경영환경 개선을 위한 인프라 구축노력은 선결과제로 봅니다. 단적으로 정보의 공유가 시급한 상황이 아닙니까. ▶태혁준 회장= 지난 3월 중순경 산자부가 마련한 염색관련 수출애로 대책회의에서 전기·가스 및 공업용수를 비롯 벙커C유 등 최근 급증하는 유틸리티 비용과 관련 이를 줄여주는 방안을 건의했어요. 그러나 정부관계자는 관련부처와 협의는 하겠지만 산업별 형평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아예 전제로 밝혔어요. 정부가 기업을 통해 애로사항을 들었으면 이를 해소시켜 주는 방안을 강구하는 게 지원이 아닙니까. 지금 정부의 IT산업 지원은 어떻습니까. 국가적인 대계인 동시에 프로젝트로 추진되고 있어요. 이 부분에 대한 지원을 섬유산업 쪽으로 조금만 할애하더라도 상황은 달라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섬유산업은 고용창출이나 무역수지 측면에서 그 어느 산업보다 우월적인 위치에 있어요. 지금까지 쌓아온 기술이나 마켓을 유지 발전시키려면 정부의 지원은 발전적인 방향에서 제시돼야 한다고 봅니다. 특히 섬유산업 현장은 극심한 인력난으로 몸살을 앓고 있어요. 외국인 고용허가제 확대가 시급합니다. 또 중소기업이 해외마켓 확대에 나설 경우 애로사항은 하나, 둘만이 아니예요. KOTRA를 활용하는 지원 프로그램 마련도 요구되고 있어요. 은행의 금융지원이나 무역업무 지원도 발등의 불입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모두가 지원대상인데 애로사항을 들어주는 곳은 없고 되레 목 죄는 상황뿐 이예요.▶손기혁 회장= 정부지원을 받은 직물업계의 상황은 경편업계보다 더 처참합니다. 오히려 정부의 지원이 산업을 망쳤다는 말도 나오고 있어요. 같은 이슬을 마시더라도 뱀은 독을 만들고 젖소는 우유를 만듭니다. 경편업체들의 장점은 잡초와 같은 자생적인 기능을 갖고 있다는 것이지요. 기업은 외부의 도움보다 자생적인 기능을 갖췄을 때 더 큰 경쟁력을 발휘합니다. 그러나 경편산업도 섬유산업이라는 큰 테두리에서 움직이다보니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경우가 많아요. 대표적인 게 금융권의 시각입니다. 올해 수출금융 이자율이 8%대로 높아졌어요. 은행사정이 나빠졌다고 소비자에게 이를 전가하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그리고 은행별 금리적용이 다른 것이나 이자율을 단번에 3∼4%씩 올리는 것은 도대체 이해가 안돼요. 또 일방통행 식입니다. 사실 기업가라면 은행을 이용하지 않는 경우가 드물지 않습니까. 섬유산업은 결코 사양산업이 아닙니다. 그리고 경편산업은 용도창출이 무궁무진한 대표적인 미래산업이고요. 일정실업은 자동차 시트산업에, 코오롱글로텍은 산업용섬유 쪽으로 특화시킨 대표적인 섬유업체입니다.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넘긴 미국 등 선진국들도 섬유산업에 강한 애착을 갖고 산업발전을 위한 인프라 지원에 나서고 있어요. 그런데 한국은 아닙니다. 말만 무역수지 흑자산업이고 고용창출 산업이지요. 정부지원 필요 없습니다. 규제나 풀어주는 게 그나마 기업이 마음껏 일할 수 있는 터전이 된다고 생각해요.▶이시원 회장= 저는 기업의 최적 경영환경은 지원도 간섭도 없는 상태에서 기업 스스로가 활로모색에 나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정책적으로 지원이 이뤄진다면 조령모개식 보다는 일관적으로 이어져야 돼요. 지금 경편업계가 어려움을 겪는 것은 외부적인 요인도 큽니다만 최고 경영자의 의지와도 직결돼 있다고 봅니다. 국내 경편업계 최고경영자의 면면은 대부분 5∼60대 나이이고 규모가 큰 업체는 60대 연령을 보이고 있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만 이 나이는 도전정신보다 수구적인 자세를 취하는 게 대부분이지요. 2∼30년 이상 경편업계에 몸담아 왔어도 60대에 이르면 새로 도전할 용기를 갖는 것은 쉽지가 않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최근 환경은 최고 경영자의 열망을 꺾는 상황이지요. 스판벨벳 이후 이를 대체하는 제품개발이 안되고 있어요. 일본이나 이태리가 시장을 주도해 왔다면 지금과 같은 어려움을 겪지 않았을 텐데 라는 생각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여깁니다. 섬유산업은 70년대 중반부터 사양산업이라는 오명과 함께 유능한 인력축적이 어려운 상황을 지속해 왔어요. 그러나 섬유수출은 아직도 150억 달러를 웃돌고 있고 지난해 전체 수출비중은 7.8%에 달했습니다. 특히 고용인구는 전체 취업인구의 27%라는 엄청난 고용창출 효과를 보이고 있어요. 한국 섬유산업도 노동집약적인 산업에서 자본집약적인 산업으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특히 경편산업은 대표적인 자본집약적인 산업으로 분류돼요. 미국 등 선진국 섬유업체들은 의류용보다 산업용 섬유생산이 80%를 웃도는 데 반해 한국은 아직도 의류용 비중이 80%선입니다. 이래서는 활로가 없어요. 경편업계가 산업용 섬유 생산에 앞장서는 것도 미래를 대비하는 대안으로 생각합니다.▲사회= 오늘 국내 경편업계 대표주자 세분이 한자리에 모여 한국 경편산업의 활로를 찾기 위한 많은 의견을 개진해 주셨습니다. 특히 세분은 자생력이 강한 산업이라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미래를 대비하자는 전략적인 비전 제시와 함께 개별기업의 부단한 노력이 산업의 발전을 한층 더 성숙시키는 계기가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정부의 지원은 필요도 없으나 금융권이나 제도권의 사시적인 편견해소가 시급한 과제로 대두시키는 한편 기업이 정상적인 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규제만이라도 풀어줄 것을 강력히 주문했습니다. 오늘 제기된 많은 의견은 경편업계는 물론 섬유업계 관계자들 역시 많은 공감을 가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제 시작입니다. 섬유산업이 미래산업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스트림간 유기적인 공조체제 구축이 그것입니다. 섬유산업은 종합예술이라는 의미가 퇴색되지 않도록 발전적인 협력으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장시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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